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은 최근 주 36시간 이상 일자리 기준으로 환산한 취업자수는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는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한국경제연구원 보도자료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은 최근 주 36시간 이상 일자리 기준으로 환산한 취업자수는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는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한국경제연구원 보도자료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주 36시간 이상 일자리를 기준으로 환산한 취업자수는 2017년 대비 20만7,000명이 감소했으며, 주 36시간 이상의 양질의 일자리를 만드는 것에 좀 더 힘을 쏟아야 한다.”

이달 초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이 박기성 성신여대 교수에게 의뢰해 분석한 자료를 발표하며 언급한 내용이다. 골자는 이렇다. 2017년 대비 33만명 증가한 것으로 나타난 정부 공식 취업자수 집계와 달리, 주 36시간 이상 일자리를 기준으로 환산한 취업자수는 20만명 이상 감소했으며, 이는 질 나쁜 일자리만 증가했고 양질의 일자리는 오히려 줄어들었다는 점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한경연의 발표를 보도한 주요 매체들의 논조도 대부분 같았다. 질 나쁜 일자리만 늘어났을 뿐이라며 취업자수 증가의 의미를 깎아내렸고, 그 배경으로 최저임금 상승, 단기 일자리 촉진, 근로시간 단축 등 문재인 정부의 주요 정책을 지목했다.

이에 대해 고용노동부 및 일부 학계에서는 근거 자료로 제시된 ‘주 36시간 이상 일자리 기준 환산 취업자수’의 계산법부터 잘못됐다고 지적하며 반박에 나섰다. 다만, 전체 취업자수에서 주 36시간 미만 단기근로자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점은 다른 통계를 통해서도 확인되는 부분이다.

그렇다면, 이 같은 단기근로자 비중 증가를 정말 양질의 일자리 감소 및 질 나쁜 일자리 증가로 해석할 수 있을까.

왼쪽은 각 년도 5월의 제조업 부문과 보건업 및 사회복지서비스업 부문의 취업자수 변화 추이를 나타낸 표. 오른쪽은 각 년도 5월의 여성과 60세 이상 고령자의 고용률 변화 추이를 나타낸 표다. 서비스업 부문 취업자수와 여성 및 고령 취업자수의 증가세는 단기근로자 비중 증가와 같은 흐름을 보이고 있다. /시사위크
왼쪽은 각 년도 5월의 제조업 부문과 보건업 및 사회복지서비스업 부문의 취업자수 변화 추이를 나타낸 표. 오른쪽은 각 년도 5월의 여성과 60세 이상 고령자의 고용률 변화 추이를 나타낸 표다. 서비스업 부문 취업자수와 여성 및 고령 취업자수의 증가세는 단기근로자 비중 증가와 같은 흐름을 보이고 있다. /시사위크

◇ 단기근로자 증가, 주된 요인은 산업구조 변화와 여성·고령자 사회 진출 확대

먼저, 주 36시간 미만 단기근로자의 비중이 증가하고 있는 원인을 살펴보자. 원인은 크게 두 가지 측면에 있다. 첫 번째는 전반적인 산업구조의 변화다. 최근 수년간 국내 산업계에서는 제조업의 하락세와 서비스업의 상승세가 뚜렷하게 나타났다. 조선업 등 제조업은 전반적인 위기 속에 대규모 구조조정이 일어난 반면, 각종 서비스업은 성장세가 이어지고 있다.

이는 통계적으로도 확인된다. 정부가 집계한 제조업 부문 취업자수는 2017년 5월 458만6,000명에서 2019년 5월 443만4,000명으로 15만2,000명 감소했다. 반면, 보건업 및 사회복지 서비스업 부문 취업자수는 같은 기간 193만8,000명에서 220만1,000명으로 26만3,000명이나 증가했다. 예술·스포츠 및 여가관련 서비스업 부문 취업자수도 같은 기간 42만3,000명에서 48만3,000명으로 증가했다. 이 같은 추세는 한경연이 제시한 계산법을 통해서도 마찬가지로 확인된다.

이러한 산업구조적 변화는 단기근로자 비중 증가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중요한 요인이다. 전통적으로 제조업은 근로시간이 긴 산업이다. 반면, 서비스업은 비교적 근무시간이 길지 않은 산업에 해당한다.

하지만 제조업 일자리가 서비스업 일자리보다 더 질이 좋다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 오히려 워라밸 등을 강조하는 시대적 변화와 함께 제조업보다 서비스업을 선호하는 측면이 크다. 또한 이 같은 변화는 사회와 산업의 발전 및 변화에 따른 자연스런 현상이기도 하다. 많은 이들이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던 1970~80년대의 모습이 이제는 과거가 됐듯 말이다.

두 번째 변화는 여성 및 고령자의 경제활동참여가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통계청이 조사한 2019년 5월 여성고용률은 58.1%다. 매년 5월을 기준으로 비교해보면, 2010년 53.7%였던 것이 2015년 56.0%, 2016년 56.4%, 2017년 57.1%, 2018년 57.5% 등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여성취업자수도 2010년 1,000만명을 넘기지 못하던 것이 매년 꾸준히 증가해 지난해 1,145만명에 이르렀다.

60세 이상 고용률 역시 같은 추세다. 이전에는 30%대에 머물던 것이 2016년 40.9%, 2017년 41.5%, 2018년 41.7%, 2019년 42.8%(매년 5월 기준)로 증가세가 뚜렷하다. 2011년 300만명에 미치지 못하던 60세 이상 취업자수도 지난해 432만4,000명으로 증가했다.

이는 인구구조적 변화와 함께 과거엔 소외됐던 여성 및 고령자의 경제활동참여가 활발해지고 있기 때문으로 해석할 수 있다. 아울러 여성 및 고령자의 경우 단시간근로를 선호하는 측면이 커 단기근로자 증가에도 상당한 영향을 주게 된다.

여성 및 고령자의 경제활동참여 확대에 따른 단기근로자 증가를 질 나쁜 일자리 확산으로 볼 수 있을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오히려 여러 제약으로 인해 경제활동참여가 어려웠던 이들의 참여 확대는 그만큼 우리 사회가 건강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최저임금의 인상도 여성 및 고령자의 경제활동참여 확대를 이끈 주요 요인으로 해석 가능하다. 과거엔 애초에 기대임금이 낮아 경제활동을 포기했던 이들이, 단기근로에도 일정 수준 이상의 임금을 기대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워라밸을 강조하는 문화의 확산과 저출산 관련 정책 확대 역시 단기근로자의 비중을 늘리는 데 일조하고 있다. /뉴시스
워라밸을 강조하는 문화의 확산과 저출산 관련 정책 확대 역시 단기근로자의 비중을 늘리는 데 일조하고 있다. /뉴시스

◇ 반드시 오래 일해야 좋은 일자리일까?

자발적 시간제 일자리 비중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은 이러한 해석을 뒷받침하는 통계 자료 중 하나다. 자발적 시간에 일자리 비중은 2011년 44.6%에서 2014년 47.7%, 2017년 50.2%, 2018년 52.1%로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특히 여성의 자발적 시간제 비중은 2011년 47.8%에서 2014년 49.8%, 2017년 53.2%, 2018년 56.0%로 상승세가 더 가파르다. 이는 전체 시간제 일자리 근로자 중 절반을 훌쩍 넘는 이들이 자발적으로 시간제 일자리를 선택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밖에도 심각한 저출산문제로 인해 출산·육아관련 정책이 강화되고 있고, 일·생활 균형 문화가 확산되고 있는 점 역시 단기근로자 비중을 높이는 요인으로 꼽힌다.

유연근무제를 활용하고 있는 이들의 숫자는 2015년 90만2,000명에서 2018년 167만5,000명으로 눈에 띄게 증가했다. 특히 유연근무제 활용 형태 중 근로시간 단축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5년 0.4%에서 2018년 15.1%까지 증가한 상태다.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이용자수 역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2017년 2,821명이었던 것이 2018년엔 3,820명으로 늘었다.

유연근무제 및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이용자가 반드시 단기근로자 집계에 포함되는 것은 아니라는 게 고용노동부 측 설명이다. 다만, 이들로 인한 대체인력 충원 등 단기근로자 비중 증가에 영향을 줄 소지가 상당한 것은 분명하다.

물론 단기근로자 모두가 양질의 일자리를 누리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들 중엔 고용시장 문제를 비롯한 여러 가지 이유로 원치 않게 단기근로자가 된 이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주 36시간 미만 단기근로자의 비중이 증가했다고 해서, 혹은 주 36시간 이상 일하는 사람이 줄어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양질의 일자리는 줄어들었고 질 나쁜 일자리만 늘어났다고 보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다.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 A씨(여)는 두 아이의 엄마다. 오전 7시 30분에 출근해 오후 1시에 퇴근하며 일과 육아를 병행하고 있다. 커피 프랜차이즈 직원인 B씨(여)는 얼마 전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하며 하루 4시간만 근무하는 단축근로 제도를 1년간 이용하기로 했다. 보디빌더 대회를 준비하며 헬스 트레이너로 활동하고 있는 C씨(남)는 주 5일, 하루 6시간만 일한다. 남는 시간은 자신을 위해 쓰는 한편, 블로그를 운영하며 부수익을 얻고 있다. 60대 여성 D씨(여)는 평소 아이를 무척 좋아하는 점을 활용해, 현재 하원도우미로 일하고 있다. 하루 3시간만 일하며 얻은 수익을 취미활동에 보탠다.

모두 10년 전, 아니 5년 전만 해도 결코 흔치 않은 모습이었다. 이들의 주당 근로시간은 모두 36시간에 미치지 않는다. 하지만 이들이 질 나쁜 일자리로 고통 받고 있다고 보긴 어렵다. 오히려 그 반대다. 더 나은 삶의 질을 누리고 있다.

한경연은 해당 분석 결과를 발표하며 단순히 취업자수만 살필 것이 아니라 일자리의 질과 관련된 지표도 함께 고려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면 일리가 있는 지적이다. 모든 통계엔 보이지 않는 맹점이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대안으로 제시한 지표 또한 양질 혹은 질 나쁜 일자리를 나타낸다고 보기 어렵다. 단순히 주 36시간을 기준으로 일자리의 질을 평가하기엔 우리 사회가 무척 다원화돼있다. 자신들이 지적한 것과 마찬가지로 통계의 맹점만 드러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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