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박용만 회장과 GS그룹 허창수 회장이 수장을 맡고 있는 경제 단체 '대한상의'와 '전경련'이 한국과 일본의 경제 갈등 국면에서 상이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 각 사​
​두산 박용만 회장과 GS그룹 허창수 회장이 수장을 맡고 있는 경제 단체 '대한상의'와 '전경련'이 한국과 일본의 경제 갈등 국면에서 상이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 각 사​

시사위크=범찬희 기자  국내 산업계를 대표하는 대한상공회의소(이하 대한상의)와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의 위상이 한일 경제 갈등 국면 속에서도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정부와 여야의 공동 대응을 촉구하는 대한상의 박용만 회장의 발언 하나하나에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반면, 양국 갈등의 ‘소방수’ 역할을 할 것이라 기대를 모은 전경련의 목소리엔 힘이 실리지 못한 채 공허하게 울려 퍼지고 있는 양상이다.

◇ 소신 발언으로 정치권 압박하는 박용만 회장

‘재계 맏형’ 지위가 전경련에서 대한상의로 넘어갔다는 건 이번 일본 수출규제에 관한 대응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업종뿐 아니라 국내 산업 전반으로 겉잡을 수 없는 피해가 예상되자 대한상의 수장인 박용만 회장이 직접 나서 정치권에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며 경제계 대변자 역할을 하고 있다.

박 회장은 상당히 강도 높은 발언으로 정부와 여야를 압박하고 있다. 자신의 SNS 등 비공식적인 경로를 통해서는 물론, 동료 기업인들이 함께 자리한 공식적인 자리에서도 소신을 굽히지 않고 있다. 지난 17일 제주 신라호텔에서 열린 ‘44회 대한상의 제주포럼’에 참석한 박 회장은 개회사에서 “서로 입장차와 견해차가 있어도 지금 (여야가) 그것을 표명해 서로 비난하고 갑론을박할 때는 아닌 것 같다”면서 “서로 참기도 하고 보다 성숙한 모습으로 같이 대처하는 모습이 안 보여 아쉽다”고 말했다.

박 회장의 이번 발언은 앞서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의 연장선에 있다. 일본의 수출 규제로 국내 경제에 빨간불이 켜지기 시작한 지난 3일 그는 페이스북 계정에 “여·야·정 모두 경제위기라는 말을 입에 담지 말아줬으면 좋겠다”며 작심 발언을 던졌다. 이어 일본은 공동작업을 하는 데 한국은 서로 비난하기 바쁘다며 양국을 비교해 ‘입바른 소리’를 했다. 자칫 ‘수위를 넘었다’는 비판을 살 수도 있었던 박 회장의 문장은 국민들의 지지를 받으며 ‘사이다 발언’으로 회자됐다.

◇ ‘일본통’ 전경련, 고군분투에도 ‘靑’ 패싱 여전

‘을’의 위치에 있는 경제계가 ‘갑’인 정치권을 향해 큰 소리를 치기란 쉽지 않다. 박 회장이 혹여나 ‘괘씸죄’에 걸릴 수 있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에 기민한 대처를 촉구하는 건 그만큼 이번 사안을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다는 방증으로 해석된다. 이러한 경제계가 갖고 있는 상황 인식을 강도 높게 외부에 표출하게 된 건 재계 맏형으로서 뒷짐을 지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책임감의 발현일 것이다. 여기에 언론들이 박 회장의 발언을 비중 있게 다루면서 그의 어깨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반대로 전경련은 자신들이 주도권을 쥐어야 할 한일 경제 갈등 문제에 있어서도 뒷전으로 밀려나 있는 모습이다. 일본의 경제제재를 해결할 방안을 모색하는 세미나를 개최하고, 직접 일본 정부에 건의서를 전달하며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주목도는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대한상의 박 회장의 ‘말’ 한마디보다도 화제성이 현격히 떨어진다. 이는 단체 수장의 역할 차이에서 비롯된 측면이 없지 않은데, 이번 사태와 관련해 허창수 GS그룹 총수가 전경련 회장 자격으로 자신의 의중을 표명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고 있다.

정부로부터도 ‘패싱’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전경련은 지난 10일 청와대가 국내 대기업 30곳과 경제 단체 4곳을 불러 연 경제계 주요인사 초청 간담회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에 대한 대응책을 논의하기 위해 경제계가 머리를 맞댄 이날 자리에 함께하지 못했다. 일본 재계와 탄탄한 네트워크를 구축해 ‘일본통’이라 불리는 전경련이 간담회에서 제외된 건 문재인 정부의 전경련 ‘패싱’ 기조를 그대로 보여준다는 게 재계의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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