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두언 전 새누리당 의원의 발인이 19일 진행됐다. 평소 그와 가까이 지냈던 김용태 자유한국당 의원은 “멋진 정치를 해보려고 했던 풍운아였다”고 회고했다. / 뉴시스
정두언 전 새누리당 의원의 발인이 19일 진행됐다. 평소 그와 가까이 지냈던 김용태 자유한국당 의원은 “멋진 정치를 해보려고 했던 풍운아였다”고 회고했다. / 뉴시스

시사위크=소미연 기자  고(故) 정두언 전 새누리당 의원은 정치계의 풍운아로 평가됐다. 파란만장한 정치역정 속에서도 타고난 끼를 숨기지 않았던 그다. 17대부터 19대 총선까지 내리 3선을 지내면서도 4집 음반까지 내 ‘가수 의원’으로 불렸다. 마지막 꿈은 연기자가 되는 것이었다. 과거 가족의 반대로 오디션을 중도 포기한 게 여전히 아쉬움으로 남은 듯 했다. 하지만 정두언 전 의원은 꿈을 이루지 못하고 떠났다.

정두언 전 의원은 20대 총선에서 낙선한 뒤 우울증을 앓게 됐다. 그래서 서울 마포구에 일식당을 열고 자영업에 도전하며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장사는 알려진 것과 달리 큰 어려움은 없었다는 게 측근들의 설명이다. 다만 본인이 정치를 놓지 못했다. 시사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정치평론가로 대중들과 만났다. 숨진 16일 오전에도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정태근 전 새누리당 의원과 함께 국회 선진화법에 대해 이야기했다.

정두언 전 의원의 고민은 ‘합리적 보수정당’을 만들 수 있겠느냐였다. 현재 자유한국당으로선 보수정당의 미래가 보이지 않았던 것. 비록 정치인생에서 상처가 많았으나 본인이 정치인임을 잊지 않았다.

정두언 전 의원은 2000년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권유로 정계에 입문했다. 이명박(MB)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2002년 서울시장 선거를 앞두고서다. 당시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해 있던 정두언 전 의원을 MB가 찾아왔다. 이후 MB의 캠프에 정두언 전 의원이 합류했다. 2007년 대선도 함께 치렀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공격수를 자처한 사람이 바로 정두언 전 의원이었다. 그는 경선 과정에서 “박근혜와 최태민의 관계를 낱낱이 밝히면 박근혜 좋아하는 분들은 밥도 못 먹게 될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MB 정권 초기 정두언 의원은 개국공신으로서 정권실세와 다름없었다. 하지만 MB의 친형인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과 갈등을 극복하지 못하고 권력 밖으로 밀려났다. 이상득 전 의원을 향해 ‘권력의 사유화’라고 비판하는가 하면 그의 불출마를 요구하는 이른바 ‘55인 파동’에 앞장서 눈총을 샀던 것. 그때부터 정두언 전 의원은 비주류의 삶을 살았다. 그럼에도 3선을 달성하고 당 최고위원까지 올랐다.

위기는 MB정권 말에 다시 찾아왔다. 정두언 전 의원은 2012년 임석 전 솔로몬저축은행 회장으로부터 3억원의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 받고 구속 수감됐다. 이후 파기환송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10개월간의 수감생활에서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정두언 전 의원이 오랜 시간 우울증을 앓아온 것으로 보인다. 그는 극단적 선택으로 운명을 달리했다. 유서는 가족에게만 공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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