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랜드의 전 이사들이 오투리조트에 대한 기부를 결정했던 것과 관련해 수십 억대 손해배상 책임을 지게 됐다. /뉴시스
강원랜드의 전 이사들이 오투리조트에 대한 기부를 결정했던 것과 관련해 수십 억대 손해배상 책임을 지게 됐다. /뉴시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유명무실’ 논란이 끊이지 않는 사외이사에 대해 대법원이 의미심장한 판결을 내렸다. 이사회 안건에 의사를 표시하기 위해 드는 사외이사들의 손이 한층 무거워질 것으로 보인다.

최근 대법원 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는 강원랜드가 전직 이사 9명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9명 모두의 책임을 인정한 원심을 깨고, 7명의 책임만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이에 따라 7명의 이사들은 30억원을 책임비율에 따라 배상하게 됐다. 소송비용과 이자 등을 더하면 배상 부담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대법원 판결을 부른 사건은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강원랜드는 태백시가 출자해 운영 중이던 오투리조트가 심각한 경영난을 겪자, 기부금 형태로 150억원을 지원한 바 있다. 지역사회 차원의 지원 요청 여론에 힘이 실린 가운데, 이사회 의결은 김호규 당시 사외이사 주도로 이뤄졌다. 12명의 이사진 중 7명이 찬성표를 던진 것이다. 김호규 전 사외이사는 강원랜드 주주인 태백시 측 사외이사였고, 태백시의원을 지내기도 했다.

문제는 이 같은 기부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고, 이를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실제 강원랜드가 지원한 기부금은 순식간에 사라졌고, 오투리조트는 2014년 법정관리에 돌입해 2016년 부영그룹에 매각됐다.

2012년 당시 강원랜드는 법무팀 검토를 통해 150억원의 기부금을 건넨다 하더라도 오투리조트의 회생이 어렵다는 것을 파악하고 있었다. 또한 앞선 2008년에도 비슷한 규모로 오투리조트 전환사채를 인수했다가 모두 손실 처리한 경험을 갖고 있었다. 이 같은 경험과 법무팀 검토를 참고했다면 결코 이뤄질 수 없었던 의사결정이 이사회에서 내려진 셈이다.

결국 강원랜드는 이와 관련한 감사원의 지적을 피할 수 없었다. 감사원은 2014년 3월 해당 안건에 찬성 또는 기권한 이사들을 해임하고, 손해배상을 청구하라고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에게 통보했다.

이에 강원랜드는 당시 찬성표를 던진 7명의 이사와 기권표를 던진 최흥집 당시 사장 및 김성원 당시 부사장 등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1·2심 재판부의 판단은 일치했다. 상법이 정한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주의의무’를 위배했다며 9명 모두의 배상책임을 인정한 것이다. 150억원 기부에 따른 공익 기여 정도가 크지 않고, 강원랜드의 장기적 이익에도 부합하지 않는다는 설명이었다.

다만, 대법원은 당시 이사회 의결에서 기권한 두 이사의 책임은 인정하지 않았다. 이로써 최종적으로 7명의 당시 이사들이 손해배상 책임을 나눠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들은 대부분 지역 관련 인사이며 6명은 사외이사, 1명은 비상임이사로 재직한 바 있다.

가뜩이나 오투리조트로 인해 거센 홍역을 치렀던 태백 지역사회는 이러한 판결까지 내려지면서 더욱 뒤숭숭해졌다. <강원도민일보>에 따르면, 김호규 사외이사 측은 이번 대법원 판결과 관련해 태백시를 상대로 구상권 등의 소송을 진행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에 따라 추가 소송이 줄줄이 이어질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한편, 이번 대법원 판결은 사외이사의 이사회 의결 관련 책임을 강조했다는 측면에서 주목을 끌고 있다. 사외이사 제도는 그동안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꼬리표처럼 끊이지 않았다. 특히 공공부문의 경우 사외이사의 무책임한 행보 속에 국민 혈세가 낭비되는 일이 상당했지만 이번처럼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등 적극적인 책임을 묻는 일은 거의 없었다. 묵묵히 거수기 노릇만 한 경우에는 더욱 그랬다.

최근 우리 사회는 주주행동주의 확산과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등 경제민주화 차원의 변화가 눈에 띄게 이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공공부문 사외이사의 책임을 강조한 판결까지 더해지면서 향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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