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에 판매되는 건강 음료는 하나 같이 '채소'가 아닌 '야채'로 이름이 작명돼 있다. 이에 관핸 업체 관계자는 "야채는 일본식 표현이 아니며, 뉘앙스적으로 야채가 더 싱싱한 느낌을 전달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각 사
시중에 판매되는 건강 음료는 하나 같이 '채소'가 아닌 '야채'로 이름이 작명돼 있다. 이에 관핸 업체 관계자는 "야채는 일본식 표현이 아니며, 뉘앙스적으로 야채가 더 싱싱한 느낌을 전달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각 사

시사위크=범찬희 기자  일본어의 잔재를 논하는 데 빠지지 않는 얘기가 있다. 바로 ‘야채’와 ‘채소’ 사용에 관한 문제다. 야채가 당당히 표준어 자격을 얻은 후에도 여전히 단어 사용에 관한 의구심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불과 올해 초에도 국립국어원 온라인 게시판에 ‘일본식 표현인 야채가 표준어가 된 이유가 궁금하다’는 질문이 등재됐다.

혼란은 여전하지만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기업 제품 이름에는 채소보다 야채가 선호되고 있는 현실이다. 야채(채소) 성분이 포함된 음료들은 하나 같이 ‘야채○○’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다. 자연원의 ‘100% 유기농 과일야채’, 정식품의 ‘야채가득’, 비락의 ‘야채사랑’, 파스퇴르의 ‘야채농장’, 야쿠르트의 ‘하루야채’ 등등 그 수는 무수히 많다. 최근엔 남양유업이 ‘야채채움’을 출시하며 건강음료 라인업을 강화했다.

그렇다면 기업들은 행여나 일본식 표현을 제품 네이밍으로 선택한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야채라는 표현은 잘못된 게 아니다. 야채와 채소 모두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된 표준어다. 사전에서는 ‘야채’를 일컬어 ‘들에서 자라나는 나물’이라 정의하고 있다. 또 ‘채소를 일상적으로 이르는 말’이라 부연하고 있다. 야채와 채소, 두 단어를 혼용해 사용하는 데에 전혀 문제가 없는 셈이다.

국립국어원 역시 다음과 같은 설명을 내놓고 있다. “‘야채’가 일본식 한자어라는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 이에 ‘야채’를 일본식 한자어로 보지 않고, ‘채소’를 일상적으로 이르는 말인 표준어로 분류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다만 논란의 의식한 듯 다음과 같이 부연하고 있다. 국립국어원은 “‘야채’를 일본식 한자어로 보는 일부의 견해가 있는 것도 사실이므로,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라면 ‘채소’를 쓰는 것이 좋을 듯하다. 추가로 ‘채소’ 역시 ‘菜蔬’라는 한자어이지, 순우리말은 아니다”고 덧붙였다.

서슬 퍼런 일제 시대에도 꿋꿋이 한글로 작품을 발표한 작가 황순원 선생도 야채라는 표현을 작품에 사용한 흔적이 있다. 그의 저서 ‘신들의 주사위’(1982)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적혀 있다. “비닐하우스가 있어서 철이 아닐 때에도 싱싱한 야채를 먹을 수 있어 좋은데요”라고 말이다.

단어의 뜻으로 유추컨데, 야채는 오히려 채소를 아우르는 더 광범위한 개념으로 해석된다. 사전의 뜻풀이에 비춰보면 채소는 ‘밭에서 기르는 농작물’에 한정된다. 들은 ‘밭’뿐만 아니라 물이 더해진 ‘논’까지 포함하므로 야채가 채소보다 더 의미가 넓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럼에도 야채가 근거없는 '누명'을 쓰고 있는 건 아마도 일본에서도 ‘야사이’라 발음되는 동일한 한자(野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반면 일본에서 채소는 우리말로 ‘소채’, 일본어로는 ‘소사이’로 발음되는 ‘蔬菜’를 쓴다.

두 단어의 사용에 관해 학계는 한발짝 물러나 있는 모습이다. 복수의 국문학 교수들은 “애매한 문제라 쉽사리 의견을 표출하기가 쉽지 않다”면서 “국립국어원의 뜻을 존중 한다”고 입을 모은다. 모 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국문 학계에서도 야채와 채소의 올바른 사용에 관한 공식적인 논의를 해본 건 없는 걸로 안다”면서도 “야채가 일본어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근거를 찾을 수 없다는 국립국어원의 권위를 따라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야채가 일본식 표현이 아니라는 건 내부적으로 검토를 마쳤다”며 “채소 보다 야채를 기업들이 더 선호하는 건 후자(야채)가 부르기 더 편하고 싱싱한 느낌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브랜딩을 하는 데 있어 더 부르기 편하고 자연에서 자란 뉘앙스를 풍기는 미묘한 차이를 고려한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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