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16 15:59
[김재필 ‘에세이’] H에게- 선한 인연 만들기
[김재필 ‘에세이’] H에게- 선한 인연 만들기
  • 김재필 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 승인 2019.05.31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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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필자: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지난주에는 3박 4일 동안 카메라 메고 경상남도 거제, 전라남도 순천, 경상북도 문경에 다녀왔네. 1년 예정으로 새로운 사진 프로젝트 ‘30인보’를 시작했기 때문이야. 전국을 돌아다니며 다양한 사연과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하고 밥 먹고 놀면서 카메라에 담는 작업이지. 지인들에게 소개 받거나 길을 가다가 만난, 생전 처음 보는 사람 30명을 담을 예정이어서 프로젝트 제목이‘30인보’일세. 흥미롭지 않겠는가? 60년 이상 살면서 전혀 만나본 적이 없었던 사람들을 공식적인 노인이 된 나이에 만나 어떤 식으로든 함께하는 시간을 갖고, 그들의 얼굴과 살아가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진솔하게 카메라에 담는 작업이야.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흥미롭고 나름 행복한 시간들이 될 거라고 믿고 있네.

이번에는 거제, 순천, 문경에서 다섯 분을 만나 그들의 삶을 보고 듣고 담았네. 그들은 나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살고 있는 사람들이었어. 별로 넓지도 않고 다민족국가도 아닌 우리나라에 이렇게 다양한 사연을 안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는 게 의외였다고나 할까. 그런 사람들을 만나 자연스럽게 함께 밥 먹고 술 마시고 웃고 떠들면서, 그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지인처럼 다소곳이 들으면서, 계속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있는 백발의 노인. 상상만 해도 멋진 풍경 아닌가? 그때 문득 인연이라는 말이 떠오르면서 생각난 시가 조오현 스님의 <나는 말을 잃어버렸다>었네.

내 나이 일흔둘에 반은 빈집뿐인 산마을을 지날 때// 늙은 중님, 하고 부르는 소리에 걸음을 멈추었더니 예닐곱 아이가/ 감자 한 알 쥐어주고 꾸벅, 절을 하고 돌아갔다 나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그 산마을을 벗어나서 내가 왜 이렇게 오래 사나 했더니/ 그 아이에게 감자 한 알 받을 일이 남아서였다// 오늘은 그 생각 속으로 무작정 걷고 있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을 지인의 소개로 만나 밥 먹고 술 마시고 카메라에 담는 행위를 인연이라는 말 아니면 뭐로 설명할 수 있을까? 몇 년 전 내가 사진을 시작하지 않았거나, 어떤 식으로든 저들과 인연이 닿지 않았다면, 어떻게 내가 저들을 거제나 문경에서 만날 수 있겠는가? 다시 한 번 『법구비유경』에 나오는 말들을 떠올리며 전율했었네.

“모든 중생에게는 피할 수 없는 일곱 가지가 있다. 첫째는 태어남이고, 둘째는 늙음이며, 셋째는 병듦이고, 넷째는 죽음이며, 다섯째는 죄이고, 여섯째는 복이며, 일곱째는 인연이다. 이 일곱 가지 일은 아무리 피하려 해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나이 들고, 사진 찍기 시작하면서 인연이란 피할 수 없는 것임을 실감했네. 그래서 하는 말이네만, 지금 옆에 있는 사람들을 눈 크게 뜨고 다시 한 번 보게나. 이 세상에 오기 전 어디에서 본 얼굴 같지 않는가. 기억도 희미한 아득한 옛날 어디에서 만나 식사 한 번 함께한 것 같지 않는가. 이게 ‘지금 여기’살고 있는 사람들 모두를 사랑해야 하는 이유일세. 나랑 먹고 입는 것이 다르고 생각하는 것이 다를지라도 모두를 다 형제자매처럼 사랑해야 하는 이유야. 다음 생에 길을 가다가 우연히 만나도 부끄럽고 쑥스럽지 않으려면 지금 함께 사는 사람들 모두를 사랑해야 하네.

불가에서 말하는 것처럼 우리 사람 마음의 바탕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는 것일세. 선과 악은 인연에 따라 일어나고 사라질 뿐이야. 선한 인연을 만나면 내 마음도 선해지고 나쁜 인연을 만나면 내 마음도 악해지는 것이거든. 그래서 선한 인연을 만나야 삶이 편하네. 그런 선한 인연을 만나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소욕지족의 삶을 살아야 하는 거고. 욕심이 많아지면 선한 인연은 점점 멀어질 수밖에 없네. 세상이 점점 험해지고 사람들 관계가 소원해지는 이유가 뭐겠나. 다 욕심 때문이야.

지금 찍고 있는 분들과의 만남이 선한 인연일 거라 믿네. 다음 생에 카메라 메고 길을 가다가 우연히 만나도 기꺼이 얼굴 한 컷 웃으면서 찍을 수 있는 사이가 되길 바라지. 신동엽 시인의 시 <담배 연기처럼>에서처럼, “언제이던가/ 이 들길 지나갈 길손이여// 그대의 소맷 속/ 향기로운 바람 드나들거든/ 아퍼 못 다한/ 어느 사내의 숨결이라고/ 가벼운 눈인사나/ 보내다오”라고 내 마음이 그들에게 전달될 정도로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싶네. 언제 끝날지 모르지만, 이번 프로젝트가 이 땅에서 나와는 다른 방식으로 살고 있는 사람들을 더 깊게 이해하고 사랑하는 계기가 될 걸세. 나의 마지막 화양연화일 것이고. 많은 격려 부탁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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