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2019) 자스민(나오미 스콧 분)이 당당하고 주체적인 여성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알라딘’(2019) 자스민(나오미 스콧 분)이 당당하고 주체적인 여성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이쯤 되면 신드롬이다. 디즈니 뮤지컬 실사영화 ‘알라딘’(감독 가이 리치)이 역대급 흥행 뒷심을 발휘하고 있다. 지난 5월 23일 개봉한 뒤 무려 8주 동안 박스오피스 3위권 내를 지키고 있는데 이어 지난 9일까지 누적 관객수 938만을 기록, 1,000만 돌파를 목전에 두고 있다.

화제성도 높다. 한국은 북미, 일본에 이어 전 세계 ‘알라딘’ 흥행 3위를 기록하고 있을 뿐 아니라 영화를 대표하는 명곡들이 국내 음원사이트를 장악하는 등 뜨거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4DX 버전으로도 75만명(지난 9일 기준)을 동원, 국내 기준 4DX로 개봉한 영화 중 역대 최다관객수를 연일 갱신하며 신기록 행진 중이다. 극장가를 넘어 대한민국을 집어삼킨 ‘알라딘’이다.

‘알라딘’은 좀도둑에 지나지 않았던 알라딘(메나 마수드 분)이 우연히 소원을 들어주는 램프의 요정 지니(윌 스미스 분)를 만나게 되면서 환상적인 모험을 겪게 되는 판타지 어드벤처 작품이다. 1992년 개봉한 동명의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실사로 리메이크했다.

실사로 재탄생한 ‘알라딘’은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익숙한 스토리에 화려한 볼거리, 신나는 음악 등 원작의 매력을 고스란히 간직하면서도 시대의 흐름에 맞는 캐릭터 설정과 리메이크로 주체적인 메시지까지 담아내 호평을 받고 있다.

애니메이션 ‘알라딘’(1992, 위)을 실사화한 ‘알라딘’(2019)이 전 세계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 네이버영화,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애니메이션 ‘알라딘’(1992, 위)을 실사화한 ‘알라딘’(2019)이 전 세계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 네이버영화,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특히 자스민 공주의 변화가 눈길을 끈다. 자스민은 술탄(최고 통치자)의 외동딸이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왕위를 이어받을 수 없다. 이에 다른 왕국의 왕자와 결혼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원작에서 자스민은 이러한 상황에 답답함을 느끼고, 속박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찾고자 한다. 하지만 그의 고민은 그저 ‘진정한 사랑 찾기’에 지나지 않고, 가출의 이유도 정략결혼을 피하기 위함일 뿐이다.

27년 만에 다시 돌아온 자스민은 당당하고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로 진화했다. ‘알라딘’(2019) 속 자스민(나오미 스콧 분)은 남편감을 선택하기 위함이 아닌 사랑하는 백성을 지키기 위해 직접 ‘술탄’이 되고자 한다. 진정한 지도자가 되기 위해 평생을 준비해 온 자스민은 ‘여자는 왕이 될 수 없다’며 왕자와의 결혼을 강요하는 아버지에게 “다른 나라의 왕자가 나보다 이 왕국을 사랑하겠냐”며 술탄을 향한 강한 의지를 드러낸다.

또 자스민은 여성이기 때문에 겪어야 했던 불합리한 시선에 침묵하지 않고 당당히 맞선다. “왜 공주의 미모에 대해 말하지 않았냐”며 “눈이 즐겁다”고 말하는 이웃나라 왕자에게 “나도 왕자의 미모에 대해 들은 게 없다”면서 “우린 같은 지위인데 취급이 많이 다르다”고 일침을 가한다.

‘알라딘’(2019)에서 자스민으로 완전히 분한 나오미 스콧 스틸컷. /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알라딘’(2019)에서 자스민으로 완전히 분한 나오미 스콧 스틸컷. /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술탄의 자리를 탐내는 자파에게도 굴복하지 않는다. 자스민은 지니의 힘으로 술탄의 자리에 오른 자파에게 충성하는 장군 하킴을 향해 아그라바의 백성을 지켜낼 진정한 지도자가 누구인지 목소리를 내며 그를 설득한다. 완고하기만 했던 아버지도 결국 자스민을 차기 술탄으로 인정하게 된다. 미인계를 이용해 위기를 모면했던 ‘알라딘’(1993) 속 자스민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무거운 법과 규칙들이 날 족쇄처럼 옭아매네. 자릴 지켜. 목소릴 내지 마. 이제 난 참을 수 없어. 절대 무너질 수 없어. 그래 덤벼 봐. 내 앞을 더 막아서 봐. 난 지지 않아. 내 입을 막아도 두려워 떨지 않아. 난 절대 침묵하지 않아. 절대 침묵하지 않아!

-‘알라딘’ OST ‘스피치리스(Speechless)’ 중-

2019년 ‘알라딘’에 새롭게 추가된 자스민의 솔로 넘버 ‘스피치리스(Speechless)’는 그의 변화의 상징이다. “화초처럼 살면 편해질 것”이라고 말하는 자파, 그리고 억압적인 세상을 향해 자스민은 “절대 침묵하지 않겠다”고 울부짖는다.

달라진 자스민은 그동안 수많은 영화에서 도구로만 소비됐던 여성 캐릭터를 그려내는 방식에 바람직한 방향성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더한다. 자라나는 아이들이 백마 탄 왕자를 기다리는 그저 예쁘기만 한 공주가 아닌, 부당함에 굴복하지 않고 당당히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멋진’ 여성 자스민을 통해 꿈을 키울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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