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의 미중 무역협상을 시작으로 양국 간 패권경쟁이 가속화되고 있다. /뉴시스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의 미중 무역협상을 시작으로 양국 간 패권경쟁이 가속화되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정계성 기자  미중 무역협상을 앞두고 우위를 점하기 위한 힘겨루기가 심화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미국은 지난 10일(현지시각) 2,00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를 10%에서 25%까지 인상했다. 그러자 중국은 오는 6월부터 600억 달러 규모 미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를 똑같이 25% 부과할 것이라고 맞불을 놨다. 양 정상은 6월 일본서 개최되는 G20을 계기로 정상회담을 갖고 담판을 짓는다.

증시폭락과 경제 악영향에 따른 부담으로 합의가 이뤄질 것이라는 낙관론이 조심스럽게 흘러나오지만, 전망이 쉽지 않다. 미중 간 교역량 감소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올해 1분기 3.2%라는 4년 만의 최대 성장률을 거뒀다. 이 시점에서 굳이 양보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할 수 있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14일(현지시각) “우리 경제는 매우 환상적이지만 중국의 경제는 별로 좋지 않다”는 강경한 발언을 내놨다. “미국은 더 이상 돼지저금통이 아니다”라고도 했다.

중국 역시 양보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미국의 보복관세 발표가 있던 날 중국 관영매체들은 일제히 ‘전면대응’을 촉구하며 ‘결사항전’ 여론을 형성했다. 인민일보·CCTV 등은 “이번 전쟁은 인민전쟁”이라며 “중국은 다양한 반격 수단이 있고 장기전을 준비하며 반격에 집중하고 있다”고 했다. 외교부 대변인은 “끝까지 싸워야 한다”는 논평을 냈다. 중국의 경제 관련 싱크탱크들은 각종 경제지표들을 근거로 “여력이 있다”며 승리를 자신했다.

◇ 무역분쟁 본질은 패권다툼과 정치적 이익

그간 미중 협상은 ▲지적재산권 침해 방지 ▲농산물 및 서비스 시장 개방 ▲위안화 환율 조작 ▲외국기업 기술이전 강요 금지 등의 의제를 놓고 진행돼왔다. 미국은 중국의 기술탈취와 이전강요, 불공정한 운영으로 미국 기업에 피해는 물론이고 무역 불균형을 초래해왔다고 주장한다. 미국이 문제를 제기하고 중국이 시정방안을 내놓는 형태로 협상이 진행돼 왔지만, 법제화 등 이행방법을 놓고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갈등의 표면적 이유는 ‘무역 불균형’이지만 이면에는 미중 패권전쟁이 자리하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중국몽’을 장기집권의 명분으로 삼았다. ‘일대일로’ 구상을 통해 세계 1위 국가로 나아가겠다는 야망으로, 그러기 위해서는 시 주석의 장기집권이 필요하다는 논리다. 하지만 이는 미국을 자극할 수밖에 없었고,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웠던 트럼프 대통령과의 패권전쟁은 필연이었다. “우리가 이기고 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서 그 속내를 읽을 수 있다.

국가 간 전략경쟁 외에 두 ‘스트롱맨’의 정치적 이해관계도 얽혀있다. NYT 등 미국 언론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과의 분쟁 승리라는 업적을 차기 대선 ‘홍보’에 사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두 정상 간 무역협상이 이뤄지더라도,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국 압박은 더욱 강도를 높여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협상내용이 성에 차지 않을 경우, 판을 깨버리는 것도 충분히 예상 가능한 카드다.

경제와 별개로 권력구도 측면에서 봤을 때, 미국과 대치하는 것이 시진핑 주석 입장에서도 나쁜 것만은 아니다. 대외적인 압박이 내부적 결속에는 도움이 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등소평 이래 확립된 후계자 지명 전통까지 폐하고 장기집권에 나선 그다. 니키 헤일리 전 주유엔미국대사는 “(시 주석이) 내부를 관리하기 위해 외부의 적을 만들어 민족주의를 끌어내고 있다”고 했다. 더구나 무역협상에서 양보하더라도 패권 다툼이 계속될 것이라면 굳이 양보할 이유가 없다.

◇ 미-중 경쟁 속 ‘졸’ 전락할 우려

김흥규 아주대학교 교수.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국가안보실 정책자문위원. 외교부 정책자문위원.
김흥규 아주대학교 교수.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국가안보실 정책자문위원. 외교부 정책자문위원. / 뉴시스 

문제는 양국 간 패권경쟁 사이에 낀 우리나라다. 미국에 수출하는 중국제품의 중간재를 가장 많이 수출하는 나라 중 하나가 우리다. 미중 무역갈등에 따른 피해를 고스란히 입는 셈이다. 경제뿐만 아니라 외교적으로도 상당한 어려움이 예상된다. 특히 남북관계가 미중 전략경쟁의 틀을 넘어서기 어려운 상황에서 하위 축으로 휩쓸릴 우려가 적지 않다. 최악의 경우, 남북 모두 주도권을 잃고 미중 전략경쟁에서 하나의 ‘졸’로 전락할 수 있는 위기상황이다.

김흥규 아주대학교 교수는 이날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미중 전략경쟁의 심화로) 미국은 북한 비핵화에 방점을 놓지 않을 것이고, 오히려 미중 전략경쟁 차원에서 어떻게 활용할지를 고민할 것이기 때문에 우리 입장에서 긍정적인 소식은 아니다”며 “미국이 추구하는 안보전략 구도 속에 한국이 하나의 졸이 되는 상황이 돼 버리는 대단히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한국처럼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형태의 외교안보 정책을 가져왔던 입장에서 미중 경쟁이 격화되면 될수록 선택의 압박에 놓일 것이고, 어떠한 선택을 하더라도 대가가 크기 때문에 곤혹스런 상황”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이 업적으로서 전략경쟁을 추구한다면 그 위기는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다가 올 수 있다”고 전망했다.

김 교수는 “우리는 북한의 비핵화에 초점을 맞추고, 남북관계 개선과 북미관계 개선을 통해 해결을 모색했는데, 문재인 정부 2년 간 한반도에 안정을 가져온 것은 분명하다”면서도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기 때문에 기존의 방식으로는 대응하기 어렵다. 새로운 패러다임에 맞춰 전략을 가지고 임해야 하는데 아직까지는 보이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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