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게임이용장애 ‘질병’ 분류… 2025년 이후 국내 도입 유력
3년간 11조원 손실·종사자수 8,000명 이상 감소 전망
“인디·중소게임사 직격타… 우수 인력 해외 유출 우려”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 기사 내용과는 관련 없음. / 이가영 기자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 기사 내용과는 관련 없음. / 이가영 기자

시사위크=이가영 기자  세계보건기구(WHO)가 게임이용장애를 질병으로 분류하면서 13조에 달하는 국내 게임산업의 경쟁력 약화가 우려된다. 

25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서 열린 제72차 총회에서 WHO는 게임 과몰입(게임 중독)을 ‘질병’으로 인정하기로 만장일치 결정했다. 

WHO는 게임 장애를 ▲빈도, 시간 등 게임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이 손상되고 ▲게임이 다른 관심사 혹은 일상 생활보다 우선순위가 높아져 부정적인 결과가 발생하며 ▲이러한 현상이 12개월 이상 명백하게 지속돼야 한다고 정의했다. 다만 증상이 심각할 경우 1년 이내라도 게임중독 판정을 내릴 수 있다. 

즉 ‘게임을 자주 한다’, ‘좋아한다’ 정도는 질병으로 분류하지 않는다. 다만 일상생활보다 게임을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자기 행동을 통제를 못 하는 상황이 1년 가까이 계속될 경우 질병으로 본다는 말이다. 

30년만에 개정된 분류 기준안은 2022년 1월 1일부터 효력이 발생한다. 다만 권고사항이기 때문에 각국에서 반영여부를 선택할 수 있다. 만약 권고안을 받아들일 경우 해당국가는 게임중독과 관련한 보건 통계를 작성해 발표하게 되고 예방과 치료를 위한 예산도 배정할 수 있게 된다. 

국내외 업계는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며 결사반대에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27일 문체부 관계자는 <연합뉴스>와의 전화통화를 통해 “수긍할 수 있는 과학적 검증 없이 내려진 결정이어서 WHO에 추가로 이의를 제기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특히 문체부는 게임중독 질병 분류를 수용하기로 한 복지부가 주도하는 정책협의체에도 참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이날 한국게임산업협회도 미국, 유럽,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전세계 게임산업단체와 함께 WHO에 게임이용장애 분류 재고를 촉구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들은 “게임이용장애는 WHO의 ICD-11에 포함될 만큼 명백한 증거를 기반으로 하고 있지 않다”며 “이번 조치는 막대한 영향력을 가진 결과가 되거나 의도치 않은 결과가 될 수도 있으며, 실질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위해를 가져올 수도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덧붙여 “게임산업은 VR, AR, 인공지능, 빅데이터 분석 등 첨단 기술 개발에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는 정신 건강, 치매, 암, 기타 다양한 분야까지 연구 과학 분야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전했다.

게임업계가 이토록 결사반대에 나서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이번 WHO의 결정이 권고사항임에도 불구, 국내에 도입될 가능성이 높아서다. 실제 앞서 지난해 10월 병·사인분류(KCD)를 총괄하는 보건복지부는 국정감사에서 WHO의 개정안을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전문가들은 2025년 이후 국내 적용을 예상하고 있다. KCD가 5년 주기로 개정되고 다음 개정이 2020년 예정돼있어서다. 보건복지부는 향후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민관협의체를 구성할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더욱 커지고 있다. 

게임 중독이 질병으로 등록될 경우 국내 게임산업에 직격타가 예상된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18 대한민국 게임백서’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게임 시장의 매출액 총합계는 13조가 넘을 전망이다. 미국, 중국, 일본에 이은 전 세계 4위 규모다. 

그러나 분류 개정안(ICD)이 통과될 경우 국내 게임산업은 2023년부터 3년간 최대 11조원(누적)의 경제적 손실이 우려된다. 이로 인한 종사자수 감소도 8,000명 이상일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인력난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업계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엎친데 덮친격’이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한국은 게임을 보는 시각이 곱지 않은 나라인데 앞으로 규제가 더 심해질 것 같아 걱정 뿐”이라며 “중국 게임사들이 한국 게임시장을 점령하는 것도 멀지 않았다”고 전했다. 

아울러 “큰 회사보다 참신한 게임콘텐츠를 개발하는 인디·중소 게임사의 고충이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한다”며 “결국에 인재들은 전부 해외로 나가게 될거고 결론적으로 한국의 게임산업을 크게 위축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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