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겸 칼럼니스트
하도겸 칼럼니스트

4세기 중반~5세기 전반의 벽화는 안악3호분과 덕흥리벽화고분처럼 무덤주인의 초상화와 공적·사적 일상이 주를 이룬다. 생활풍속도에는 무덤주인의 일생 중 기념비적인 일이 등장하고 풍요로운 생활상이 묘사되기도 하였다. 내세에도 생전의 삶과 명예가 재현되고 후손들에게도 영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던 같다. 고분의 구조는 방이 여러 개인 다실(多室) 구조이다. 돌기둥을 세우거나 나무기둥을 그려 넣어 내부를 마치 가옥처럼 꾸미기도 했다. 357년에 조성된 안악3호분은 연대가 밝혀진 고구려 벽화고분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통구나 평양과 같은 수도권이 아닌, 그보다 남쪽인 황해도 안악 지역에 위치해 있는 전형적인 초기 고구려 벽화고분의 유형이다. 시신이 놓인 널방과 제사를 지내는 사이에 네 개의 돌기둥을 설치함으로써 공간을 구분 지었다. 팔각형기둥, 배흘림기둥 등 목조 건물의 구조를 돌로 재현했다. 한국미술사를 대표할 삼국 시대 문화유산 가운데 하나인 고구려 고분벽화는 삼국 중 동북아시아 강대국으로 우뚝 선 고구려인의 기상과 용맹함을 잘 보여준다.

4세기 중반에서 7세기 중반까지, 약 300년간 통구와 평양, 안악 지역에 조성된 고구려 벽화고분은 묘실 내부 구조와 벽화 내용에 따라 크게 세 시기로 나뉜다. 고구려가 융성했던 4세기 중반~5세기 전반에는 다실 구조에 무덤주인 초상화와 생활상이 벽화의 중심을 이룬다. 5세기 중반~6세기 전반에는 양실이나 단실 구 조에 인물풍속도가 크게 유행하며, 사신도가 함께 등장한 사례도 있다. 6세기 중 반~7세기 전반, 고구려 후기에는 단실 구조의 묘실에 사신도로 주제가 압축된다. 고분에 따라 다르지만 전 시기에 걸쳐 천장에는 해·달·별자리를 중심으로 하늘과 우주의 상상세계를 펼쳐놓았다. 여기에는 불교와 도교 등 고구려인의 신앙이 표출되어 있다. 그 외에도 벽화에 다양한 장식 문양들을 화려하게 치장했다.

강서중묘 남벽의 주작도에도 화려한 빨강을 과감히 사용했다. 양 날개를 펴고 막 비상하려는 주작의 날개와 몸은 적갈색·홍시색·노란색을 나란히 칠했다. 마치 혜원 신윤복의 <단오풍정>에 등장하는 빨간 치마와 노란 저고리를 입은 여인의 옷 색깔 같다.

사진은 미술사학자 이태호 교수와 함께 하는 고구려 벽화 기행 관련 강좌 안내 포스터다. / 하도겸 칼럼니스트 제공
사진은 미술사학자 이태호 교수와 함께 하는 고구려 벽화 기행 관련 강좌 안내 포스터다. / 하도겸 칼럼니스트 제공

고구려 고분벽화의 색채 감각은 발해 벽화고분, 고려의 불화, 조선 시대의 불화, 조선 시대의 불화 및 궁중화, 민화 장식화, 무속화나 무당의 의상 등으로 계승되었다. 이 민족적 색채 감각이 2002년 월드컵에도 등장해 깜짝 놀랐다. 경기장의 초록색 잔디밭 주변을 에워싼 붉은 악마의 색 조화를 보며 고구려의 색이 다시 우리 시대에 태어났다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였다. 고구려 고분벽화는 무덤 안에서 막을 내렸지만, 미적 정서와 색채 감각은 한국 문화사 속에 연연히 이어졌음을 확인시켜줘 반가웠다고 미술사학자 이태호 교수는 전한다.

고구려인의 문화와 예술이 고스란히 담긴, 대담한 기개와 세련된 감각이 집합된 고구려 고분벽화를 직접 사진으로 담아온 이태호 교수의 생생한 강연을 오는 10월 무우수 아카데미 특강에서 만날 수 있다. 강좌와 더불어 이태호 교수와 고구려의 역사와 고분군, 백두산을 탐방하는 답사도 함께 진행한다고 하니 기회가 되면 꼭 참가할 수 있으면 좋겠다.

한편 미술사학자 이태호 현 서울산수연구소 소장은 홍익대학교 회화과 및 동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 졸업한 후 국립중앙박물관 국립광주박물관 학예연구사로 큐레이터의 길을 시작했다. 이후 전남대학교 교수 겸 전남대 박물관장, 명지대학교 미술사학과 교수, 문화재위원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2019 이야기 한국미술사(주먹도끼부터 스마트폰까지), 마로니에북스 △2013 북한의 문화유산 연구, 양사재(공저) △2004 대고구려역사 중국에는 없다, 예문당(공저) △1995 고구려 고분벽화, 풀빛(공저) 등 수십권이 있다.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