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외교기밀 유출 논란을 비호하고 있는 자유한국당을 직접 겨냥해 비판했다. 사진은 5.18 기념식 당시 문 대통령과 황교안 한국당 대표가 악수하는 모습. /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외교기밀 유출 논란을 비호하고 있는 자유한국당을 직접 겨냥해 비판했다. 사진은 5.18 기념식 당시 문 대통령과 황교안 한국당 대표가 악수하는 모습. / 뉴시스

시사위크=은진 기자  한미 정상 통화 내용을 공개해 논란이 되고 있는 강효상 자유한국당 의원의 외교기밀 유출 사태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이 유감을 표명했다. 이번 논란에 대해 문 대통령이 공식입장을 낸 것은 처음이다. “국민의 알권리라거나 공익제보라는 식으로 두둔하고 비호하는 정당”이라고 적시해 사실상 한국당을 공개 비판하기도 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제39주년 기념식 이후 문 대통령의 “독재자의 후예”라는 발언으로 한차례 부딪쳤던 청와대와 야당의 관계가 다시 냉각기에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29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을지태극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외교적으로 극히 민감할 수 있는 정상 간의 통화 내용까지 유출하면서 정쟁의 소재로 삼고, 이를 국민의 알권리라거나 공익제보라는 식으로 두둔하고 비호하는 정당의 행태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며 “국정을 담당해봤고, 앞으로도 국민의 지지를 얻어 국정을 담당하고자 하는 정당이라면 적어도 국가 운영의 근본에 관한 문제만큼은 기본과 상식을 지켜 줄 것을 요청한다”고 했다. 또 “당리당략을 국익과 국가 안보에 앞세우는 정치가 아니라 상식에 기초하는 정치라야 국민과 함께 갈 수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문 대통령은 “정부로서는 공직자의 기밀 유출에 대해 국민들께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이번 사건을 공직기강을 바로 세우는 계기로 삼고, 철저한 점검과 보안 관리에 더욱 노력하겠다”며 외교부의 쇄신을 당부하기도 했으나, 대체적으로 ‘한국당 비판’에 무게가 실렸다는 평가다.

문 대통령의 이번 발언은 지난 18일 5·18 기념식 추도사에서 “독재자의 후예가 아니라면 5·18을 다르게 볼 수 없다”고 했던 발언보다 한층 직접적이기도 하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이날 문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이 알려진 직후 기자들과 만나 “문 대통령께서 지금 정쟁을 사실상 총지휘하시는 것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외교무능이나 실질적인 체면 손상에 대해 이렇게 야당을 몰아세우는 것에 앞장서는 모습이 과연 국격(향상)에 도움이 되겠느냐”고 반발했다.

문 대통령의 발언은 그간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한국당을 비판해온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당 회의에서도 “강효상 의원의 국기문란과 한국당의 비호는 실망을 넘어 자괴감마저 든다. 외교안보를 위협하고도 국민알권리를 변명거리로 삼는 것은 국민을 우롱하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은 이번 사안을 강 의원과 외교관의 유착 관계에 초점을 맞춰 ‘국정농단’이라고 보고 있다. 국정운영 파트너인 제1야당을 ‘적대시’하는 분위기가 확산되면 향후 여야 관계는 ‘악화일로’를 걷게 될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나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의원총회에서도 “문 대통령께서 상식적으로 좀 판단해주실 것을 촉구한다. 특히 지금 기밀 누설을 운운하면서 우리 당 의원을 고발하고 압박하는 것까지 포함해서 한마디로 국회를 정상화시키지 못하도록 대통령과 청와대가 전부 기획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강하게 든다”고 재차 주장했다.

논란의 당사자인 강 의원도 당 의총에서 직접 입을 열었다. 강 의원은 “청와대의 겁박과 민주당, 외교부의 고발에 이어 오늘은 문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비판 대열에 가세했다. 매우 유감”이라며 “저희가 두려워해야할 것은 국민이지 권력이 아니다. 제가 한미 정상 통화를 공개한 이유는 분위기로만 느꼈던 한·미·일 동맹 간의 ‘한국 패싱’ 현상을 국민께 있는 그대로 보여드리기 위함이었다”고 설명했다.

강 의원은 “민주적으로 당선된 베네수엘라의 차베스도 행정·사법·입법과 언론을 차례대로 장악하며 독재자로 돌변했다. 냉전 이후 민주주의는 선출된 지도자에 의해 붕괴되어왔음을 역사는 증명해왔다”며 “정부·여당의 폭정을 막고 제대로 된 야당 역할을 하는 곳은 현재 우리 한국당 밖에 남지 않았다. 여기서 우리가 물러서면 대한민국이 걸어온 영광의 역사는 문재인 정권에 의해 몰락할 것이라는 현실이 저는 너무나 두렵다. 공직사회를 겁박하고 불편한 야당 의원의 입을 막으려는 정부여당의 탄압에 앞으로도 당당하고 단호히 대처하겠다”고 ‘정면승부’를 예고했다.

한국당은 전희경 대변인 명의로 낸 논평에서도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아닌 정파의 수장으로, 국무회의를 무대삼아 야당저격에 대통령이 직접 나섰다. 핵심은 제쳐두고 야당비판에 직접 대통령이 나서는 모습은 보고 있기가 민망할 지경”이라며 “문 대통령께서 기본과 상식을 야당을 향해 이야기 하시려면 정상궤도를 한참 벗어난 외교안보라인, 정의용 실장, 강경화 외교부장관에게 그 책임을 묻는 것이 순서”라고 지적했다.

한국당 고위 관계자는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문 대통령의 발언이 (현 국회 상황에) 무슨 보탬이 되겠느냐. 우리가 개입하지 않을 정도로 외교를 잘 한다면 우리가 뭐라고 하겠나. 지금 기밀이다 아니다 거기에만 집중해서 상황이 더 갈수록 안 좋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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