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숭호 ▲언론인 ▲전 한국신문윤리위원
  정숭호   ▲언론인 ▲전 한국신문윤리위원

18세기 영국 산업혁명의 창시자들은 사회적 책임의식이 있었다. 맨체스터, 리버풀과 함께 산업혁명 발진기지의 한 곳으로 꼽히는 영국 제2의 도시 버밍엄의 기업인들과 지식인들은 매월 보름달이 뜰 무렵이면 한 곳에 모여 나날이 쏟아져 나오는 새로운 지식과 기술로 ‘인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안을 찾아내기 위해 뜨겁게 토론했다.

밤새 격렬한 논쟁을 벌인 후 아직 환히 비추는 달빛을 받으며 집으로 돌아갔던 이들의 모임에는 곧 ‘달빛협회(Lunar Society)’라는 이름이 붙었고, 회원들은 ‘미친 사람’을 뜻하는 영단어 ‘Lunatic’의 끝 글자만 바꾼 ‘Lunatik’으로 불렸다.(라틴어 ‘luna’는 달이며, 예전 서양 사람들은 달이 광기를 끌어온다고 믿었다.)

진화론의 창시자 찰스 다윈의 할아버지인 에라스무스 다윈, 증기기관을 제대로 만들어 낸 제임스 와트, 오늘날에도 명품으로 꼽히는 웨지우드 도자기 회사의 창업자 조시아 웨지우드, 기체에 산소가 있음을 찾아낸 조지프 프리스틀리, 미국 독립운동의 아버지이면서 정치 외교 과학 언론 등 모든 분야에서 팔방미인이었던 벤자민 플랭클린 등이 대표적 ‘Lunatik’이었다.

‘인간 등정의 발자취’ 등 여러 권의 뛰어난 과학기술사(史)를 써낸 영국의 제이콥 브루노우스키는 “훌륭한 생활이란 물질적 풍요 이상인 것이지만, 물질적인 풍요를 떠나서는 안 된다는 일관되고 소박한 신념이 이들의 정신을 관통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물질적 풍요라는 산업혁명의 과실을 기업인과 자본가, 노동자 농민 등 산업혁명 참여자 모두 함께 나누는 방법을 매우 진지하게, 보기에 따라서는 ‘미친 듯이’ 고민했기에 이들을 ‘Lunatik’이라고 불렀을 것이다. (각 분야에서 ‘Lunatik’들 많아짐으로써 노블리스 오블리주라는 영국적 전통이 형성됐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200년 전 영국의 달빛 협회 회원들의 생각과 활동이 새삼 떠오른 것은 요 며칠 사이 격해진 차량 공유 서비스를 둘러싼 소위 ‘타다 논쟁’ 때문이다. “택시 업계가 IT혁신을 가로막는다. 정부는 뭐 하나”라는 내용의 이재웅 쏘카 대표의 발언에 “정부는 혁신의 그늘을 생각하고 있다. 정부를 마냥 비판하는 이 대표는 무례하고 이기적”이라는 최종구 금융위원장의 비난으로 시작된 이 논쟁은 김정호 베어베터 대표가 이 대표의 발언을 또 다른 방향에서 반박하면서 ‘타다 논쟁’으로 이름이 붙었다. 이찬진 한글과 컴퓨터 전 대표도 이 대표의 생각에 반대하는 쪽에 가세하자 자극적인 제목 달기 좋아하는 언론은 ‘벤처 스타들 설전으로 번진 타다 논쟁’과 같은 제목으로 이 논쟁을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다음’을 창업했다가 손을 떼고 ‘쏘카’를 새로 만들고, ‘타다’ 운영사의 대주주이기도 한 이 대표나, ‘네이버’ 창업자의 한 명인 김 대표, 한글과 컴퓨터를 만든 이 대표를 우리나라 4차 산업혁명의 선구자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 4차 산업혁명일진대, 우리나라에서 인터넷을 산업화, 사업화한 최초의 인물들인 이들을 그렇게 불러서는 안 될 이유는 없을 것이다.

나는 이들이 ‘차량 공유 서비스’를 놓고 벌이는 설전이 200년 전 산업혁명 초기 영국 버밍엄의 달빛협회 회원들의 논쟁처럼 발전하기를 바란다. 이들의 논쟁이 모든 새로운 환경에서는 반드시 일어나게 마련인 대립과 갈등의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나아가 새로운 기술과 지식의 채용으로 발생하는 이익을 어떻게 나누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가에 대한 논쟁,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어떻게 하면 실천할 것인가에 대한 논쟁으로 발전하기를 바란다.

나아가 나는 달빛협회 회원들의 논쟁과 토론처럼 ‘타다 논쟁’도 우리나라에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는 평가를 받게 되기를 기대한다. 이 논쟁 참여자 모두 이 순간 이 나라에 필요한 게 무엇인지에 대한 식견과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라는 점에서도 나의 기대는 헛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다만 논쟁 참여자들이 논쟁에 이기기 위해 혹시라도 논쟁을 인신공격으로 변질시키거나 조롱과 야유만 가득한 ‘말싸움-설전’으로 끌고 나가지나 않을까 걱정은 된다. 우리나라 4차 산업혁명의 선구자들이 “이분 왜 이러시나?”, “이 사람 웃기는 짬뽕!” 같은 천박한 표현을 쓰는 건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는 말이다. 그런 말 자꾸 쓰면 진짜 미친 사람, ‘Lunatik’이 아니라 ‘Lunatic’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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