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러 군용기들의 편대비행 경로 및 영공침해 과정. /국방부-뉴시스
중러 군용기들의 편대비행 경로 및 영공침해 과정. /국방부-뉴시스

시사위크=정계성 기자  러시아 조기경보통제기가 23일 두 차례에 걸쳐 약 7분 간 우리 영공을 침범했다. 외국의 군용기가 우리 영공을 침범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편대비행 중 두 차례나 우리 영공을 넘어왔다는 점에서 의도적 도발일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국방부에 따르면, 중국 H-6 폭격기 두 대가 오전 06시 44분 경 이어도 북서쪽에 진입했으며 이후 대마도 남쪽 일본의 방공식별구역을 통과해 동해까지 이동했다. 이후 북진을 해서 NLL 북방에서 러시아 폭격기 투폴레프 95 2대 합류했는데, 이 시각이 08시 33분 경이다. 중러 4대의 폭격기는 09시 4분 경 울릉도와 독도 사이를 편대비행으로 통과했다.

특히 09시 9분에는 러시아의 A-50 조기경보통제기가 독도 동쪽에서 진입해 독도 인근 영공을 침범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독도를 거쳐 남향으로 내려가던 조기경보통제기는 기수를 북쪽으로 돌려 2차로 우리의 독도 영공을 침범하고 09시 56분 우리 방공식별구역(KADIZ, 카디즈)을 이탈해 러시아 방향으로 돌아갔다. 무단으로 카디즈를 침범한 것도 외교적 문제의 소지가 있지만, 영공을 침범한 것은 차원이 다른 심각한 사안으로 번질 수 있다.

우리 군도 상황을 심각하게 보고 단계적 절차에 따라 경고방송과 차단비행, 경고사격까지 진행했다. 1차 80발, 2차 260발 등 총 360발의 경고사격을 했다고 국방부가 밝혔는데, 외국 군용기에 대한 경고사격은 이번이 처음이다. 러시아 군용기가 경고사격을 무시하고 두 차례나 침범했다는 점에서 의도적 도발로 해석된다.

그간 중국과 러시아는 미국의 인도·태평양 안보전략에 공동으로 대응해왔으며, 이번 합동훈련을 통해 실제적인 모습을 보여주려 했을 공산이 크다. 또한 한일관계의 약한 고리 중 하나인 독도를 겨냥함으로써 한미일의 공동대응 수준을 살펴보는 고도의 계산된 전략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일본은 독도를 자국 영토라고 주장하며 “자위대 전투기 편대를 긴급 발진시켰다"고 밝혔는데 우리 외교부는 “독도는 역사적·지리적·국제법적으로 명백한 우리의 고유영토”라며 일본 측의 주장을 일축했다.

청와대는 중국과 러시아 당국에 강력하게 항의했다. 주한 중국대사 및 러시아대사 대리를 초치해 영공 침범에 대해 강력 항의했으며,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은 파트루셰프 러시아 연방안보회의 서기에게 “이런 행위가 되풀이될 경우 훨씬 더 강력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다만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의도를 가지고 한 것인지, 아니면 조종사의 실수인 것인지 등에 대해 파악이 먼저 선행되어야 될 것”이라며 상황을 악화시키지 않고 관리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중국과 러시아는 우리 측 항의를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다. 영공을 침범하진 않은 중국 측은 외교부 대변인을 통해 “ADIZ는 영공이 아니며, 각국은 국제법상 상공비행의 자유를 누린다는 분명한 원칙이 있다”고 했다. 블룸버그 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러시아 측은 자국 군용기가 오히려 한국의 전투기로부터 위협을 당했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당사국 중 하나로 볼 수 있는 북한은 이번 사건에 대해 별다른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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