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성민이 영화 ‘비스트’(감독 이정호)로 돌아왔다. / NEW
배우 이성민이 영화 ‘비스트’(감독 이정호)로 돌아왔다. / NEW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지난해 영화 ‘공작’(감독 윤종빈)으로 각종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휩쓸었던 배우 이성민이 영화 ‘비스트’(감독 이정호)로 돌아왔다. 범인을 잡기 위해 내린 순간의 선택으로 극한으로 치닫게 되는 형사로 분한 그는 복잡하고 다층적인 캐릭터의 감정선을 완벽하게 소화, 다시 한 번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성민의 연기에 한계란 없다. 

지난 26일 개봉한 ‘비스트’는 희대의 살인마를 잡을 결정적 단서를 얻기 위해 또 다른 살인을 은폐한 형사 한수와 이를 눈치챈 라이벌 형사 민태의 쫓고 쫓기는 범죄 스릴러다. 2005년 개봉한 프랑스 영화 ‘오르페브르 36번가’를 리메이크했다.

‘비스트’는 그동안 숱하게 봐왔던 범죄물과는 사뭇 다르다. 단순히 범인을 쫓는 형사들의 이야기를 그리는 방식이 아닌 궁지에 몰린 인물의 내면과 그들이 맺고 있는 관계의 역전에 초점을 맞춰 색다른 서스펜스를 완성했다.

개봉에 앞서 <시사위크>와 만난 이성민도 ‘비스트’만의 특별함을 꼽았다.

“처음 시나리오를 봤을 때는 다른 영화와 다르다는 느낌을 특별히 받지는 않았다. 캐릭터가 워낙 돋보였고, 이정호 감독이 연출한다는 것에 대한 설렘도 있었다. 영화를 만들어놓은 걸 보니 기존 형사물과는 다른 느낌을 주더라. 범인을 추적하고 잡아나는 과정이 아닌 인물의 내면에 초점을 맞췄고,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달랐던 것 같다. 그런 지점이 기존 형사물과 다르게 느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성민이 이정호 감독과 재회한 소감을 밝혔다. / NEW
이성민이 이정호 감독과 재회한 소감을 밝혔다. / NEW

이성민과 이정호 감독의 만남은 벌써 세 번째다. 이성민은 이정호 감독의 2010년 ‘베스트셀러’에서 조연 편집장 역을 소화한 뒤 2014년 ‘방황하는 칼날’에서 주인공 장억관 역을 맡아 활약했다. 그리고 5년 만에 ‘비스트’로 다시 만났다. 

“‘방황하는 칼날’을 하면서 이정호 감독이 갖고 있는 진중함과 익숙하지 않으려고 하는 모습이 자극이 됐고, 흥분됐다. 동기 유발도 많이 됐다. 이정호 감독이 평소 말도 멋있게 하고 고급 어휘를 사용하지 않나. 하하. 시나리오도 문학적으로 쓴다. 그의 문체가 익숙하지만,  대사로 표현하기가 힘든 지점이 있기도 하다. ‘비스트’ 작업 초반, 감독한테 양해를 구하고 대사를 조금 쉽게 바꾸는 과정이 있었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촬영에 임했다.”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넘나들며 무수히 많은 작품과 캐릭터, 다양한 장르를 소화해왔지만 ‘비스트’는 유독 힘든 작업이었다. 스트레스와 부담감에 눈에 실핏줄까지 터졌다. 하지만 이성민은 터진 실핏줄 덕에 더 리얼한 장면을 담을 수 있었다며 웃었다.  

“비교적 연기하는 순간과 끝나고 나서 구분을 잘 하는 편인데, 이 영화는 촬영이 없는 날에도 많이 힘들었다. 폭력성이나 그런 부분에 영향을 많이 받았던 것 같다. 특이한 경험이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왜 이렇게 짜증이 날까?’ 싶더라. 그렇다고 짜증을 낸 건 아니고(웃음). 끝나고 너무 행복했다. 하하. 공교롭게도 가장 중요한 장면을 찍는 날 실핏줄이 터졌다. 그전에도 한 번 터졌었는데, 촬영을 며칠 쉴 때 그랬다. 그래서 이정호 감독도 굉장히 아쉬워했다. 그런데 마지막 엔딩 찍는 날 터져서 자연스럽게 잘 담겼다.”

올해도 ‘열일’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이성민. / NEW
올해도 ‘열일’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이성민. / NEW

이성민은 지난해 여름 영화 ‘공작’에 이어 ‘목격자’(감독 조규장)까지 잇달아 선보이며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특히 ‘공작’에서는 북측 인사 리명운 역을 맡아 속내를 감춘 날카로운 표정으로 절제된 인물의 감정 표현을 탁월하게 묘사해 호평을 받았다. 해당 작품으로 유수의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 진가를 인정받았다.

올해도 ‘열일’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이성민이다. ‘비스트’ 외에도 지난 1월 영화 ‘뺑반’(감독 한준희)으로 관객과 만났고, ‘남산의 부장들’(감독 우민호)과 ‘미스터 주’(가제, 감독 김태윤)도 개봉을 앞두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성민은 “배우로서 이성민이라는 사람의 흔적을 남기고 갈 수 있어서 참 다행”이라며 “연기를 시작하고 꿈꿔왔던 일을 해냈다는 생각이 드는 시기”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배우라는 직업이 그렇게 외롭지 않은 일이란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요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 혼자 하는 작업이 아니구나, 그래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 동료 배우와 감독, 스태프들과 협업을 할 수 있는 그렇게 외롭지 않은 직업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굉장히 마음이 놓인다. 좋은 캐릭터가 있어야 연기가 빛나는 거고, 좋은 캐릭터는 또 좋은 시나리오 안에 있는 거고, 좋은 시나리오는 좋은 연출자가 나와야 발현이 되는 거니까. 배우 혼자만 할 수 없는 일이다.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도 좋은 조력자들과 그들의 아이디어와 의견들로 만들어지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외롭지 않은 직업이라는 생각이 든다.” 

1985년 연극배우로 데뷔한 그는 무대에서 쌓은 연기 내공으로 브라운관과 스크린까지 섭렵,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다. 탄탄한 연기력을 바탕으로 맡은 역할마다 완벽한 캐릭터 소화력을 보이면서, ‘믿고 보는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이성민은 매 작품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호평에도 “이것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다”며 겸손한 모습이다.

천생배우 이성민이 소박한 꿈을 털어놨다. / NEW
천생배우 이성민이 소박한 꿈을 털어놨다. / NEW

“이것 말고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하하. 어차피 발을 담갔고, ‘일’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왜 그렇게 다작을 하냐고 하는데, 직장인들도 매일 출근을 하지 않나. 우리도 그렇다. 촬영이 있으면 새벽에 일어나서 준비하고 촬영에 들어가고, 촬영 끝나면 저녁을 먹을지 말지 고민하고 동료들과 맥주 한잔하고, 그런 식의 일상을 살고 있다.

그러다가 작품이 끝나면 가끔 쉬는 시간이 주어지고. 그렇지만 돈 때문에 하는 건 아니다. 그냥 한다. 일을 그만두진 못할 것 같다. 20세 때 처음 극단에 들어가서 군대 시절만 빼고는 연기를 안 한 적이 없다. 연극도 마찬가지다. 필모그래피를 보면 연극도 정말 많이 했다. 그때부터 이미 일중독이 아니었을까. 재밌는 건, 어떤 캐릭터를 연기할 때 아프지 않다. 아마 적당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어서 그런 것 같다.”

소박한 꿈도 내비쳤다. 나이가 더 들어, 배우 생활을 그만두게 됐을 때 처음 연극을 시작했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 소박하지만 따뜻함이 느껴지는 딱 이성민다운 대답이었다.    

“과거 이순재 선배와 ‘더 킹 투하츠’(MBC)를 같이 찍었는데, 당시 드라마도 하고 연극도 하고 계셨다. 촬영 중간중간 연극 대본을 계속 외우시더라. 그걸 보면서 선생님의 건강 비결은 저거구나라고 생각했다. 끊임없이 작업하고 김장감을 유지하는 것. 나도 언젠가는 체력이 안 돼서 일을 그만두겠지. 아니면 연기가 안 돼서 나를 점점 안 쓰거나. 나이가 들고 더 늙으면, 내가 처음 연기를 시작했던 극단이 아직도 있는데, 그곳에 가서 같이 놀까? 할아버지가 살아온 이야기해주면서…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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