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격한 체급 차이를 보이는 유니클로와 무신사가 최근 보여준 위기 대처 능력이 업계에서 회자되고 있다. / 각 사
현격한 체급 차이를 보이는 유니클로와 무신사가 최근 보여준 위기 대처 능력이 업계에서 회자되고 있다. / 각 사

시사위크=범찬희 기자  SPA를 넘어 국내 의류 시장 절대 강자로 군림하고 있는 유니클로가 위상에 걸맞지 않은 위기 대처 능력으로 제 살을 깎아먹고 있다. 한국의 일본 제품 불매운동을 폄하한 일본 본사 임원의 발언에 대해 어정쩡한 태도를 보이다 거센 역풍을 맞고 있다.

◇ 호미로 막을 일에 가래 꺼내 든 의류공룡

요즘 유통업계에서는 유니클로를 두고 ‘인터넷 쇼핑몰 보다 못하다’는 말이 오가고 있다. 경제대국 일본을 대표하는 의류업체이자 국내서 1조 매출이 넘는 의류공룡 유니클로의 위기 대처 능력이 이제 막 연매출 1,000억원을 넘은 인터넷 편집숍 보다 떨어진다는 뼈아픈 말이 회자되고 있다.

최근 큰 파장을 낳은 일본 본사 임원의 부적절한 발언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유니클로의 대처를 보고 있노라면 글로벌 의류기업이라는 명성이 무색하게 다가온다. 호미로 막을 일에 결국 가래를 꺼내 들고야 마는 전형적인 아마추어리즘을 보여주고 있다.

유니클로 일본 본사인 패스트리테일링 최고재무책임자(CFO)가 ‘한국의 불매운동이 오래가지 않을 것’이란 취지의 발언을 한 지 5일 만인 지난 16일, 유니클로가 사과의 뜻을 밝혔다며 국낸 언론이 보도하기 시작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 (유니클로가) 할 수 있는 노력을 묵묵히 해나가겠다는 취지의 내용이 부족한 표현으로 잘못 전달됐다”는 게 유니클로가 언론사에 전달한 문장의 요지다.

하지만 유니클로의 사과문을 두고 설왕설래가 오갔다. 보통 기업체 사과문은 출입 기자들에게 일괄 배포되기 마련인데 이번의 경우엔 일부 매체에만 전송이 이뤄졌다. 사정을 파악해보니 이번 사태에 관해 사과 입장을 묻는 기자에게만 자료가 전달된 것이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사과문의 ‘출처’를 두고도 뒷말이 오갔다. 한국 유니클로에서는 물론 일본 유니클로 홈페이지나 SNS 등 어디서도 관련 내용이 보이지 않자 ‘일본 유니클로의 공식 입장이 맞느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이에 대해 한국 유니클로인 FRL코리아를 대신해 뒷일을 책임지기 바쁜 홍보대행사 측은 ‘일본 본사의 공식 입장이 맞다’는 답을 내놓으며 또 한 번 수고를 해야 했다. 그럼에도 사과의 진전성이 보이지 않는다며 여론이 오히려 악화되자 지난 22일 마침내 FRL코리아 명의로 된 ‘업그레이드 버전’의 사과문이 담당 기자들 앞으로 전달됐다.

◇ 매출 ‘10배’ 유니클로의 아마추어리즘

내용적인 면에서 앞서의 것과 크게 다를 게 없는 두 번째 글에서는 사과문을 일본 패스트리테일링과 한국 유니클로 홈페이지, 공식 SNS, 매장 내 전달할 예정이라고 밝히는 등 여론을 의식한 기색이 역력히 묻어났다. 일선 영업점 매출이 하락하는 등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전면에 등장한 FRL코리아는 “패스트리테일링 그룹과 유니클로는 앞으로도 전 세계 고객님들께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번 유니클로가 보여준 대처는 무신사의 사례와 오버랩된다. 매출액은 물론 인지도와 연혁, 직원수 기업 규모 등에서 골리앗과 다윗과 같은 격차를 보이는 인터넷 편집숍 무신사는 자신들의 실수를 진정성 있는 사과로 용서받는 프로의 모습을 보여줬다. 최근 박종철 열사의 고문치사 사건을 희화한 문구를 홍보에 사용해 물의를 일으킨 무신사는 자사 인스타그램을 통해 전후 사정과 사후 대책을 상세히 공개해 ‘사과의 정석’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무엇보다 여느 대기업에서도 보지 못한 전임직원을 대상으로 근현대사 교육을 실시하도록 해 ‘신박하다’는 반응을 끌어냈다. 논란이 일어난 지 얼마 안 돼 무신사가 마련한 ‘무신사 스니커 대란’ 이벤트는 실시간 검색 순위 상위에 오르며 소비자들로부터 용서를 구했음을 입증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다. 중요한 건 물이 엎질러 진 후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다.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국민 감정을 거스르는 경영인의 언행과 같은 리스크가 터졌을 때 얼마나 진정성 있게 잘못을 시인하고 적절한 대책을 내놓느냐가 갈수록 중요해지는 시대가 되고 있다. 소비자들이 부정 이슈에 죽자고 달려드는 것 같아 보여도 기업들의 진정성을 헤아릴 수 있는 능력은 충분하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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