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용 안보실장이 김여정 제1부부장으로부터 조의문을 전달받은 뒤 대화를 나누고 있다. /통일부 제공
정의용 안보실장이 김여정 제1부부장으로부터 조의문을 전달받은 뒤 대화를 나누고 있다. /통일부 제공

시사위크=정계성 기자  이희호 여사 별세를 계기로 만난 정의용 안보실장과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 사이 ‘특별한’ 대화가 있었을 것이란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조의문과 조화만 전달했다고 보기에는 형식상·내용상 암시하는 바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남북관계 문제는 최종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밝힐 수 없다”며 궁금증만 증폭시켰다.

주목해야할 첫 번째 핵심 포인트는 정의용 안보실장이 직접 나섰다는 점이다. 김여정 제1부부장이 김정은 위원장의 혈육이라고 해도 차관급이다. 급을 맞춘다면 서호 통일부 차관이 적합하며 예우를 갖춘다고 해도 김연철 통일부 장관이면 충분하다. 그런데 북측은 우리 측에 “책임 있는 인사”를 요청했다고 한다. 정 실장이 움직인 배경이며, 북측이 전달하고자 하는 중요한 메시지가 있었을 것으로 분석되는 이유다.

두 번째는 북유럽 순방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6월 말 예정된 한미정상회담 이전으로 기한을 정해 남북정상회담을 공개적으로 제안한 부분이다. 사전에 준비했던 기조연설문에는 없는 것이었다. 기조연설문에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서로에 대한 이해와 신뢰를 깊이 하는 것”이라며 원론적 내용만 포함돼 있었다. 기조연설 직전 특정 메시지가 문 대통령에게 보고된 것으로 추정된다.

청와대에 따르면, 정 실장과 김 부부장의 만남은 12일 오후 5시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약 15분간 이뤄졌다. 문 대통령의 기조연설이 예정된 시각은 오후 7시로 그 사이 보고가 올라갔을 공산이 크다. 청와대는 김정은 위원장의 조의문 전달에 대한 언론 브리핑을 오후 7시가 돼서야 했는데, 대통령의 기조연설과 동시에 언론 브리핑을 하는 것은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다. 기조연설 직전까지 관련 내용에 대한 보고와 결정이 있었다는 방증이다.   

북한 매체들의 대대적인 ‘속보’도 흔한 일은 아니다. 남북관계에 정통한 관계자는 “북한의 언론환경은 우리나라의 실시간 속보체제와 전혀 다르다”며 “중요행사가 있더라도 다음날 보도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했다. 하지만 김정은 위원장이 이희호 여사의 별세를 애도하며 조의문과 조화를 보냈다는 소식은 조선중앙통신과 조선중앙TV, 조선중앙방송 등의 매체를 통해 당일 동시다발적으로 보도됐다. 남북대화를 위한 북한 내 여론형성 과정으로 풀이된다.

한편 김 위원장이 보낸 조의문과 조화는 13일 오후 유족 측에 전달됐다. 김 위원장은 조의문을 통해 “이희호 여사가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온갖 고난과 풍파를 겪으며 민족의 화해와 단합, 나라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기울인 헌신과 노력은 자주통일과 평화번영의 길로 나아가고 있는 현 북남관계의 흐름에 소중한 밑거름이 되고 있으며, 온 겨레는 그에 대하여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라고 이 여사의 별세를 애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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