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원내대책회의에서 나경원 원내대표가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 뉴시스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원내대책회의에서 나경원 원내대표가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 뉴시스

시사위크=은진 기자  자유한국당이 국회 정상화의 전제조건으로 ‘국회 정치개혁·사법개혁특별위원회 기능 폐지’를 언급했다. 선거법 개정안과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법의 패스트트랙 절차 자체를 무효로 해야 한다는 기존 요구에 덧붙여 패스트트랙을 진행한 양대 특위를 폐지하자는 조건을 추가로 내건 것이다. 나경원 원내대표가 더불어민주당·바른미래당 원내대표를 만나 화기애애한 ‘호프(맥주)회동’을 한 지 반나절 만에 분위기가 뒤집힌 모습이다.

정양석 한국당 원내수석부대표는 21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국회 정상화의 전제조건으로는 합의정신을 위반한 선거법과 공수처법, 검·경수사권 분리에 대한 여야 간 합의처리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합의정신을 이룩하지 못한 정개특위와 사개특위는 이제 그 수명을 다했다고 생각 된다”고 했다.

정 원내수석은 “정개·사개특위에서는 우리당을 배제하고 패스트트랙을 결정했다. 동료의원들을 사진촬영하고 고발하겠다고 협박했고 몰래 장소를 옮겨가면서까지 회의를 진행했다. 위원장의 리더십으로 여야가 같이 합의할 수 있는 선거법·공수처법 처리는 지금의 정개·사개특위에서는 할 수 없다. 이미 신뢰를 잃었다”며 “국회 정상화를 위해서 정개·사개특위의 기능 폐지 문제도 차제에 같이 검토해주실 것을 요청드린다”고 말했다.

정개·사개특위 기능을 폐지하자는 주장은 사실상 양 특위의 활동기한을 연장하지 말자는 이야기와 일맥상통한다. 정 원내수석은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정개·사개특위 기능을 폐지하자는 것은 활동기한을 연장하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패스트트랙 사태를 만든 사람들과 법안 논의를 하면 제대로 되겠느냐”고 했다.

양 특위의 활동기한은 지난해 12월 말 여야 합의로 6개월 연장돼 오는 6월 말까지다. 특위 활동기한이 연장되지 않으면 국회법 절차상 패스트트랙에 오른 법안은 관련 상임위원회로 넘어가게 된다. 선거법 개정안은 행정안전위원회로, 공수처법·검경수사권 조정안은 법제사법위원회 소관이 되는 것이다.

◇ 특위 연장 문제, 새로운 뇌관?

전날(20일) 민주당·한국당·바른미래당 원내대표 ‘호프회동’에서 “조속히 국회를 정상화해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 한다”는 원칙을 재확인하고 주말 사이 여야가 물밑대화를 통해 국회 정상화 방안에 대한 구체적인 의견 접근을 이룰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지만, 한국당의 태도가 향후 국회 상황에 변수가 될 가능성이 점쳐진다. ‘패스트트랙 원천 무효’에 이어 정개·사개특위 연장 문제가 새로운 쟁점으로 떠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양 특위 임기 연장에 무게를 두고 있는 상황이다. 민주당 원내대표단은 전날 오후 당 소속 정개·사개특위 위원들과 연석회의를 열었다. 원내대표단이 새롭게 교체된 만큼 지금껏 논의돼온 양 특위의 쟁점과 향후 패스트트랙 정국에 대한 전략을 공유하기 위한 자리였다. 정춘숙 원내대변인은 “(특위를) 연장하는 것이 좋지만, 우리 뜻대로 하는 것이 아니지 않느냐”며 “변수가 많아서 시나리오를 짤 수 없는 상황이라 우선 상세하게 이야기했다”고 전했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통화에서 “지금 (하고 있는) 특위를 연장하면 계속해서 선거법·공수처법·검경수사권 조정안을 논의하던 사람들의 논의가 이어지니까 효율성 측면에서 연장을 하는 게 맞는다는 이야기가 (민주당에서) 나오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한국당은 ‘호프회동’ 이후 다시 강경노선으로 굳히는 모양새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지금 미봉책으로 국회를 여는 것만 능사라고 생각하지 않고 파행에 대한 책임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며 “(패스트트랙 관련) 민주당의 확실한 의사표명과 함께 패스트트랙 법안을 처음부터 다시 논의해야 한다”고 했다.

일각에선 이 같은 한국당의 강경한 태도가 당내 반발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패스트트랙 사태로 당 대표가 장외투쟁에 나섰고, 당 소속 의원·보좌진이 무더기로 고발당한 상황에서 ‘호프회동’만으로 국회 정상화 물꼬를 트는 것은 당내에 허탈감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장제원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아무리 봐도 뭐하고 있는 것인지 의아하다. 불과 얼마 전 (여야4당) 야합을 통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악법들을 패스트트랙에 태웠다. 그 과정에서 50명 이상의 의원들과 보좌진들이 집단 고발을 당했고 일부 의원들의 부상도 속출했다. 행동지침을 받아 며칠 밤을 땅바닥에서 자고 물리적 충돌까지 연출하며 ‘동물’이 되기도 했다”며 “이런 극한 상황에서 맥주 들고 건배하는 모습을 본다. 국회에 돌아가기 위한 분위기 조성이 필요하다면 조건 없이 등원하는 것이 훨씬 더 깔끔하다. 맥주는 열심히 일하고 나서 마시는 것이 제 맛”이라고 쓴소리를 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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