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사이 국가운명을 건 외교전쟁이 진행되고 있다.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사이 국가운명을 건 외교전쟁이 진행되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정계성 기자  일본 정부가 오는 8월 2일 각의에서 한국을 이른바 ‘화이트 리스트’ 국가에서 제외하는 개정안을 처리할 것이라는 일본 언론의 보도가 나왔다. 보도대로 진행된다면, 숙려기간도 거치지 않은 속전속결 결정이 된다. 우리 측이 대응책을 마련할 시간을 주지 않고 강하게 밀어붙이겠다는 아베 총리의 전략으로 풀이된다.

26일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다음 달 2일 각의에서 한국을 화이트 리스트에서 빼는 내용의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상정하는 방안을 조율 중”이라고 보도했다. 일본의 정례 각의는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개최되는데, 현재 휴가 중인 아베 총리가 복귀하자마자 각의에 상정해 처리하겠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숙려기간’도 거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아베 총리와 일본 정부의 무역규제에 대한 강경한 입장을 읽을 수 있다.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일본은 시행령 개정에 대해 입법예고 및 의견수렴 후 검토시간인 ‘숙려기간’을 둘 수 있다. 최대 14일까지이며 사안에 따라 30일이 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숙려기간은 강제조항이 아니어서 얼마든지 당국자의 의지에 따라 ‘생략’도 가능하다.

‘화이트 리스트’에서 제외될 경우, 군사목적으로 전용이 가능한 모든 물자의 한국 수출에 대해 개별 허가절차를 밟아야 한다. 정부가 여기에 해당될 수 있는 품목에 대해 리스트를 정리 중인데, 대략 1,000여 개 이상이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개별 통관절차에 소요되는 기간은 빠르면 4주에서 늦어질 경우 최대 90일까지 늘어날 수 있다. 우리 기업들의 부품·소재·장비 수급이 사실상 일본 정부의 손아귀에 놓여지는 셈이다.

다만 확정된 것은 아직 없다. 내달 2일 각의 상정 및 통과 여부도 불투명하며, 설사 통과가 되더라도 모든 품목에 엄격한 규제의 잣대를 적용할 것인지도 현재로써는 알 수 없다. 애당초 화이트 리스트에 포함되지 않은 중국과 대만 등의 국가들도 일본에서 부품·소재·장비를 수입해 왔는데, 수급에 큰 문제는 없었다. 화이트 리스트에서 제외된다고 하더라도 그 자체로 부품수급이 원천봉쇄되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우리 정부는 예상가능한 모든 시나리오를 상정해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 당연하게도 구체적인 내용을 공개하진 않았다. 상대가 있는 전략게임에서 우리 측의 패를 노출하는 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 역시 우리 정부의 태도와 입장을 살펴보며 자신들의 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한 전략을 고민하고 있다. 물론 전략적 결정은 상황에 따라 순간적으로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이와 관련해 한일 양국의 전략적 결정이 내려질 주요 포인트는 크게 세 개로 요약된다. 첫 번째 분기점은 8월 15일이다. 광복절은 우리는 물론이고 일본에게도 매우 중요한 날이다. 양국 정상들이 어떠한 메시지를 내고 어떠한 행동을 하느냐에 따라 이후 방향과 입장이 달라질 수 있다. 둘째는 참의원 선거를 끝낸 아베 총리의 개각이다. 예상되는 시점은 8월 말에서 9월 초다. 마지막은 10월 22일 예정된 새 일왕 즉위식이다. 일본 입장에서는 반세기 만에 맞는 정치 이벤트로 전략변화가 이뤄질 포인트가 될 수 있다.

전략은 다양하고 또 달라질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문재인 대통령과 우리 정부가 목표하는 바를 이뤄내는 것이다. 위안부·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수용할 수 있는 방법으로 배상이 이뤄지고, 우리 기업들이 무역규제로 인해 실질적 피해를 입지 않는 것이 궁극적 목표임은 분명하다. 따라서 지금 문재인 정부의 외교적 성패나 순간적 판단의 적절성을 따지는 것 보다, 차분히 결과를 지켜봐야할 시점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