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나랏말싸미’(감독 조철현)가 관객과 만날 준비를 마쳤다. (왼쪽부터) 박해일·조철현 감독·전미선·송강호. /뉴시스
영화 ‘나랏말싸미’(감독 조철현)가 관객과 만날 준비를 마쳤다. (왼쪽부터) 박해일·조철현 감독·전미선·송강호. /뉴시스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또 하나의 위대한 역사가 스크린에 펼쳐진다. 우리가 몰랐던 한글  창제의 숨겨진 이야기를 담은 영화 ‘나랏말싸미’(감독 조철현)를 통해서다. ‘믿고 보는 배우’ 송강호와 박해일, 그리고 전미선이 의기투합해 기대를 더한다. ‘나랏말싸미’가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까.    

‘나랏말싸미’는 모든 것을 걸고 한글을 만든 세종과 불굴의 신념으로 함께한 사람들, 역사가 담지 못한 한글 창제의 숨겨진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사도’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등의 각본 작업을 통해 탄탄한 드라마를 그려냈던 조철현 감독의 연출 입봉작이다.

조철현 감독은 25일 진행된 ‘나랏말싸미’ 제작보고회에서 “훈민정음과 한글 창제 원리, 그 원리에 기반해 한글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씨줄로 하고, 그 과정에서 만난 세종대왕과 소헌왕후, 신미 스님 그리고 역사에 기록되지 못한 많은 사람들의 인연을 날줄로 해서 만든 이야기”라고 소개했다. 

조철현 감독이 ‘나랏말싸미’ 기획 의도를 밝혔다. /뉴시스
조철현 감독이 ‘나랏말싸미’ 기획 의도를 밝혔다. /뉴시스

조철현 감독은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업적이라고 할 수 있는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과정이 왜 비밀 프로젝트였는지 호기심을 품었다. 그러다 알게 된 신미 스님의 존재는 조 감독의 의문뿐 아니라 영화화의 실마리를 푸는 시작점이 됐다.

그는 “훈민정음에 관한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고자 한 것은 15년이 됐다”며 “그러다 몇 년 전 팔만대장경과 훈민정음 사이에 신미 스님이라는 연결고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그 두 가지 설정에 마음이 끌렸다”고 말했다.

이어 “훈민정음이 왜 비밀 프로젝트였을까 궁금했는데, 유교국가에서 왕이 불교의 승려와 국가의 문자를 만들었다면, 비밀리에 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생각했다”며 “그 설정을 근간으로 시나리오 작업을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훈민정음과 불경을 기록한 문자인 범어(산스크리트어)와의 관계 등은 한글 창제와 관련된 여러 가지 설 중 하나다. 조철현 감독은 여러 전문가들의 역사적 고증을 거쳐 이 이야기를 영화적으로 재구성했다. 그는 “개인적으로 확신한다고 하더라도 이 영화는 역사를 기반으로 한 서사”라고 강조했다.

특히 조철현 감독은 스포일러 방지가 아닌 ‘유포’를 당부해 이목을 끌었다. 그는 “저는 스포일러가 없는 영화를 추구한다”면서 “영화에 관련된 정보들이 이미 많이 있는데, 그 정보가 영화는 아니다. 영화 속에 스며드는 심정, 느낌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주변 사람들에게 다 얘기해줬으면 좋겠다. 그렇게 봐야 더 재밌는 영화가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나랏말싸미’ 세종대왕으로 돌아온 송강호. /뉴시스
‘나랏말싸미’ 세종대왕으로 돌아온 송강호. /뉴시스

◇ 송강호 “지하에서 탈출해 위대한 인물 만났다”

‘나랏말싸미’는 충무로 대표 배우 송강호와 박해일, 그리고 전미선이 의기투합해 기대를 모은다. 먼저 송강호는 글은 백성의 것이어야 한다는 믿음으로 한글 창제를 시작하고 맺은 임금 세종으로 분한다. 그는 ‘사도’(2015) 영조 이후 4년 만에 사극, 그리고 왕 역할을 소화하게 됐다.

송강호는 “역사적으로 위대한 성군인 세종대왕을 연기하는 것이 부담도 됐지만, 이런 기회가 아니면 언제 해보겠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세종대왕에 관해 흔히 알고 있지만, 한글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나 인간적 고뇌, 외로움 등에 대해 심도 깊게 만나진 못했던 것 같다”면서 “군주로서 백성을 생각하는 마음과 고통스러운 상황 속에서의 신념 등을 이 작품을 통해서 느낄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조철현 감독은 세종대왕 역으로 송강호를 캐스팅하게 된 것에 대해 “시나리오를 구축하면서 이상한 버릇이 하나 생겼다”면서 “만원짜리 지폐를 보는 거다”라고 말했다. 그는 “거기에 계신 분(세종대왕)하고 여기에 앉아계신 분(송강호)하고 뭔가 통하는 것 같았다”고 이야기했다.

또 그는 “과연 송강호라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배우가 초짜 신인 감독의 영화에 출연해줄 것인가 자신감도 없고 기대도 하지 않았다”며 “그런데 시나리오를 보고 굉장히 빠른 시간 내에 결정을 해줬다”고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최근 영화 ‘기생충’(감독 봉준호)를 통해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 국내 관객 900만 돌파 등 뜨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그는 “드디어 지하를 탈출해서 600년이라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위대한 인물을 만나고 왔다”면서 “여러분도 우리 역사의 위대함을 느끼고, 즐길 수 있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다”고 재치 있는 소감을 전해 이목을 끌었다.

‘나랏말싸미’에서 신미 스님으로 분한 박해일. /뉴시스
‘나랏말싸미’에서 신미 스님으로 분한 박해일. /뉴시스

◇ 박해일 “삭발? 안 어울린다는 얘기 못들어서…”

세종대왕과 뜻을 모아 함께 한글을 만드는 신미 스님은 박해일이 맡았다. 그는 “모두가 다 아는 세종대왕의 이야기임과 동시에 위대함 속에 가려져있던 인간적이고 평범한 모습들까지 담아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면서 ‘나랏말싸미’를 선택한 이유를 밝혔다.

또 자신이 연기한 신미 스님에 대해서도 흥미로웠다고 덧붙였다. 그는 “한글 창제 과정 안에서 조력자가 스님이었다는 점도 흥미로웠다”며 “시나리오를 받고 신미 스님에 대한 호기심이 컸고, 그 호기심으로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다”고 전했다.

박해일은 스님 역을 위해 삭발까지 감행하며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삭발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냐는 진행자 박경림의 질문에 “다행히 안 어울린다는 소리를 못 들어서…”라고 답해 취재진에게 웃음을 안겼다. 그러자 송강호는 “내가 본 두상 중에 제일 예쁘다”면서 “(박해일도) 아마 두상에 대한 자신감이 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고 보태 웃음을 더했다.

이날 공개된 예고편 영상에서 박해일은 산스크리트어 등으로 능숙하게 대사를 소화해 이목을 끌었다. 그는 “예전에 만주어도 해봤는데 그걸 뛰어 넘는다”며 “단순히 모사를 하고 흉내를 내는 것이 아니라 정말 중요한 감정을 보여줘야 하는 장면이어서 쉽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조철현 감독은 박해일의 열정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삭발식도 실제 승려가 되려고 하는 것과 똑같이 진행했는데, 그 이후로 거의 신미 스님에 빙의된 듯했다”고 말했다. 또 “천년 고찰에서 촬영을 많이 했는데, 그곳에 계신 스님들이 대체로 자부심이 되게 강하시다”며 “그런데 박해일이 본인들보다 더 스님 같다고 하더라”고 밝히기도 했다. 

‘나랏말싸미’에서 소헌왕후 역을 연기한 전미선. /뉴시스
‘나랏말싸미’에서 소헌왕후 역을 연기한 전미선. /뉴시스

◇ 전미선 “여장부 소헌왕후, 안 할 이유 없었다”

전미선도 힘을 더했다. ‘나랏말싸미’에서 그는 세종의 약한 모습까지 보듬으며 한글 창제에 뜻을 보탠 소헌왕후를 연기한다. 소헌왕후는 세종에게 소리글자에 통달한 신미 스님을 소개해 필생의 과업인 한글 창제의 길을 터주고, 궁녀들에게 새 문자를 가르쳐 문자가 살아남을 길까지 마련한 여장부다.

전미선은 “소헌왕후는 세종이 원래 왕이 안 되는 상황이었는데 ‘당신 같은 사람이 왕이 돼야 한다, 백성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고 안에서 계속 얘기를 해 준 사람”이라면서 “세종과 신미의 중간 역할을 하는 여장부다. 두 남자를 더 크게 만드는 분이 소헌왕후가 아니었나 생각한다”고 소개했다.

전미선은 소헌왕후 캐릭터에 매료돼 ‘나랏말싸미’ 출연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그는 “내가 하고 싶었던 말, 갖고 싶었던 성품 등이 소헌왕후에게 모두 담겨있었다”며 “너무 하고 싶었다. 두말할 필요가 없었다고 이야기했다. 또 ”좋은 분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시나리오를 읽고 단번에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조철현 감독은 소헌왕후 역에 전미선이 아닌 다른 배우는 상상한 적 없었다며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그는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두 명의 졸장부(세종·신미)와 한 명의 대장부(소헌왕후)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며 “이 대장부를 통해 두 졸장부가 어떻게 대장부가 되느냐에 관련된 드라마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어 “전미선의 오래된 팬”이라면서 “‘살인의 추억’ 때부터 단 한 번도 좋아하지 않은 적이 없었고, 세종대왕의 부인 역으로 다른 분을 생각한 적이 없었다”고 전해 눈길을 끌었다.

‘나랏말싸미’ 포스터.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나랏말싸미’ 포스터.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 한국 영화 최초로 스크린으로 만나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나랏말싸미’에는 기존 영화나 드라마에서 볼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누구나 쉽게 갈 수 없는 역사적인 공간들이 등장한다. 제작진은 6개월 이상 문화재청의 문을 두드리며 오랜 기간에 걸친 긴밀하고 정교한 회의 끝에 합천 해인사 장경판전부터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안동 봉정사까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문화 유적지를 한국 영화 최초로 스크린에 담아냈다. 

송강호와 박해일, 전미선은 문화 유적지에서 촬영했을 당시를 떠올리며 감격스러운 소감을 전했다.

송강호는 “부석사 무량수전에서 천년의 기운이랄까 미술만으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색감과 기운들을 받으면서 연기했다”면서 “어마어마한 역사의 공기에 ‘우리들의 연기가 얼마나 가볍나’라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숭고한 시간들이었다”고 떠올렸다. 전미선은 “부석사에서 바라보는 배경을 꿈속에서 그대로 봤다”면서 “우리나라가 이렇게 아름다웠나 생각했고, 정말 신기했다”고 전해 눈길을 끌었다. 

우리나라 3대 사찰 중 하나인 해인사의 장경판전은 현재 팔만대장경판의 온전한 보존을 위해 내부 출입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제작진의 오랜 노력 끝에 팔만대장경의 실물을 스크린에 담아낼 수 있게 됐다.

해당 장소에서 촬영을 한 박해일은 “인생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한 경험을 한 것”이라고 감격스러워했다. 그는 “제작진에게 감사하다”면서 “배우 인생에 그런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행복했다. 영화 속에서 문화유산이 제2의 캐릭터가 되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이 작품을 더 새롭게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전해 영화 속 다채로운 볼거리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한글의 시작, 그 위대한 이야기를 담은 영화 ‘나랏말싸미’는 오는 7월 24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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