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이 서훈 국정원장과 비공개 회동을 가진데 대한 논란을 ‘사적인 만남’으로 선을 그은 뒤 자숙보다는 도리어 공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 뉴시스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이 서훈 국정원장과 비공개 회동을 가진데 대한 논란을 ‘사적인 만남’으로 선을 그은 뒤 자숙보다는 도리어 공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 뉴시스

시사위크=소미연 기자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이 호된 신고식을 치렀다. 2년여만의 복귀인데다 서훈 국정원장과 비공개 회동을 가진 사실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여론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때문에 낮은 자세를 강조해온 그의 계획도 틀어졌다. 당장 범야권에선 이른바 ‘문주연구원장’으로 부르며 행보 하나하나를 문제 삼았다. 문재인 정권 출범 직후만 해도 “잊혀질 권리를 허락해 달라”고 말하던 양정철 원장이 도리어 지금은 정치권의 중심에 섰다. 

◇ 광역단체장들과 잇단 공개 만남, 왜?

양정철 원장은 억울한 표정이다. 그는 별도의 취임식 없이 업무보고와 비공개 직원 간담회부터 열었다. 내부 업무에 치중하는 한편 월급도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불필요한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다. 첫 출근에서 밝혔던 것처럼 어려운 자리, 피하고 싶었던 자리를 맡기로 결심한데는 “정권교체의 완성은 총선 승리라는 절박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해를 산 서훈 국정원장과의 회동은 총선과 무관한 ‘사적인 자리’였다는 게 양정철 원장의 주장이다.

양정철 원장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야권의 공세는 계속됐다. 급기야 자유한국당이 서훈 국정원장을 국가정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해당 사건은 현재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에 배당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써 양정철 원장의 행보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정치권의 예상은 빗나갔다. 양정철 원장은 같은 당 소속의 광역단체장들을 잇따라 만나며 공개 행보를 이어갔다. 

양정철 원장이 이끄는 민주연구원은 광역자치단체 산하 연구원과 정책연구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다. 지난 3일 서울연구원과 경기연구원을 시작으로 7일엔 인천연구원과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오는 10일엔 경남발전연구원, 11일엔 부산연구원 방문이 예정돼 있다. 이마저도 야권에선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업무협약 과정에서 양정철 원장과 여권의 유력한 차기 대선후보의 접촉면이 생기자 정책 협의를 빙자한 총선 행보라고 해석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자유한국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과도 업무협약을 맺을 수 있다”며 양정철 원장의 행보에 힘을 실어줬다. / 뉴시스
박원순 서울시장은 “자유한국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과도 업무협약을 맺을 수 있다”며 양정철 원장의 행보에 힘을 실어줬다. / 뉴시스

일례가 이재명 경기도지사와의 만남이다. 친문의 핵심 인물과 비문 진영의 지지를 받고 있는 잠룡의 만남 자체만으로도 지지자 결집에 도움이 된다는 게 정치권의 공통된 해석이다. 더욱이 양정철 원장과 이재명 지사의 만남은 당내 친문 패권을 우려하는 목소리까지 잠재울 수 있다는 점에서 효과적이라 할만 했다. 실제 이재명 지사는 양정철 원장과 만난 다음날 자신의 SNS를 통해 “이재명과 함께 하는 동지이고 지지자라면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의 성공, 민주개혁세력의 대동단결을 위해 힘을 합쳐 달라”고 당부했다.

양정철 원장의 다음 행보가 더 주목되는 것은 김경수 경남도지사와의 만남이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노무현 정권 시절부터 같은 길을 걸어온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이다. 양정철 원장이 차기 대선의 킹메이커로 나선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상황에서, 차기 잠룡으로 분류된 김경수 지사와의 만남은 정치권의 화제를 불러올 만하다. 양정철 원장은 정치적 해석에 부담을 표시하면서도 자리를 회피하지 않았다.

양정철 원장의 뚝심에 한국당의 조바심이 커지는 모양새다. 총선이 1년여 앞으로 다가온 만큼 양정철 원장의 행보를 총선 대비용으로 비판하기엔 설득력이 떨어진다. 양정철 원장이 여의도 복귀로 선택한 자리가 바로 당의 싱크탱크이자 선거전략을 설계하는 곳이다. ‘업무협약을 맺는 자체만으로는 공직선거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선거관리위원회의 해석도 부담이다. 양정철 원장의 행보가 무겁지만, 가지 못할 길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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