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회동이 끝난 이후 잠시 따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과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회동이 끝난 이후 잠시 따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정계성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일본의 무역규제에 대해 ‘초당적 대응’을 강조했다. 한국의 주요 수출품목인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에 직접 타격이 예상되는 ‘비상상황’이라는 판단에서다. 정책과 예산 등 가용한 모든 자원이 동원된 적극적인 방어가 필요하다는 논리로 이어진다. 상대가 역사적 감정이 큰 일본인 만큼, 민족적·국가주의적 요소를 강조하는 측면도 없지 않다.

18일 청와대에서 5당 대표들과 회동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꼭 필요한 일에 대해서 초당적으로 합의를 이루고 공동 대응하는 그런 모습을 보여드린다면 아마 국민들께서 매우 든든해하시리라고 생각한다”며 “일본에 대해 좋은 메시지가 될 것이고, 또 우리 정부와 기업의 협상력을 높여주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정부도 ‘일본 수출규제 대응 관계장관회의’를 개최하고 우리 산업의 대일 의존도 완화와 근본적 경쟁력 제고 방안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기로 했다. 특히 국회의 추경안 심의과정에 소재·부품·장비 산업 관련 예산이 포함될 수 있도록 노력하기로 했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에 따르면,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4당 대표들은 이 같은 내용의 추경안에 합의했다.

◇ ‘지금 상황은 애국이냐 이적이냐 둘 뿐’

핵심 동력은 국민의 ‘반일감정’과 ‘애국심’이다. 일본 정부는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지만, 우리 측은 강제징용 판결 등 역사문제가 규제확대와 직접 관련이 있다고 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일본이 과거사 문제를 경제 문제와 연계시킨 것은 양국 관계 발전의 역사에 역행하는, 대단히 현명하지 못한 처사”라고 지적한 바 있다. 국민들은 너도나도 일본제품 불매운동에 동참했고, 일본 여행업계에 타격이 예상된다는 일본 측 반응이 조금씩 나오고 있다.

청와대 핵심 참모와 정치권에서도 ‘애국심’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조국 민정수석은 1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대한민국의 의사와 무관하게 경제전쟁이 발발했다”며 “이런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진보냐 보수냐, 좌냐 우냐가 아니라 애국이냐 이적이냐다”라고 적었다.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는 문 대통령과 회동 당시 “여의도에는 정쟁이 있지만 이 자리에는 애국이냐 매국이냐 두 개만 있다고”했다.

민주노총과 전농 등 시민단체들이 아베 총리와 일본정부를 규탄하는 20일 촛불집회 참여를 호소하고 있다. /뉴시스
민주노총과 전농 등 시민단체들이 아베 총리와 일본정부를 규탄하는 20일 촛불집회 참여를 호소하고 있다. /뉴시스

진보 시민단체 중심으로 집단적 움직임도 예상되고 있다. 민주노총과 전국농민회총연합 등 80개 단체가 참여하는 민중공동행동은 오는 20일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 정부를 규탄하는 촛불집회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박석운 민중공동행동 대표는 “촛불항쟁 때 민주시민들이 떨쳐 일어났듯, 아베 일당의 부당한 경제 보복과 평화 위협에 맞서 함께 투장하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 “일본이 반인도적 불법행위로 국제법 위반“

‘애국’을 중요한 가치로 삼고 있는 보수 진영의 입지는 다소 줄어들게 됐다. 정부와 코드를 맞추는 것이 달갑지 않지만, 마냥 반대할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단독회동을 고집하던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끝내 ‘대통령과 5당 대표 회동’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이미 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한국당 일부 인사를 가리켜 ‘토착왜구’라고 규정해 비난을 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일본을 겨냥한 우리 정부의 강경한 입장은 당분간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김현종 청와대 안보실 2차장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우리 대법원은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이 강제징용자들에 대한 반인도적 범죄 및 인권침해를 포함하지 않았다고 판결을 내렸으며 민주국가로서 한국은 이러한 판결을 무시할 수도, 폐기할 수도 없다”며 “강제징용이라는 반인도적 불법 행위를 통해 국제법을 위반한 것은 바로 일본”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일본 측은 수출 규제 조치를 취하면서 이의 근거로 당초 과거사 문제로 인한 신뢰 저해를 언급했다가 이후 수출 관리상의 부적절한 사안이 발생했다고 했고, 오늘은 또 다시 강제징용 문제를 거론했다. 일 측의 입장이 과연 무엇인지 상당히 혼란스럽다”며 “일 측은 부당한 수출 규제 조치를 철회하고, 상황을 추가적으로 악화시키는 발언과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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