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정이 마련한 가업상속공제 개편안을 두고 중견기업 등 산업계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들은 개편안이 미봉책에 불과하다며 기업 승계에 대한 인식 개선을 촉구하고 나서고 있다. 사진은 지난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가업상속 지원세제 개편방안 당정협의에서 이인영 원내대표가 발언하고 있는 모습. / 뉴시스
당정이 마련한 가업상속공제 개편안을 두고 중견기업 등 산업계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들은 개편안이 미봉책에 불과하다며 기업 승계에 대한 인식 개선을 촉구하고 나서고 있다. 사진은 지난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가업상속 지원세제 개편방안 당정협의에서 이인영 원내대표가 발언하고 있는 모습. / 뉴시스

시사위크=범찬희 기자  논란 끝에 베일을 벗은 가업상속공제 개편안을 두고 당정과 산업계가 극명한 온도차를 보이고 있다. 공제 혜택의 반대급부인 사후관리 기간을 3년 단축시키는 등 완화책을 내놓았지만 기업 측은 규제 완화 효과를 체감하기 힘든 미봉책에 불과하다며 정부의 인식 개선을 촉구하고 있다.

◇ 공제 후 사후관리 기간 10년에서 7년으로

가업상속공제란 기업의 원활한 가업 승계를 위해 상속세를 깎아주는 제도다. 10년 이상 경영한 중소기업이나 매출액 3,000억원 미만이 대상이다. 이들 기업을 물려받을 때 과세 대상이 되는 재산가액에서 최대 500억원을 공제해주고 있다. 그런데 여기엔 조건이 붙는다. 고용과 자산 등 회사의 경영권에 제약이 따른다. 상속 후 10년 동안 정규직 고용 규모를 그대로 유지해야 하며, 기업 자산의 20% 이상을 처분하지 못하게 된다. 업종 전환도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

사후관리를 명분으로 10년간 기업 경영에 ‘족쇄’가 채워지는 셈이다. 이에 중소‧중견기업들 사이에서는 제도에 대한 불만이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제도가 기업 성장을 가로막는 장벽 역할을 하고 있다며 규제를 완화해 달라는 입장을 수차례 건네졌다. 이러한 기업들의 사정을 고려해 개편을 준비해 온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마침내 지난 11일 당정협의를 갖고 사후관리 기간을 7년으로 단축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가업상속공제 개편안을 발표했다.

이날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가업상속지원세제의 개선에 대한 많은 요구가 있었다”며 “사후관리 요건을 완화를 통해 가업상속공제 제도의 실효성을 제고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홍 부총리는 “이번 개편이 고용불안 및 투자저해 요인을 해소해 중소 및 중견기업의 활력을 회복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 재계 “실속 없는 제스처” 일침… 승계 인식전환 촉구

개편안을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현행 표준산업분류상 소분류 내로 한정된 업종 변경 범위를 중분류까지 넓히기로 했다. △업종 전환을 위해 대규모 자산 매각이 필요한 경우 예외를 인정하기로 했다. 또 △상속 당시 정규직 근로자 수의 120% 고용유지 의무도 중소기업과 같은 100%로 완화키로 했다. 반대로 성실경영 책임도 강화했다. △탈세 및 회계부정으로 기업 소유주가 형사처벌을 받을 경우 공제 혜택을 받을 수 없도록 했다.

하지만 당정의 기대와 달리 기업들의 표정은 썩 밝지 못하다. 기업 성장의 족쇄가 풀릴 것으로 잔뜩 기대감에 부풀었던 중소‧중견기업계는 허탈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개편안이 자신들의 요구해온 내용과 거리가 먼 반쪽짜리에 불과하다며 볼멘소리를 내놓고 있다.

사용자 단체인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우리나라 상속세율은 사실상 세계 최상위권이고, 공제요건도 까다로워 많은 기업인들이 승계를 포기하고 매각을 택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라며 “결국 어렵게 키워온 기업들이 시장 경쟁력과 영속성을 위협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논평했다.

중견기업 쪽에서도 개편안에 대해 작심 비판하고 나섰다. 업계를 대표하는 강호갑 한국중견기업연합회장은 12일 한 토론회 자리에서 당정의 결정을 강한 어조로 성토했다. 그는 “(개편안이) 국가 경제 기반인 기업의 지속성과 성장의 가치를 외면한 실속 없는 제스처에 불과하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그러면서 “자의적으로 설정한 규모를 기준으로 혁신과 성장의 공간을 스스로 제한하는 것은 국가 경제 발전에 대한 극단적 무책임”이라며 “‘부의 대물림’이라는 비합리적 맹목에서 벗어나 기업승계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정립해야 할 때”라고 꼬집었다.

가업상속공제 개편안을 두고 당정과 기업 양측이 극명하게 엇갈린 반응을 보이면서 기업 승계를 둘러싼 진통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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