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공청회를 열고 주세 개편안을 내놓았지만 구체적인 시기 등이 빠지면서 '반쪽짜리'에 그쳤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 뉴시스
3일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공청회를 열고 주세 개편안을 내놓았지만 구체적인 시기 등이 빠지면서 '반쪽짜리'에 그쳤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 뉴시스

시사위크=범찬희 기자  50여년 만에 술의 양과 도수를 기준으로 삼는 종량세로 주세가 개편될 전망이다. 이로 인해 가격 경쟁에서 수입산에 밀려 고전하고 있는 국내 맥주업체들의 세 부담이 줄어들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하지만 개편 시기가 아직 확정되지 않고, 소주가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면서 반쪽짜리 개편에 그쳤다는 지적이 나온다.

◇ 종량제 가시화… ‘기울어진 운동장’ 바로 잡나

차일피일 미뤄오던 주세 개편의 물꼬가 트였다. 지난 3일 정부 용역을 맡은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하 조세연)은 ‘주류 과세 체계의 개편에 관한 공청회’를 열고, 총 세 가지의 주세 개편안을 내놨다. △맥주만 종량세로 전환 △맥주‧막걸리만 종량세로 전환 △모든 주종을 종량세로 전환하되 맥주‧막걸리 외 주종은 시행시기 유예가 이날 조세연이 내놓은 개편안의 큰 줄기다.

첫 발을 내딛은 주세 개편은 늦은 감이 강하다. 수입 맥주 ‘4캔에 1만원’에 밀려 시장 경쟁력을 잃어가는 국내 업체들의 역차별 주장에 정부가 귀를 기울이는 듯 했지만, 진전은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지난해 7월 기획재정부가 종량세 개편안을 발표하려 했지만 돌연 ‘재검토’를 밝힌 후 감감무소식이었다. 그러다 마침내 이달 조세연의 주세 개편 연구용역 결과가 나온 것이다.

국내 맥주업체들이 줄기차게 주세 개편을 요구해 온 건 현행법이 자신들에게 불합리하다는 이유에서다. 편의점 등에서 수입 맥주가 국산 맥주보다 저렴한 가격에 판매되고 있는 건, 현재 주세법이 주류의 ‘가격’에 세금을 매기는 종가세를 따르기 때문이다. 수입 맥주는 수입 신고가와 관세를 더한 금액을 기준으로만 세금이 매겨진다. 반면 국산 맥주에는 원가에 마케팅비와 판매관리비 등을 더한 값을 과세 표준으로 삼는다.

국산 맥주의 세금 부담이 클 수밖에 없고, 이는 제품 가격에 반영돼 수입 맥주와의 가격 경쟁에서 뒤질 수밖에 구조였던 셈이다. 수입 맥주는 2012년부터 2017년까지 시장 점유율이 4%대에서 약 20%까지 급증했고, 향후 5년 내 40%까지 치솟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이로 인해 하이트진로와 롯데주류의 공장 가동률은 2017년 기준 30%대까지 추락한 상태다.

◇ 개편시기 언급 없어… 소주‧위스키는 제외

우여곡절 끝에 도출된 개편안을 놓고 일각에선 알맹이가 빠졌다는 비판을 내놓고 있다. 구체적인 개편 시기에 대한 언급이 나오지 않으면서 앞서와 같은 ‘시간 끌기’가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한국수제맥주협회는 3일 보도자료를 내고 “주세법 개편안 국회 제출 시점에 대한 얘기가 없었다”면서 “정부가 개편에 대한 의지를 갖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고 토로했다.

특히 협회는 개편안 발표를 예고한 정부의 약속을 믿고 다양한 투자를 진행해 왔던 만큼, 6월 국회에서 개편 방안 제출이 되지 않으면 청년 수제맥주사들이 버티기 불가능하다며 불안감을 보이고 있다. 실제 제주맥주는 연간 1,800만캔을 더 생산할 수 있는 규모로 양조장을 증설하고 있고, 어메이징브루잉 컴퍼니는 최근 이천에 연간 500만 리터 규모의 양조장을 준공하는 등 종량세 개정 후 변화할 시장에 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국내 대표 주종인 소주가 개편 대상에서 제외된 것도 개편안이 반쪽에 그쳤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주류의 ‘양’과 ‘도수’를 기준으로 세금을 매기는 종량세가 도입되면서 소주의 가격인상이 불가피하다는 게 중론이다. 최근 업체들이 잇따라 원가 부담 등을 이유로 가격을 인상한 상태에서 또 다시 가격 인상 요인이 발생하면 시장에 큰 혼란을 불러올 수 있어 기재부는 신중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지나치게 여론을 의식해 특정 주종을 제외하는 건 법 적용의 일관성을 훼손하는 행위가 될 수 있다며 아쉬움 섞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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