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6-27 19:09 (목)
[정숭호의 ‘늦은 수다’] 한국에서는 지금 어떤 냄새가 나고 있을까?
[정숭호의 ‘늦은 수다’] 한국에서는 지금 어떤 냄새가 나고 있을까?
  • 시사위크
  • 승인 2019.06.13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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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숭호   ▲언론인 ▲전 한국신문윤리위원
정숭호   ▲언론인 ▲전 한국신문윤리위원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으로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후 ‘냄새’가 우리나라 글쟁이들의 화두(話頭)로 떠올랐다. 자기 이름 내걸고 쓴 칼럼과 인터뷰가 벌써 수백 건이다. 대부분 ‘가난한 자에게는 가난한 사람의 냄새가 나고, 부유한 사람에게는 부유한 냄새가 난다. 아무리 감추려고 해도 그 냄새는 감추지 못한다’라는 봉 감독의 생각을 전하고 있다.

더 늦기 전에 냄새나는 글 한 줄은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쓰는 게 어렵지는 않을 것 같다. 나도 냄새에는 민감한 편이라 냄새가 어떤 형식으로든 사회 이슈가 될 때를 대비해 냄새와 관련한 명망가들의 코멘트와 문장을 모아놓은 게 좀 있어서다. 봉 감독도 냄새가 주인공인 영화를 만들겠다고 마음먹은 후에는 작업을 쉽게 진행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냄새에 대한 글이 참 많기 때문이다.

부자들의 냄새가 싫다는 사람은 소설가 강영숙의 단편 ‘폴록’에서 보았다. 그다지 넉넉지 못한 이 소설의 화자(話者)는 “성공한 여자들이 싫었다. 말투도 냄새도 싫었다. 시간이든 공간이든 모두 자기 편한 쪽으로 끌어가고 그걸 당연하게 생각하며 사과도 보상도 안 하는 당당함이 무서웠다”고 말한다.

하지만 내가 모아놓은 글에는 가난한 사람들의 냄새를 묘사한 게 더 많다. “이 첫 번째 방에서는 언어 속에는 명칭이 없는 냄새, 하숙집 냄새라고나 불러야 마땅할 냄새가 발산되고 있었다. 그것은 고리타분한 냄새, 곰팡이 냄새, 기름 썩는 냄새이다. 그것은 냉기를 느끼게 하며, 코에 축축한 느낌을 주고, 옷 속에 파고드는 냄새이다.” -고리오 영감, 발자크

“시의 이 구역에는 특유의 해묵은 냄새가 배어있었다. 음식 찌꺼기 냄새, 포도 속 틈새에 낀 말똥 냄새, 타르 냄새, 연기 냄새, 도시 사람들의 시큼한 냄새, 더운 물이 나오지 않는 집들에서 쓰는 석탄 난로와 가스 난로의 냄새. 모든 냄새가 한데 어우러지면서도 저마다 독특함을 잃는 법이 없다.” -벗은 자와 죽은 자, 노먼 메일러

늙은이의 냄새는 특별하다는 글도 있다. “과학적 근거는 없지만 순전히 경험으로 후베날 우르비노 박사는 인간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대부분의 질병에 특유의 냄새가 있지만, 그 어떤 것도 늙는 것처럼 특별한 냄새를 풍기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가브리엘 마르케스의 <콜레라 시대의 사랑>에 나오는 ‘늙은 냄새’에 대한 설명이다.

냄새는 계층과 세대 간의 차이를 구분할 때만 유용한가? 아니다. 20년 전쯤, 미국에서 귀국할 때 비행기 속, 내 주변에는 서양인들만 앉아 있었다. 5~6명이 일행이었는데, 그 중 한 명이 우리나라 경험이 있었던 모양이다. “서울 가면 절대로 점심 먹은 직후 만원 엘리베이터 타지 마라. 된장찌개라는 거, 멀리서도 냄새 독한데, 사람들 입에서 나는 그 냄새 바로 옆에서 맡아봐라. 니들 그 자리서 숨 막혀 다 죽을 거다”라고 말하곤 나를 힐끔 쳐다봤다. 알아듣건 말건 관계없다는 그 눈빛!!!

이보다 전, 아마 1960년대까지는 한국의 냄새는 인분냄새였음이 분명하다. 길거리에 나뒹굴던 대변 덩어리들과 재래식 변소(‘화장실’에 익숙한 요즘 애들 ‘변소’라는 말을 알까? 우리 클 때는 ‘변소’도 최신 언어였다. 우리는 ‘통시’라고 했다. 통시의 ‘시’가 한자로 屎임은 최근에 알았다. 뜻은 ‘똥’이다.)에서 흘러나온 냄새, 비료로 쓰려고 마당에 모아둔 인분더미에서 나던 냄새, 그것을 뿌려놓은 논밭에서 나던 냄새다. 우리나라 산야에는 그 냄새가 넘쳐났던 거다. 6.25전쟁에 참전했던 외국 병사들이 남쪽이건 북쪽이건 사방천지에서 퍼져 올라오는 그 냄새를 인민군이나 중공군만큼 무서워했다고 하잖나.

“인간은 누구를 경멸할지를 파악하기 위해 사소한 차이점들을 냄새 맡는 데는 천재다. 이를테면 유럽계 미국인은 피부색이 희고, 아프리카계 미국인은 피부색이 검다는 것만으로도, 힌두교도들은 쇠고기를 먹지 않고 이슬람교도들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것만으로도 서로가 서로를 경멸하기에 충분하다.”  하버드대 영문학과 교수 스티븐 핑커는 <언어본능>에서 “인간은 서로 차이점을 냄새 맡는다”고 썼지만 “인간은 냄새로 서로의 차이점을 알아낸다”고 하는 게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요즘 우리를 경멸당하게 할 냄새는 무슨 냄새일까. ‘K-Food’의 대표선수인 김치와 된장 냄새는 아닐 것이다. 뭘까? 음식 냄새는 아니고, 우리끼리 주고받는 혐오와 증오, 경멸의 냄새라고 하면 내가 너무 나간 것일까?

글을 마치려니 온통 악취뿐이다. 셰익스피어가 <로미오와 줄리엣>에 “장미라 부르는 것은 다른 이름으로 불러도 역시 향긋한 냄새가 날 거예요”라고 쓴 것 같은 좋은 냄새 이야기는 다른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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