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판문점 자유의집에서 단독회담을 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노동신문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판문점 자유의집에서 단독회담을 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노동신문

시사위크=정계성 기자  북한 비핵화 협상의 타임테이블은 2020년까지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의견이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김정은 위원장 입장에서는 모처럼 ‘대화가 통하는’(?) 미국 대통령의 재임 기간 내 협상을 마무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집권세력 교체에 따라 협상기조가 달라지는 경험을 북한은 가지고 있다.

재선을 노리는 트럼프 대통령도 안보 측면에서 가시적 성과가 필요했다. 무엇보다 전임 오바마 행정부에서 맺은 이란 핵협상을 무위로 돌리고 긴장관계를 조성한 만큼, 안보위협의 다른 한 축인 북한에 대해서는 협상으로 풀어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지난달 30일 판문점을 방문해 김정은 위원장과 극적인 회담을 이뤄낸 것도 차기 미국대선과 관련이 깊다.

5년 단임제의 한계가 있는 문재인 대통령도 급하기는 마찬가지다. 2020년으로 못 박지는 않았지만 문 대통령은 “임기 내에 북핵문제를 해결하고 평화를 공고히 하는 게 제 목표”라고 누차 강조했었다. “집권 말미에 남북회담을 했던 이전의 정상들과는 다르다”고도 했었다. 1차 북미회담에서 평화선언을 하고, 핵동결을 시작으로 핵폐기와 종전선언 및 평화협정으로 이어지는 로드맵이 나왔던 배경이다.

◇ 외교적·물리적으로 불가능했던 CVID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군사분계선을 함께 넘고 있다. /뉴시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군사분계선을 함께 넘고 있다. /뉴시스

속도를 낸 것은 미국 측이었다. 싱가포르 회담 전부터 볼턴 등 강경파를 중심으로 CVID(검증 가능한 불가역적 비핵화)가 이야기 됐으며, ‘완전화 비핵화’라는 북미 간 포괄적 합의를 바탕으로 하노이 회담에서는 이른바 ‘빅딜’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리비아식 ‘백기투항’에 가깝다는 점에서 북한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타결을 낙관했던 청와대는 예상 못했던 미국 측의 강경한 요구에 깜짝 놀랐고, 회담결렬에 따른 충격도 컸다.

사실 2020년까지 북한의 비핵화라는 것은 처음부터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 북한 핵사찰 경험이 있는 지그프리드 헤커 박사는 완전한 비핵화까지 최소 15년이 소요될 것으로 봤다. 단순히 보유 핵무기 해체가 아니라 시설폐쇄, 인력에 대한 감시까지 사찰하려면 긴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북한은 고도화된 인프라를 갖추고 핵무기를 제조한 나라로, 어쩌다 핵무기를 보유했다가 폐기했던 국가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비핵화’ 정의를 두고 양측이 처음부터 평행선을 달렸던 이유다.

멈춰선 비핵화 협상은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만남을 계기로 다시 탄력이 붙고 있다. 구체적인 일정이 공개되진 않았지만, 조만간 실무협상이 시작될 것으로 예상된다. 내년 대선을 앞둔 트럼프 대통령이나, “올해까지만 기다려보겠다”는 김 위원장 모두 마지막 협상이 될 공산이 크다. 결렬에 따른 정치적 부담 역시 크기 때문에 양측 모두 새로운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 ‘핵동결 시작으로 WMD 완전해체’ 선회

먼저 북한은 대미협상 창구를 통일전선부에서 외무성으로 교체했다. 하노이 실패의 책임을 물은 측면이 있지만, 대미협상의 유연성을 확보하기 위한 목적이라는 해석도 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에 따르면, 미국 협상단은 북한 군부 출신들의 경직성 때문에 협상 과정에서 불편함을 많이 호소했다고 한다. 일부 전문가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정치적 명분을 주면서 후일을 대비한다는 ‘전략적 포석’으로도 해석한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 교수는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미국이 비핵화와 관련해 신고·사찰·검증을 꾸준히 요구했는데,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이 불확실한 상황에서는 북한이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북미 간 신뢰를 쌓는 동안에는 단계적·동시적 이행을 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다면 신고사찰 등 모든 부분에 속도를 내겠다는 전략적 관점에서 움직이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미국은 CVID·FFVD에서 “대량살상무기의 완전한 해체”로 목표를 수정했다. 북한이 극도로 반대하는 어구 사용을 일단 자제한 셈이다. 또한 비핵화 시작단계로서 ‘핵동결’을 논의할 수 있다는 유화적인 입장도 조금씩 흘렸다. 단계적 접근으로 북미 간 신뢰를 쌓을 수 있고 특히 북한의 핵능력 고도화를 현 상황에서 ‘관리’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핵동결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이와 관련해 최근 미 국무부 브리핑에서는 재미있는 질의응답이 나왔다. ‘CVID·FFVD 기조가 지금도 유지되고 있느냐’는 취재진의 물음에 모건 오테이거스 대변인은 “그것의 발음이 어려워 혀가 꼬이기 때문에, 저는 대량살상무기의 완전한 해체라고 말을 하겠다”고 답했다. CVID라는 말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북한을 희화화한 것인지, 아니면 ‘협상이 꼬인다’는 의미인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협상타결을 위해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새로운 계산법’을 들고 나왔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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