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은 정호성 전 청와대 비서관이 녹음한 음성파일에서 사실상 최순실 씨의 지시를 받거나 허락을 구하는 모습을 보였다. / 뉴시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정호성 전 청와대 비서관이 녹음한 음성파일에서 사실상 최순실 씨의 지시를 받거나 허락을 구하는 모습을 보였다. / 뉴시스

시사위크=소미연 기자  박근혜 전 대통령은 비선실세로 지목된 최순실 씨에게 존대를 했다. 반면 최씨는 반말을 했다. 간혹 말을 끊기도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자신보다 4살 아래인 최씨를 어려워하는 것으로 보여질만하다. 시사저널이 지난 17일 공개한 녹음 파일이 이를 뒷받침한다. 해당 파일은 이른바 ‘문고리 3인방’ 가운데 한 명인 정호성 전 청와대 제1부속비서관이 녹음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개된 파일의 녹음 시점은 2013년 2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취임식을 앞뒀을 때다. 취임사 초안을 두고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씨, 정호성 전 비서관이 서울 모처에서 만나 회의를 했다. 이 자리에서 최씨는 취임사 초안에 대해 “팩트가 없다. 짜깁기해서 그냥 갖다 붙였다”고 혹평을 하며 정호성 전 비서관에게 ‘좀 적어라’ 지시하거나 ‘빨리 써라’고 큰소리를 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최씨의 의견을 동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복지정책 부분에 대해 최씨가 “이런 게 취임사에 들어가는 게 말이 안 된다. 하나도 쓸모없다”면서 “나는 경제부흥에서 가장 중요한 국정의 키(key)를 과학기술·IT산업이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하자 “그게 핵심”이라고 응수했다.

여기에 정호성 전 비서관이 ‘일자리’를 언급하자 최씨는 한숨을 쉬었다. 그가 “그건 부수적인 것이다. 꼭지가 몇 개 나와야 하는 거냐”고 묻자 박근혜 전 대통령이 “예. 예. 몇 가지 큰 흐름에서 멋있는 게 나와야 하는데 이건 그런 게 없다”고 다시 한 번 동조했다.

하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의 의견은 번번이 무시를 당했다. 그는 최씨에게 부국(부자나라) 정국(부패 없는 나라) 평국(편안한 나라)을 말하는 과정에서 ‘평국을 다른 말로 하라. 상의를 좀 해봐라’고 지적을 받자 “예. 예. 예”라고 답했다. 청와대 로고를 교체하는 문제에서도 “파란 기와 하나만 넣자”고 최씨에게 제안했으나, 정작 최씨는 과일과 낫토를 권하며 화제를 전환시켰다. 

녹음 파일의 내용상 회의를 주도하는 사람은 최씨다. 하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씨는 국정농단 혐의에 대해 줄곧 부인해왔다. 사건은 현재 대법원에서 최종 심리가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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