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해양 노조가 지난달 22일 현대중공업 계동사옥에 진입하는 과정에서 경찰과 충돌을 빚고 있다. /뉴시스
대우조선해양 노조가 지난달 22일 현대중공업 계동사옥에 진입하는 과정에서 경찰과 충돌을 빚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대우조선해양 매각 및 인수를 추진 중인 산업은행과 현대중공업이 ‘현장실사’라는 중대한 절차를 남겨둔 가운데, 이를 포기할 수 있다는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불가피한 충돌을 막겠다는 것인데, 졸속 매각이란 꼬리표가 붙는 것 또한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산업은행과 현대중공업 관계자들로 구성된 실사단은 지난 3일 처음으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진입을 시도했다. 하지만 이미 지난달부터 출입문을 봉쇄하고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던 노조 및 지역시민사회단체에 가로막혀 한발짝도 들여놓지 못했다. 대우조선해양 노조 등은 쇠사슬을 몸에 휘감는 등 강력한 투쟁으로 이들을 막아섰다.

실사단은 이튿날에도 실사를 위해 진입을 시도했지만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 노조 등은 이날도 진입로를 틀어막았고, 실사단은 실랑이만 벌이다 발길을 돌려야했다.

주목할 점은 이후 실사단이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일주일이 지났지만 추가적인 진입 시도는 없었다. 업계에서는 늦어도 10일 전에 재차 움직임을 보일 것이란 예상이 주를 이룬 바 있다. 현장실사 기간으로 설정된 기간이 14일까지인데, 적어도 며칠은 소요되는 절차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실사단이 잠잠한 가운데 아예 실사를 포기할 수 있다는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불 보듯 빤한 충돌을 감수하면서까지 실사를 진행할 경우, 얻는 것보단 잃는 것이 더 많다는 판단에서다.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추진 중인 현대중공업은 앞서 임시 주주총회를 통해 물적분할 안건을 통과시키며 한바탕 난리를 치렀다. 물적분할에 반대하는 현대중공업 노조가 임시 주총 현장을 점거하자, 급히 장소를 옮겨 서둘러 안건을 처리했다. 이를 두고 ‘도둑 주총’이란 지적과 함께 법적 소송까지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대우조선해양에서 물리적 충돌까지 발생할 경우 매각을 둘러싼 논란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현장실사를 ‘패싱’하더라도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점 역시 이러한 관측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인수합병 과정에서 현장실사는 반드시 거쳐야할 법적절차가 아니며, 해당 기업을 주고받는 양측이 그 실체를 함께 확인하는 절차로 볼 수 있다. 때문에 양측의 합의에 따라 현장실사를 진행하지 않는 것이 가능하다. 산업은행과 현대중공업 실사단은 이미 지난 4월부터 문서실사를 진행해왔으며, 이것으로 현장실사를 대신할 가능성이 높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만약 현장실사에 나설 의도가 있다면 대우조선해양 측에 미리 통보를 할 텐데 그러한 움직임조차 없다”며 “남은 기간이 얼마 되지 않기 때문에 사실상 현장실사를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현장실사 패싱’에 따른 또 다른 논란도 불가피하다. 졸속 매각에 따른 논란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대우조선해양은 현장실사 무산으로 매각 자체가 불발된 과거가 있다. 2008년 인수전 당시 한화그룹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지만, 노조가 반발하며 현장실사를 가로막았다. 이에 한화그룹은 현장실사도 하지 못한 채 인수에 나설 수 없다며 산업은행과 마찰을 빚었고, 결국 계약이 무산됐다.

물론 현재 분위기는 2008년과 다소 다르다. 이미 지난해부터 물밑접촉을 진행해온 산업은행과 현대중공업이 상당한 교감을 형성하고 있다. 하지만 생산현장 규모가 큰 조선업 특성상 현장실사를 완료하지 못한 것은 양측 모두에게 찜찜함을 남기는 대목이다. 또한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 해도 인수합병 과정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절차를 누락할 경우 밀어붙이기 식으로 진행된 졸속 매각이란 지적에 더욱 힘이 실릴 수 있다.

이와 관련 대우조선해양 노조는 끝까지 긴장감을 놓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대우조선해양 노조 관계자는 “아직 4~5일의 시간이 남아있는 만큼 얼마든지 추가적인 시도가 있을 수 있다고 본다”며 “현장실사 저지와 함께 기존에 추진해왔던 감사원 감사청구, 지자체 및 정치권에 대한 반대의사 전달, 금속노조를 통한 EU승인 저지 등의 투쟁활동을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