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의 현충일 추념사로 촉발된 약산 김원봉 선생의 독립 유공자 서훈 수여 논란이 쉽게 꺼지지 않고 있다. 청와대가 진화에 나섰지만 지상욱 바른미래당 의원은 피우진 국가보훈처장의 해고를 요구하며 반발을 지속했다. /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의 현충일 추념사로 촉발된 약산 김원봉 선생의 독립 유공자 서훈 수여 논란이 쉽게 꺼지지 않고 있다. 청와대가 진화에 나섰지만 지상욱 바른미래당 의원은 피우진 국가보훈처장의 해고를 요구하며 반발을 지속했다. / 뉴시스

시사위크=최현욱 기자  문재인 대통령의 현충일 추념사로 촉발된 약산 김원봉 선생의 독립 유공자 서훈 수여 논란이 쉽게 꺼지지 않고 있다. 청와대는 논란이 확산되자 “규정상 서훈 수여는 불가능하다”고 진화에 나섰지만, 야권에서는 오히려 문 대통령의 사과와 피우진 국가보훈처장의 해고를 요구하며 반발을 지속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 6일 현충일 추념사에서 “약산 김원봉 선생이 이끌던 조선의용대가 광복군에 편입되어 마침내 민족의 독립운동역량을 집결했다”며 “통합된 광복군 대원들의 불굴의 항쟁의지, 연합군과 함께 기른 군사적 역량이 광복 후 국군 창설의 뿌리가 되고 나아가 한ㆍ미 동맹의 토대가 됐다”고 했다.

이 발언은 문 대통령이 지난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시절 “약산 김원봉 선생에게 마음 속으로나마 최고급의 독립유공자 훈장을 달아드리고, 술 한잔 바치고 싶다”고 언급한 것과 맞물려 ‘김원봉 서훈 수여 논란’으로 번졌다. 일부 시민단체가 ‘김원봉 서훈 서명운동’에 나섰고 청와대 국민 청원게시판에도 ‘김원봉에게 독립유공자 서훈을 수여해야한다’는 청원이 등장하는 등 큰 파장을 일으켰다.  

정치권 안팎을 비롯해 국민들의 의견은 찬반양론이 팽팽하게 맞부딪혔다. 리얼미터의 6월 1주차 여론조사를 보면 (CBS의뢰, 7일 하루 조사,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김원봉 독립유공자 서훈 수여’에 대한 찬성 의견은 42.6%였고, 반대 의견은 39.9%로 찬반양론이 오차범위(±4.4%포인트)내에서 갈렸다.

청와대는 논란이 번지자 “국가보훈처의 독립유공자 포상심사 조항상 서훈 수여가 불가능하다”며 “이것을 바꿔서 뭘 할 수 있다던가 보훈처가 알아서 결정할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더이상 논란의 여지가 없는 부분”이라고 선을 그었다.

청와대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야권에서는 문 대통령에 대한 비난을 이어갔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11일 열린 당 원내대책회의에서 “문 대통령은 스스로 최근의 언행을 돌아보시기를 부탁드린다”며 “호국영령들 앞에서 북한 정권의 요직 인물을 치켜세웠다. 틀린 행동이었고 아픔을 주는 말들이었다. 국민을 분열시키고, 갈등의 골을 더 깊게 하는 행동이었다”고 했다.

이어 “대통령은 이 부분에 대해서 사과해야 한다”며 “김원봉 서훈은 추진되지 않을 것이라며 슬쩍 물러선다고 그 상처가 아물지 않고 분열이 봉합되지 않는다. (북유럽 순방중인) 문 대통령이 귀국 후 할 가장 첫 번째 일은 바로 사과”라고 언급했다.

◇ 보훈처, 영화 ‘암살’이 김원봉 서훈 수여의 근거?

지상욱 바른미래당 의원은 보훈처의 안일한 대응을 지적하며 피우진 보훈처장을 교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 의원은 이날 열린 당 원내정책회의에서 “청와대는 지금 서훈을 안 하겠다고 부인하고 있지만 그간 보훈처가 해온 행위를 되짚어보면, 보훈혁신위에서 권고안으로 서훈을 하겠다고 했다”며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인 보훈혁신위원은 지난 3.1절에 단지 시간이 촉박해서 서훈을 하지 못했을 뿐, 심사기준을 바꿔서라도 광복절이나 11월 17일 순국선열의 날에 서훈을 하겠다는 것이 보훈처의 입장이라고 했다”고 언급했다. 
 
이어 “정무위원회에서 피 처장은 김원봉 서훈의 가능성이 있다고 이실직고를 했고 근거를 대라는 나의 호통에 ‘대다수 국민이 원하고 있다’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했다”며 “근거를 가져오라 하니까 결국 가지고 온 것이, 들으시는 분들이 어처구니가 없겠지만 ‘영화 ‘암살’을 국민 1,200만 명이 봤다‘라는 것을 근거로 들었다”고 했다.

지 의원은 “영화의 러닝타임 139분 중 김원봉이 등장하는 부분은 단 4분이다. 그것을 대다수 국민이 원하고 있다는 근거자료로 내놓은 보훈처는 한심하기 짝이 없다”며 “또한 스스로 단순한 것이라고 강변한 권고안과 단순 학술토론회라고 주장했던 김원봉 관련 독립기념관 토론회에서 서훈 수여 의견이 있었다는 사실을 근거라며 피 처장이 이 따위로 답변서를 보내왔다”고 언급했다.

그는 “대통령은 지금이라도 당장 피우진 처장을 해고하기 바란다”며 “문 대통령은 더 이상 이 문제로 나라를 어지럽히지 말아주시기 바란다. 나라가 절단난다”고 덧붙였다.

영화 ‘암살’은 지난 2015년 개봉한 상업영화로 1933년을 배경으로 독립군과 임시 정부 대원들의 친일 인물 암살 작전을 줄거리로 하고 있다. 배우 조승우가 김원봉 역으로 출연했으며 해당 영화에서는 논란이 됐던 김원봉의 월북 이후 행적은 다루지 않고 있다. 문 대통령은 개봉 당시 영화를 본 후 페이스북에 관람 사실을 언급하며 김원봉에게 훈장을 달아주고 싶다는 발언을 한 바 있다.

지상욱 의원실이 공개한 자료를 보면 보훈처는 지 의원실에 공문을 보내 “지난 3월 26일 보훈처 업무보고에서 피 처장이 ‘국민 대다수가 김원봉의 독립유공자 서훈을 원했다’는 취지의 답변을 했다”며 “‘대다수의 의견’이라는 표현은 지난 2015년부터 김원봉의 독립운동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문화계, 언론, 학계 등에서 다양하게 제기된 사회적 분위기를 염두에 두고 답변한 것이다”고 밝혔다. 보훈처는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의 예시로 영화 ‘암살’이 1,200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한 사례를 명시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정부기관에서 ‘국민들의 의견이 어떻다’는 공식적인 주장의 근거로 상업영화의 흥행 여부를 예시로 드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것이다”며 “답변이라고 볼 수 없는 수준”이라고 했다. 이어 “더욱이 영화 ‘암살’에서 김원봉의 등장은 잠깐일 뿐이며 설사 김원봉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가 나왔다고 해도 정부기관에서 영화의 흥행 여부를 가지고 국민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근거로 삼을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신 교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다룬 영화가 흥행 성적이 저조하다고 해서 국민들이 노 전 대통령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며 “특정 인물을 다룬 영화의 흥행 성적으로 국민들의 의견을 재단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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