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이가영 기자  최근 온라인에서는 ‘자강두천’이라는 말이 유행이다. ‘자존심 강한 두 천재’의 줄임말이지만 사실상 ‘천재’는 비꼬는 표현이다. 고만고만한 사이에 마찰이나 갈등 일어날 때 활용한다고 보면 된다.

한 유튜버가 유명 프로게이머 ‘페이커’와 ‘도파’의 리그오브레전드(롤) 경기를 ‘자존심 강한 두 천재의 새벽 솔랭 3연전 마지막경기’라는 제목으로 올린돼서 유래됐다. 명성과 달리 실망스러운 경기력을 보여준 것을 비꼰 것.

최근 문화체육관광부와 보건복지부의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를 놓고 벌인 실랑이는 그야말로 ‘자강두천’이라는 표현을 연상케한다. 

앞서 지난 28일(현지시간) 세계보건기구(WHO)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 72차 총회에서 게임이용장애를 질병으로 최종 확정했다. 30년만에 개정된 국제질병표준분류기준인 ICD-11은 2022년 1월 1일부터 효력이 발생한다. 다만 권고사항인 만큼 194개 회원국이 반영여부를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 이에 국내 도입을 두고 문체부와 복지부의 의견이 첨예하게 갈렸다.

복지부는 WHO 결정 하루만에 다음 달 중 사안을 논의할 사회적 협의체를 꾸린다는 계획을 내놨다. 복지부는 해당 협의체에 게임산업 주무부처인 문체부 등 정부부처와 게임업계, 보건의료계 등 민간업계를 참여하도록 해 게임중독의 질병지정을 둘러싼 여러 쟁점들을 논의하겠다는 방침이다. 복지부는 문체부에 협의체에 대한 참가 요청 공문을 직접 보내겠다는 입장도 덧붙였다. 

문체부는 즉각 복지부의 민관협의체 구성 계획에 동참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복지부가 게임이용장애의 원인을 게임 자체 문제로 보고 있는데다, 협의체가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도입을 전제로 하고 있서다. 문체부는 복지부가 제안한 협의체가 아닌 국무조정실이나 KCD를 주관하는 통계청이 중재하는 보다 객관적인 협의체가 구성될 경우 참여하겠다는 입장이다. 

두 부처 간 갈등이 격화되자 오죽하면 상황을 지켜보던 국무조정실이 나섰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28일 총리실 간부회의서 “관계부처들은 향후 대응을 놓고 조정되지도 않은 의견을 말해 국민과 업계에 불안을 드려서는 안 된다”며 엄중 경고를 놨다. 

이 총리가 국무조정실 주도로 민관협의체를 운영하기로 정리하면서 양 부처 간 갈등은 일단락되는 모양새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게임업계의 한숨은 깊어지고 있다. 국내 도입을 위한 갈등이 해결되기 전까지 갈길이 한참 남았다는 점에서다. 

부처 간 다툼으로 제대로 된 대책이나 협의 없이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가 국내에 도입될 경우 그 피해는 고스란히 게임업계가 안아야 한다. 실제 ICD-11가 국내로 도입될 경우 게임산업은 2023년부터 3년간 최대 11조원(누적)의 경제적 손실이 우려된다. 게임은 국내 콘텐츠 수출의 절반을 차지하는 금싸라기 산업이다. 산업 피해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선 이제라도 부처 간 밥그릇 싸움을 멈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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