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호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이 향년 97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사진은 이 이사장이 김대중국제평화학술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는 모습. / 뉴시스
이희호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이 향년 97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사진은 이 이사장이 김대중국제평화학술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는 모습. / 뉴시스

시사위크=은진 기자  이희호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이 10일 향년 97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배우자로서 ‘이희호 여사’로 가장 많이 불렸지만, 그의 생애는 영부인이라는 단어로 요약할 수 없을 만큼 다채로웠다. 대한민국 여성운동을 선구한 ‘1세대 페미니스트’였고 민주화 투사이자 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동지이기도 했던 이 이사장의 삶은 그야말로 현대사의 축소판이었다.

김 전 대통령은 생전 이 이사장에 대해 쓴 글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내가 나름대로 페미니스트적인 관점과 행동을 실천할 수 있었던 건 아내의 조언 덕이었다. 아내와 결혼하기 전에도 여성을 비하하는 여러 행동들이 옳지 않다는 인식을 하고 있었지만, 나 역시 가부장적인 전통 관념에 찌들어 있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여성에 대한 전통적인 비하와 멸시의 관념으로부터 해방되고 남성과 동등한 인격체로서 여성을 대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아내의 도움 때문이다. 아내 덕분에 나는 인류의 나머지 반쪽을 찾을 수 있었다.”

이 이사장은 여성운동에 평생을 바친 페미니스트였다. 1922년에 태어나 일제강점기와 해방, 분단, 군부독재 시절을 모두 겪은 한 여성으로서 대한민국에 뿌리 깊게 박힌 가부장제의 불공정을 바꾸기 위해 힘썼다. ‘여성문제연구원’을 만들어 여성의 법적 지위를 향상시키는 데 관심이 많았다. 남자들이 ‘첩’을 두던 시대에 혼인신고를 독려했던 것도 그 일환이다. 남성이 대부분이던 정치판의 ‘요정 정치’ 문화를 바꾸기 위해 ‘4.4운동’이라는 이름의 요정 정치 반대 운동도 벌였다.

남편인 김 전 대통령도 자연스럽게 이 이사장의 영향을 받았다. 김 전 대통령은 국회의원 시절 남녀차별적인 가족법 개정에 앞장섰고 집권 후 여성부를 신설했다. 여성의 공직 진출도 확대됐다. 김 전 대통령은 헌정 사상 최초로 총리 후보자를 여성으로 지명하기도 했다. 이 이사장은 영부인 자격으로 단독 해외 순방에 나서며 ‘대통령 내조자’ 이상의 역할을 해냈다는 평을 받았다.

이 이사장은 성폭력 가해자 고발 캠페인 ‘미투’(MeToo·나도 고발한다) 운동에 대해서도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 그는 지난해 진행한 언론 인터뷰에서 “그런 일이 그동안 어떻게 벌어지고 있었는지 정말 놀랐다. 남성들은 여성들을 인격적으로 대해야 한다. 어떻게 여성들을 그렇게 함부로 취급할 수 있는지 너무 화가 난다”며 “용기 있게 나서는 거 보면 좋고, 대견하고 고맙다. 우리 땐 생각도 못했다. 더 단호하고 당당하게 나갔으면 좋겠다”고 응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여사님은 정치인 김대중 대통령의 배우자, 영부인이기 이전에 대한민국 1세대 여성운동가”라고 추모했다. 문 대통령은 이 이사장 서거 직후 “우리는 오늘 여성을 위해 평생을 살아오신 한명의 위인을 보내드리고 있다. 대한여자청년단, 여성문제연구원 등을 창설해 활동하셨고, YWCA 총무로 여성운동에 헌신하셨다. 민주화운동에 함께 하셨을 뿐 아니라 김대중 정부의 여성부 설치에도 많은 역할을 하셨다”고 애도의 뜻을 표했다.

이 이사장은 자서전 ‘동행’에서 자신의 삶에 대해 “참으로 먼 길을 걸어왔다. 문득 돌아보니 극한적 고통과 환희의 양극단을 극적으로 체험한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회고했다. 평생 동지였던 김 전 대통령이 서거한 지 꼭 10년 만에 이 이사장도 영면에 들게 됐다.

이 이사장의 장례는 유족의 뜻에 따라 오는 14일 김대중평화센터 주관으로 ‘여성지도자 영부인 이희호 여사 사회장’으로 치러진다. 더불어민주당·자유한국당·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 등 여야 5당 대표들이 장례위원회 고문으로 위촉될 예정이다. 김 전 대통령과 이 이사장이 지냈던 동교동 사저는 이 이사장의 유언에 따라 김 전 대통령 기념관으로 사용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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