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국회의원 정수 축소를 위한 대국민 토론회’에서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축사를 하고 있다. / 뉴시스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국회의원 정수 축소를 위한 대국민 토론회’에서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축사를 하고 있다. / 뉴시스

시사위크=은진 기자  자유한국당이 현행 비례대표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논의에 다시 불을 지폈다. 지난 3월 패스트트랙 대치 당시 한국당은 ‘의원정수 10% 감축’ ‘비례대표제 폐지’를 골자로 한 선거법 개정안을 당론으로 발의했었다. 이후 한국당을 제외한 여야가 6월 임시국회를 소집해 한국당을 압박하고 있는 상황에서 재차 의원정수 축소 문제를 공론화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조경태 최고위원과 당 정책위원회는 2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비례대표제 폐지를 중심으로 국회의원 정수 축소를 위한 대국민 토론회’를 공동주최로 열었다. 이 자리에는 황교안 대표를 비롯해 당 정책을 담당하는 정용기 정책위의장, 신보라·정미경 최고위원 등 당 지도부는 물론 개별 의원들도 다수 참석해 힘을 실었다.

조경태 최고위원은 “저는 정치개혁의 거점이 국회의원 수를 줄이는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됐다”며 “그중 하나가 바로 매관매직으로 전락해있는 비례대표제를 폐지하는 것이다. (비례대표제는) 결국 지역구로 가기 위한 하나의 징검다리 역할로 하나의 기회를 더 엿보기 위한 자리로 전락해버렸다”고 했다.

황교안 대표는 “비례대표제는 국회의원 전문성을 높이고 국민 의사를 좀 더 폭넓게 의석에 반영시키자는 좋은 취지로 만들어졌지만, 운영 과정을 보니까 결과적으로 공천 과정의 불투명성 비롯한 여러 문제가 드러났다”며 “국민 불만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올바른 민심을 담아내고 제대로 논의를 해서 비례대표제를 없애든지 혁신적으로 고쳐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한국당은 비례대표 공천의 폐해를 비례대표제 폐지 이유로 꼽고 있다. 국회 내 다양성과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도입된 비례대표제가 개별 직능단체에게 ‘한 자리’를 주는 식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지난달 한국외식업중앙회 제갈창균 회장은 공개석상에서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내년 총선 비례대표는 한 자리를 주셔야 한다”고 말해 논란을 불렀다.

정유섭 의원이 대표로 발의한 한국당의 선거법 개정안에는 “매 선거마다 반복되는 비례대표 공천파동은 사회적 큰 이슈가 돼 개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각 정당의 지역구 공천 과정에서 후보자의 사회적 다양성 및 전문성이 고려되고 있어 국민이 직접 선출하는 것이 아닌 비례대표제를 유지할 실익이 떨어진다”고 돼있다. 비례대표제를 폐지하더라도 각 정당이 지역구 후보자 공천 과정에서 사회적 다양성과 전문성을 반영해 보완할 수 있다는 것이다.

◇ 당 비례대표 의원들 “의석수 줄이자는 취지”

이날 토론회에 나선 전문가들도 우리나라 정치상황에서 비례대표제를 폐지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호선 국민대 법대 교수는 “정략적으로 비례대표제는 정부여당의 의석수 증가 수단으로 활용돼 왔다. 한국적 현실에서 비례대표제는 도입과 운영 과정, 현재 대안으로 제시된 미래의 모습까지 전혀 순수하지 않다”며 “비례대표제가 갖는 긍정적 기능이 비례대표제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달성될 수 있다면 이를 존치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음선필 홍익대 법대 교수는 “논공행상을 위해서 또는 정당의 재정적 안정을 위해서 비례대표 의석을 배분하거나 매매하려는 구태를 과감히 배격해야 한다. 현재까지의 방식으로 운영된 비례대표제를 개선하지 않는다면 차라리 폐지하는 것이 낫다는 주장이 가능하다”면서도 “그러나 비례대표제 도입을 염두에 둔 헌법규정을 존중해 현행 비례대표제가 헌법적 기능에 충실하도록 제도를 재구성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국당 비례대표 의원들은 비례대표제를 폐지하자는 당 지도부의 주장이 의원 정수 축소를 위한 하나의 방안이라고 해석했다. ‘비례대표제 완전 폐지’보다는 ‘의원 정수 축소’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각 분야에서의 상징성과 전문성을 인정받아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이들은 “당론에 따라야 한다”면서도 비례대표제의 필요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A 비례대표 의원은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비례대표제는 필요한 것 같다. 비례대표 의석을 줄여서라도 남겨놔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당에서 일단 당론으로 정했다면 어쩔 수 없이 따라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 B 비례대표 의원은 “의석수를 줄여야 한다는 방안 안에서 비례대표제 폐지를 거론한 것이기 때문에 당의 입장을 존중한다”고 했다.

C 비례대표 의원은 “비례대표를 뽑을 때 문제도 있었고, 전문성 있는 사람을 뽑아서 다양한 국민을 대변하라고 도입된 비례대표제가 그렇게 운영되지 않았던 것에 대한 제도적인 문제점을 지적한 것으로 생각한다. 비례대표제의 원래 취지를 살릴 수 있도록 개정이나 조정을 하자는 여러 의견들이 있다. 일단은 의석수를 늘리지 말라는 것이 핵심”이라고 했다.

한국당의 선거법 개정안은 헌법에 명시된 비례대표제를 위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헌 논란을 부를 여지가 있다. 또 정치적 소수자로 분류되는 여성·청년·장애인층의 반발도 있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여성의 정치참여는 비례대표제와 할당제를 통해 확대되어 왔다”며 “비례대표제도는 여성뿐만 아니라 청년과 장애 등의 정치적 소수자들의 대표성을 보장하고 정치 신인들의 국회 진입의 교두보로서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적 가치인 다원성을 구현하기 위한 헌법적 가치이며 헌법으로 명문화되어 있는 제도”라고 반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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