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일본을 방문한 트럼프 대통령이 요코스카 미 해군기지에 정박해 있는 강습상륙함 와스프호에 올라 연설을 하고 있다. /AP-뉴시스
지난달 28일 일본을 방문한 트럼프 대통령이 요코스카 미 해군기지에 정박해 있는 강습상륙함 와스프호에 올라 연설을 하고 있다. /AP-뉴시스

시사위크=정계성 기자  중국 정부가 지난 3일 마이크로소프트, ARM 등 중국에 진출한 글로벌기업 관계자를 소환해 미국의 대중제재에 협조하지 말 것을 경고했다는 외신보도가 나와 주목된다. 소환된 기업 중에는 삼성과 SK하이닉스 등 국내기업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가시화된 것은 아니지만, 미중 무역갈등 속 어느 일방을 선택해야만 하는 시점이 올 수 있다는 위기감이 적지 않다.

8일(현지시각) 뉴욕타임스(NYT)의 보도에 따르면, 이번 소환은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가 주도하고 상무부와 산업정보기술부 관계자들이 참여했다. 이는 높은 수준의 조율과 중국 최고지도부의 승인 가능성을 시사하며, 특히 이름이 언급된 것은 아니지만 화웨이에 대한 지지를 모으기 위해 중국 정부가 개입한 것으로 이 매체는 분석했다.

◇ 중국의 대미 강경모드

개별기업의 국적에 따라 중국의 메시지는 조금 달랐다고 한다. 미국 기업들을 상대로는 대중제재에 따를 경우 ‘영구적인 결과’에 직면할 수 있다고 압박하면서, 동시에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기조를 바꾸기 위한 미국 기업의 로비활동을 강화해야 한다는 취지의 말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외의 기업에 대해서는 정상적인 거래를 지속하는 한 어떠한 불이익도 받지 않을 것이라며 유화적인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중국은 기업들이 위험회피 차원에서 생산거점 이전을 모색하는 것에 대해서도 분명한 경고를 했다. “표준적인 다각화 차원을 넘어서는 움직임은 처벌로 이어질 수 있다”는 말로 표현됐다. 개별기업 입장에서는 ‘생산거점을 이전하면 중국시장도 포기해야 한다’는 엄포로 받아들여졌을 공산이 크다. ‘시장의 자율성과 규율’을 따르지 않는 중국 정부기에 가능한 압박이다.

일단 국내 정치권과 재계에서는 해당 보도가 미국 차기대선을 겨냥한 정치적 목적이 크다고 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기조가 미중관계와 세계경제를 위태롭게 만들뿐만 아니라 동맹국들의 안위까지 위협하고 있다는 점을 특별히 부각시키기 위한 차원이라는 것이다. 실제 NYT와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대선부터 사안마다 반목해왔다. 지난 9일 미국과 멕시코 간 타결된 관세협상에 대해 NYT가 “과거의 재탕”이라고 평가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부패언론이라고 규정한 뒤 “진정한 국민의 적”이라고 주장했다.  

청와대도 미중 차원의 문제로 확대해석되는 것을 경계했다. 중국 정부가 자국 법에 따라 과거부터 해왔던 절차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10일 취재진과 만난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중국이 화웨이 관련해 특정기업을 불렀다는 것과 관련해 특별히 파악하고 있는 것은 없다”며 “중국에서 삼성과 SK하이닉스를 부른 것은 올해만 그런 것이 아니라 반도체 관련해 끊임없이 불러 이야기를 한다. 화웨이 때문이라고 보도되고 있지만 상관은 없는 걸로 안다”고 했다.

◇ ‘인내’와 ‘준비’가 필요한 시점

정상회담 합의문을 교환하고 있는 시진핑 주석과 푸틴 대통령. /AP-뉴시스
정상회담 합의문을 교환하고 있는 시진핑 주석과 푸틴 대통령. /AP-뉴시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측으로부터 대중제재 동참요구는 압박 수위가 점점 높아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전망이다. 미중 무역갈등의 본질이 단순 경제적 손익 차원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패권전쟁’에 있기 때문이다. 이미 트럼프 행정부 고위 관계자들은 우방국들을 상대로 반화웨이 동맹에 함께할 것을 요구했고, 일본과 대만의 일부 통신기업은 공개적으로 거래를 중단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반면 중국은 내부 여론 단속과 함께 ‘결사항전’ 태세를 갖추는 등 순순히 물러서지 않겠다는 분위기다. 시 주석은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등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다.

정부는 로우키를 유지하며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중국에 대한 무역의존도가 크고 개별기업들의 이익이 직접적으로 관련돼 있어 마냥 미국의 손을 들어주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G20을 계기로 만나는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의 협상결과를 기대하는 한편, 한중 정상회담 등을 통해 문제해결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6월 말 시 주석의 방한 가능성을 점쳤지만 성사되진 못했다.

이와 관련해 김흥규 아주대 교수(정책기획위원회 자문위원)는 “금년 초까지만 해도 중국 내에서는 미국과 타협을 해서 급한 폭풍우는 피해갈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지만, 미국이 중국의 법 개정까지 요구하면서 지금은 난징조약에 비견하는 굴욕으로 받아들이는 상황”이라며 “중국이 강경모드로 돌아섰고, 미중이 전시에 준하는 상태이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양쪽으로 압박을 받고 있고 이미 심리적으로는 선택을 강요받는 형국”이라고 말했다.

다만 “미국의 아메리카 퍼스트나 중국 고유의 경제발전 모델 모두 국제사회의 지지를 획득한 상황은 아니기 때문에 지금 쉽게 움직이게 되면 향후 정세변화에 따라 또 다른 압박을 받을 수 있다”면서 “정부는 편승의 유혹을 강하게 받을 것이고 또 한편으로는 방기에 대한 두려움도 있겠지만 신중함과 냉정함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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