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산그룹의 내부거래 실태가 지난해에도 달라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벽산그룹의 내부거래 실태가 지난해에도 달라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종합건축자재기업 벽산그룹이 지난해에도 높은 수준의 내부거래 실태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출범 이후 내부거래 및 일감 몰아주기 문제 해소에 공을 들여온 문재인 정부가 올 들어 중견기업으로 시야를 확대한 가운데, 공정거래위원회의 타깃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벽산그룹의 내부거래 중심에 서 있는 것은 벽산LTC엔터프라이즈다. 벽산그룹 창업주인 고(故) 김인득 명예회장의 장손인 김성식 벽산 및 하츠 대표이사와 그의 동생인 김찬식 벽산 부사장, 그리고 두 사람의 세 자녀가 나란히 20%씩 지분을 나눠 갖고 있는 곳이다.

벽산LTC엔터프라이즈는 지난해 334억원의 매출액을 기록했다. 이 중 벽산, 벽산페인트, 하츠 등 3개 계열사를 통해 올린 매출액은 325억원에 달했다. 내부거래 비중은 97.2%에 달한다.

벽산LTC엔터프라이즈가 영위 중인 사업은 건축자재, 철물 및 난방장치 도매업이다. 내부거래가 불가피한 사업분야라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오너일가 회사라는 이유만으로 그룹 계열사를 통해 대부분의 매출을 올리는 전형적인 일감 몰아주기 회사에 해당한다.

이는 비단 지난해만의 일이 아니다. 2010년 설립된 벽산LTC엔터프라이즈는 늘 높은 내부거래 의존도를 보여 왔다. 첫해 내부거래 비중은 94%였고, 이후에도 77%, 83%, 94%, 96%, 95%, 90%의 고공행진이 계속됐다. 심지어 지난해 내부거래 비중은 역대 최대 규모였다.

일각에선 이 같은 벽산그룹의 행보가 승계를 염두에 둔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벽산LTC엔터프라이즈는 설립 직후인 2010년 12월 벽산 지분을 장외매수하며 2대주주로 등극했다. 현재도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2세 김희철 벽산그룹 회장(8.80%)의 뒤를 이어 가장 많은 4.96%의 지분을 보유 중이다. 향후 최대주주 지위 승계에 있어 키를 쥐고 있는 셈이다. 때문에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벽산LTC엔터프라이즈의 덩치를 키워 승계에 활용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문제는 벽산그룹의 이러한 내부거래 고집이 문재인 정부의 ‘경제민주화’ 행보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점이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이후 공정거래위원회에 힘을 실어주며 경제민주화 실현을 강조해왔다. 내부거래 및 일감 몰아주기 문제 해소는 그중에서도 특히 공을 들인 부분이다. 이에 따라 상당수 대기업이 내부거래 및 일감 몰아주기 문제 해소에 나섰다. 아울러 공정위가 시야를 넓히겠다고 밝힌 올해부터는 중견기업에서도 이러한 변화가 속속 포착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흐름 속에 지난해 역대 최대 수준의 내부거래 비중을 기록한 벽산그룹의 행보는 유독 튈 수밖에 없다. 시야를 넓힌 공정위의 타깃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한편, <시사위크>는 이에 대한 벽산그룹 측 입장을 듣고자 했으나 답변을 받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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