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칼날이 국내 전자업계를 향하고 있다. 1일 일본 경제산업성은 한국 수출품 가운데 3개 품목의 규제 강화를 결정했다. /AP-뉴시스
일본의 칼날이 국내 전자업계를 향하고 있다. 1일 일본 경제산업성은 한국 수출품 가운데 3개 품목의 규제 강화를 결정했다. /AP-뉴시스

시사위크=최수진 기자  전자업계가 불안에 떨고 있다. 일본 정부가 한국으로 수출되는 전자 부품의 규제를 강화하고 나선 탓이다. 다만, 국내 기업이 타격을 받은 만큼 일본 기업에도 문제가 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일각에서는 일본의 자충수가 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 일본 정부, 전자 핵심 ‘3종’ 규제

일본의 칼날이 국내 전자업계를 향하고 있다. 1일 일본 경제산업성은 한국 수출품 가운데 3개 품목의 규제 강화를 결정했다.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리지스트, 애칭가스(고순도 불화수소) 등 3종이다. 규제 시기는 오는 4일부터다. 

이들 3종은 전자기기에서 차지하는 역할은 크다. 플루오린 폴리이미드는 스마트폰 디스플레이에 사용되며, 리지스트는 화학 반응을 통해 반도체 기판 제작에 도움을 주는 물질이다. 애칭가스는 반도체 세정에 사용된다. 현재 국내 전자업계에서 출시하는 대부분의 기기에 해당 부품이 사용된다.

일본 정부는 수출 우대 대상국에서 한국을 제외한다. 이로 인해 국내 전자 기업들은 일본 정부에 관련 제품의 수출 허가에 대한 승인을 요청해야 한다. 승인 기간은 약 90일 정도 소요되며, 허가 여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 전자업계 타격… “기술력 높은 일본기업 대체할 곳 없어”

문제는 이들 3종 부품을 대체할 기업이 없다는 점이다.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리지스트의 경우 일본 기업의 글로벌 시장 점유율은 90%에 달한다. 애칭가스 역시 70% 수준으로,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사실상 일본 업체들이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상황이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대체 기업이 없다”며 “이들 3종 모두 완벽한 대체는 어렵지만 애칭가스는 어느 정도 국내 기업이나 해외 기업을 통해 대응이 가능하다. 그런데 리지스트는 다르다. 일본 기업에서 수급을 받는 모든 리지스트를 다른 곳에서 구하는 게 쉽지 않다. 플루오린 폴리이미드도 마찬가지”라고 전했다. 

이는 결국 국내 전자업계에 대한 압박으로 해석된다. 대체 불가능한 품목에 대해서만 규제를 강화하고 나서서다. 

부품을 대체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일본 기업의 기술력이다. 국내 기업들의 요구 조건에 부합하는 기술력을 가진 기업은 일본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대체 가능성이 희박한 이유이기도 하다. 업계 관계자는 “일본 대표 기업의 업력이 워낙 오래됐기 때문”이라며 “그들은 수십년에서 백년에 가까운 업력을 가지고 있다. 다른 기업은 따라갈 수 없다. 고순도, 고품질을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은 일본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 일본 ‘자충수’ 될까… 국내 타격 ‘미미’ 예상도

업계에서는 당장의 타격 규모를 예측하기는 어렵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업계 관계자는 “기업이 할 수 있는 부분에서는 최선을 다할 예정”이라며 “현재 갖고 있는 재고를 활용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일정 부분 대응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다만, 규제가 장기화될 경우 기업의 부담은 커질 전망이다. 일본 정부가 관련 부품의 수출을 허가제로 바꾼 탓에 승인에 걸리는 시간이 더 길어지며, 허가가 나지 않을 경우 생산에 차질이 생길 우려가 존재하는 탓이다. 

일각에서는 일본 역시 부정적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1일 김양재 KTB투자증권 연구원은 “현재 반도체 디스플레이 수급은 공급과잉 국면”이라며 “이번 이슈는 국내 제조사가 과잉 재고를 소진하고 협상력도 강화할 수 있는 기회다. 국내 생산 차질에 대한 일본의 반사이익도 없다. 일본 업체의 경쟁력이 없는 탓이다. 국내 소재업체는 중장기적으로 국산화 수혜를 받는 반면 일본 소재업체는 직접적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분석했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원 역시 “일본 소재 업체 입장에서도 실적 타격이 클 것”이라며 “이로 인해 애플, HP, 델 등 미국 주요 업체 피해도 예상된다. 미중 무역갈등이 봉합된 상황에서 일본이 나서서 판을 깰 수 있다는 부담을 일본 정부가 감당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승우 연구원은 “일본 규제가 현실화된다고 해도 재고 부담이 큰 메모리 업체는 자연스럽게 감산 결정을 할 가능성이 높다”며 “반도체 사이클 바닥 시점을 앞당기는 효과도 있을 수 있다. 결국 국내 반도체 업체의 실적 및 주가에 큰 악재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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