한진그룹 오너일가 3세 삼남매가 분쟁의 조짐을 서서히 보이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고(故) 조양호 회장의 사망이란 급변사태를 맞고도 차분하게 3세 후계구도를 이어가는 듯 했던 한진그룹이 뒤숭숭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차기 총수로 지목된 조원태 한진칼 대표의 회장 선임 적법성 논란과 가족 간 갈등설 등이 끊이지 않는 모습이다.

지난달 8일 전해진 고 조양호 회장의 사망 소식은 한진그룹은 물론 재계에 큰 충격을 안겼다. KCGI의 공세 등 현안이 산적한 가운데 전해진 급작스러운 사망 소식이었기 때문이다. 고 조양호 회장이 상당한 존재감 및 위상을 차지해왔다는 점에서 한진그룹을 향한 시선은 우려로 가득 찼다. 승계문제가 정리되지 않았다는 점도 여러모로 우려를 키우는 요소였다.

이 같은 우려와 달리 한진그룹 오너일가는 차분하고 안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조원태 대표는 이례적으로 취재진 앞에 서 심경을 밝히는 등 장례절차를 주도했고,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및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도 차분하게 빈소를 지켰다. “잘 협력해서 사이좋게 이끌어나가라”는 유훈이 오너일가 3세 삼남매를 더욱 돈독하게 만들었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장례를 마친 뒤에는 예상보다 빨리 공식 후계자 발표가 이뤄졌다. 한진그룹은 장례를 마친지 8일 만인 지난달 24일 “이사회를 통해 조원태 신임 한진칼 대표이사 및 회장을 선임했다”고 발표했다. 상속세 등의 복잡한 문제가 남아있긴 했지만, 급변사대에도 불구하고 차분하게 3세 시대를 여는 모습이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고(故) 조양호 회장을 대신할 한진그룹 동일인으로 조원태 대표를 직권 지정했다. /뉴시스

◇ 무색해진 조양호 회장 유훈

하지만 이러한 차분함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고 조양호 회장이 세상을 떠난 지 한 달이 채 되기도 전에 다른 국면이 펼쳐지고 있다.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재계의 연례행사인 총수 지정 문제를 두고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매년 대기업집단의 ‘동일인’을 신고 받아 확정한다. 일반 사기업처럼 오너가 뚜렷한 경우 그룹 총수가 동일인이 되고, ‘총수 없는 대기업집단’으로 분류되는 포스코·KT 같은 경우엔 대표이사가 곧 동일인이다. 이는 상호출자제한, 일감 몰아주기 등의 판단기준이 되는 중요한 사안으로, 매년 재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곤 한다.

한진그룹은 보통 4월 말까지 제출해야 하는 대기업집단 동일인 신고를 제때 하지 못했다. 이에 공정위는 지난 8일까지 자료 제출을 재차 요구했으나 이 기한도 지키지 못했고, 공정위의 발표는 계속 미뤄졌다. 한진그룹은 자료 제출이 지연되는 이유에 대해 “내부적으로 차기 동일인을 누구로 할지 확정하지 못했다”고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원태 대표 회장 선임을 발표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행보였다.

결국 한진그룹은 지난 13일에야 관련 자료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의문이 남았다. 한진그룹은 ‘동일인 변경 신청서’를 제출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조원태 대표가 동일인이 될 경우에 대한 자료만 제출한 것이다. 이를 두고 제출이 늦어진 만큼 공정위의 직권 지정을 염두에 둔 것일 뿐이라는 해석도 있지만, 끝내 내부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됐다.

결과적으로 조원태 대표는 한진그룹의 동일인이 됐다. 공정위는 당초 예상대로 조원태 회장을 한진그룹 동일인으로 직권 지정했고, 이 같은 내용을 포함한 ‘2019년 공시대상기업집단 지정현황’을 15일 공식 발표했다.

그러나 논란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공정위가 한진그룹 동일인에 조원태 대표를 직권 지정할 것으로 알려진 지난 14일, <한겨레>는 조원태 대표의 한진칼 회장 선임 과정이 적법하지 않았다고 단독 보도했다. ‘대표이사’로만 선임했을 뿐 ‘회장’으로도 선임한 것은 아니었으며, ‘회장 선임’을 발표한 것은 정관에 위배된다는 내용이었다. 아울러 한진그룹 오너일가 일부에서는 조원태 대표와 한진그룹 측이 ‘사기극’을 벌였다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고 전했다.

한진그룹은 2세 승계 이후에도 형제 간 분쟁을 벌인 바 있다. /뉴시스

◇ 2세 분쟁 재현되나… KCGI 경영권 도전도 변수

이처럼 뒤숭숭한 분위기 속에 갈등설 등도 고개를 들고 있는 가운데, 한진그룹은 분쟁의 여지를 충분히 갖추고 있다.

한진그룹의 후계자로 조원태 대표가 유력했던 것은 분명 사실이다. 조현아 전 부사장과 조현민 전 전무도 경영에 참여했으나, 잇달아 논란을 일으킨 뒤 일선에서 물러난 상태였다. 반면 조원태 대표는 2016년 대한항공 대표이사로 선임된 데 이어 2017년 사장으로 승진하며 후계구도를 굳혀왔다.

하지만 승계작업이 시작되기도 전에 고 조양호 회장이 세상을 떠나면서 한진그룹은 분쟁의 씨앗을 품게 됐다.

현재 한진그룹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한진칼의 오너일가 지분구조는 고 조양호 회장 17.84%, 조원태 대표 2.34%, 조현아 전 부사장 2.31%, 조현민 전 전무 2.30% 등이다. 여기에 고 조양호 회장의 누나인 조현숙 씨와 남편이 0.76%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고, 정석인하학원(2.14%)과 정석물류학술재단(1.08%), 일우재단(0.16%)의 지분도 합이 3.38%에 달한다.

생전에 증여하지 못한 고 조양호 회장의 지분은 아내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과 세 자녀 등에게 상속된다. 별도의 유언장이 없을 경우, 이명희 전 이사장이 5.94%, 세 자녀가 각각 3.96%를 상속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어느 누구도 절대적인 지배력을 갖지 못하는 상황이다.

재계 관계자는 “삼남매가 모두 적극적으로 경영에 나선 바 있었고, 지분구조가 팽팽한 만큼 교통정리가 쉽지 않을 수 있다”며 “다만, 외부에서 공세를 이어가고 있는 KCGI의 존재도 무시할 수 없다. 결국은 각각의 분야 및 계열사를 나눠 갖는 식으로 정리될 가능성이 높지만 그 과정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는 예상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편, 한진그룹은 과거 2세 승계 과정에서도 형제간 분쟁의 파도에 휩싸인 바 있다. 2002년 고(故)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가 세상을 떠난 뒤 첫째 고 조양호 회장과 둘째 조남호 한진중공업 전 한진중공업 회장, 셋째 고(故) 조수호 전 한진해운 회장, 넷째 조정호 메리츠금융지주 회장이 유산배분 등의 문제로 갈등을 빚었다. 이들의 갈등은 유언장 조작을 둘러싼 논란으로 시작해 각종 고소·고발 전으로 이어졌으며, 이후에도 불편한 관계가 지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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