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고(故)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별세 당시 빈소를 찾은 스티븐 시어 델타항공 국제선 사장의 모습. /뉴시스
지난 4월 고(故)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별세 당시 빈소를 찾은 스티븐 시어 델타항공 국제선 사장의 모습. /뉴시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경영권 분쟁에 휩싸인 한진그룹에 새로운 변수가 등장했다. 대한항공과 돈독한 관계를 이어오고 있는 미국 델타항공이 그 주인공이다. 델타항공이 한진그룹의 ‘백기사’가 될 것이란 전망에 힘이 실리지만, 한진그룹 입장에선 마냥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델타항공은 최근 한진칼 지분 4.3%를 매입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아울러 향후 한진칼 지분을 1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오랜 세월 돈독한 관계를 이어온 대한항공과의 조인트 벤처 제휴를 강화하기 위해서라는 게 델타항공 측 설명이다. 다만, 업계 및 주식시장에서는 최근 한진그룹이 처한 상황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한진그룹은 지난해부터 행동주의 펀드 KCGI의 공세를 받고 있으며, 고(故) 조양호 회장의 급작스런 별세 이후 상속문제 등을 둘러싼 가족 내 불화설이 제기되는 등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델타항공이 한진그룹을 지원하기 위해 손을 내밀었다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델타항공과 대한항공은 2000년 글로벌 얼라이언스 ‘스카이팀’의 창립을 주도했으며, 지난해 5월 조인트 벤처를 체결하는 등 20년 가까이 돈독한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조인트 벤처는 2개의 항공사가 마치 하나의 항공사처럼 운항스케줄 등을 유기적으로 조정하는 것으로, 항공사간 제휴·협력 중 가장 높은 수준에 해당한다.

델타항공의 이 같은 행보는 고 조양호 회장 별세 이후 더욱 뜨겁게 달아올랐던 한진그룹 경영권 분쟁 국면에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게 됐다. 현재 한진칼 지분 현황은 한진그룹 28.94%, KCGI 15.98%, 국민연금 6.70%다. 이런 가운데 델타항공이 10%대로 지분을 확대한 뒤 한진그룹 편에 설 경우, 한진그룹의 우호지분은 40%대에 이르게 된다. 경영권 방어에 숨통이 트일 수 있는 수준이다.

하지만 또 다른 변수도 존재한다. 만에 하나 델타항공이 한진그룹 편에 서지 않을 경우다. 이 경우 한진그룹을 둘러싼 경영권 분쟁은 한층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될 뿐 아니라, 다양한 가능성이 열리게 된다. 가령, 델타항공은 사안에 따라 다른 입장을 취하며 대한항공을 압박하고, 또 다른 이익을 추구할 수 있다. KCGI와 델타항공이 뜻을 같이할 가능성도 없지 않은 것이다.

거침없이 목소리를 높여온 KCGI는 향후 행보에 있어 델타항공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델타항공의 지분 확보 소식이 전해진 뒤에도 즉각 추파를 던졌다. “델타항공은 공정하고 투명한 의사결정 구조와 시장지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KCGI와 동일한 철학을 공유하는 델타항공이 한진그룹의 장기적 성장가능성을 인정해 한진칼에 투자를 결정한 것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백기사’ 역할을 할 경우 법을 위반하는 것일 수 있다는 지적도 빼놓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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