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 주한미군 기지에서 병사들의 환영을 받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 /뉴시스
평택 주한미군 기지에서 병사들의 환영을 받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 /뉴시스

시사위크=정계성 기자  일본의 일방적인 무역규제 확대로 양국 간 갈등이 첨예해지고 있다. 정치적 대립을 넘어 불매운동 등 국민적 감정의 골이 더욱 깊어지는 양상이다. 그럼에도 일본은 추가 제재 가능성을 내비치며 압박 강도를 높이고 있다. 나아가 아베 총리는 뜬금없이 ‘대북제재’와 연관시키는 등 막무가내다.

청와대는 일본의 행동을 ‘보복성 조치’라고 규정하고 대응책 마련에 들어갔다. 산업부를 중심으로 WTO 제소를 검토하고 있으며, 핵심 당국자들이 기업과 접촉면을 넓히며 업계의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급기야 8일에는 그간 침묵했던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 “대응과 맞대응의 악순환은 양국 모두에게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면서도 “한국 기업에 피해가 실제적으로 발생할 경우 필요한 대응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경고했다.

양국관계를 중재할 위치에 있는 미국은 일주일 넘게 침묵을 유지하고 있다. 역대 미국 정부들이 양국관계 중재에 적극적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의아한 대목이다. 한국과 일본은 미국의 동맹국들이자 대아시아 전략의 양대 축이기 때문이다. 갈등해소를 위해 미국이 적극적으로 나섰던 전례도 적지 않다.

실제 2015년 오바마 행정부 당시 ‘위안부 문제’로 한일관계가 경색되자 웬디 셔먼 정무차관은 “정치 지도자가 민족 감정을 이용해 과거의 적을 비난함으로써 값싼 박수를 얻는 것은 어렵지 않다”며 우리 측의 입장전환을 촉구했었다. 우리나라에서 비난여론이 거세지자 “그런 뜻이 아니었다”고 한 발 물러섰으나 한일관계를 풀어가겠다는 의지는 분명했다. 우리와는 평가가 상반되지만, 한일 위안부 합의가 이뤄지자 뉴욕타임즈 등 미국언론들이 “기념비적인 합의”라고 크게 반겼던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 ‘한미일 공조에 회의적인 트럼프’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현재까지 특별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미국의 이익을 우선으로 하는 ‘미국 우선주의’가 적용되고 있다는 해석이 일반적이다. 또한 한미일 공조를 바탕으로 북중러를 견제하는 미국의 전통적 안보전략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회의적 시각도 원인 중 하나로 풀이된다.

블룸버그 통신은 다니엘 스네이더 스탠포드 대학 교수의 발언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은 아시아의 동맹국들이 다툼을 벌일 때에도 주일미군과 주한미군의 주둔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을 뿐 (해소에) 소극적이었다”며 “일본과 한국을 방문했지만 갈등을 완화하기 위한 공식 발표는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아베 총리의 규제확대에 트럼프 대통령의 ‘묵인’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음모론도 나온다. 한국의 반도체 기업이 타격을 받으면 마이크론 등 미국 회사가 반사적인 이익을 얻는다는 게 근거다. 무엇보다 한국산 반도체의 절반 가까이를 소화하는 중국까지 타격을 입힐 수 있어 미국 입장에서는 일거양득의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음모론 자체의 사실여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미국 등 국제사회 협조를 통해 해법을 찾아야한다는 점이다. 정부도 맞대응 보다는 국제여론을 설득하는데 방점을 찍는 모양새다. 문재인 대통령은 “상호 호혜적 민간기업 간 거래를 정치적 목적으로 제한하려는 움직임에 대해 한국 뿐 아니라 전 세계가 우려하고 있다”며 “무역은 공동번영의 도구여야 한다는 국제사회 믿음과 일본이 늘 주창해온 자유무역의 원칙으로 되돌아가기를 바란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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