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8-26 13:52 (월)
[하도겸의 문예노트] 나랏말싸미: 역사왜곡이나 세종 폄하도 없었으며 불교 영화도 아니다
[하도겸의 문예노트] 나랏말싸미: 역사왜곡이나 세종 폄하도 없었으며 불교 영화도 아니다
  • 시사위크
  • 승인 2019.08.02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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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도겸 칼럼니스트
하도겸 칼럼니스트

중복을 지난 여름. 학생들은 방학이며 여름휴가로 극장가에서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시장을 겨냥해 영화 나랏말싸미가 개봉되었다. 그러나 역사 왜곡 논란 등 악재에 시달리면서 극장에서 내려질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떨고 있다고 한다.

'나랏말싸미'의 내용은 세종과 집현전 학자들이 훈민정음을 창제했다는 정설을 깨고 승려인 신미가 많은 역할을 했다는 학계의 소수설을 바탕으로 한 역사를 기반으로 한 영화로 결국 사실에 바탕을 한 허구가 된다. 그런데 역사왜곡이라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같은 왜곡 논란에 휩싸였던 ‘왕의 남자’나 ‘광해’가 대박이 난 것과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최근에는 청와대 게시판에는 영화의 상영과 해외 보급을 금지해 달라는 청원까지 게재됐다.

역사왜곡설과 함께 세종이라는 절대선을 건드렸다는 주장도 제기 되었다. 영화는 표현의 자유를 보장 받는 ‘허구’로 일각에서 제기된 세종대왕을 폄훼하고 모독했다는 주장은 일방적이며 주관적인 주장으로 충분한 근거가 제시되지 않은듯하다. 어쩌면 이런 의혹 제기야말로 역사 ‘왜곡’의 경계를 빙자하여 ‘예술’을 모욕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역사적 위인에 대한 다양한 평가와 해석이 담긴 영화에 작더라도 역사적인 ‘근거’가 제시되었다면 영화속에서 연출된 그 어떤 다양한 상상력도 용인되어야 한다. 물론 아무리 넌픽션이라고 해도 "영화는 영화일 뿐"이진 않다. 사회적 파급력 등의 영향력을 고려한다면 ‘우려’를 표시할 수는 있다. 그렇다고 해서 감독의 영화에 다수파가 주장하는 진실을 가장한 ‘대세’의 잣대를 날카로운 칼날처럼 들이대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

영화 나랏말싸미 포스터
영화 나랏말싸미 포스터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며 세종조의 기록은 유학자들의 전유물이었다. 당시는 억불이 강화된 당시에 세종대왕은 종교적 균형감각을 가질 수 있다. 특히 한글창제 이후에 나온 수많은 불교서적 즉 불서 언해본의 존재는 ‘신미’대사의 존재를 상정하는게 무리한 것이 아님을 알게 해준다. 유학만으로는 풀리지 않은 훈민정음 창제의 수수께끼에 대해 소수설을 중심으로 한 고증을 바탕으로 새로운 해석을 한 것이야 말로 보다 역사적인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거꾸로 우리는 이 영화가 한국사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연 것이라 평가할 수 있다.

세종대왕에 대한 폄하 역시 근거가 미약하다. 왕은 신하가 아닌 백성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며 세종 혼자서 ‘한글’을 창조한 슈퍼맨 식으로 위상을 정립해서는 안된다. 특히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 즉 애민정신이 세종대왕께는 가장 큰 치적이 아닐 수 없다. 세종의 인간적인 고뇌와 신하들과의 갈등 등이 잘 담긴 이 영화는 우리 겨레의 위대하고도 빛나는 문화유산인 훈민정음에 대한 역사적 관심을 제고하게 해준다.

영화속 세종대왕으로 분한 송강호가 말했듯이 “공자가 부처를 만났어도 이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라는 말이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세종과 버금가는 신미대사의 활약상이 보이며 불교 사찰의 장엄한 모습이 나왔다고 해서 이를 불교적이라고 간주하고 영화불매운동을 벌이는 하는 집단이 있다면 이는 종교를 넘어 영화 나아가 문화융성기를 많은 우리 문화의 미래를 해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화는 “중들 뒤끝도 참 만만치 않네....”라는 승려들에 대한 희화적 표현을 통해서 관람객에게는 종교를 넘은 역사의 흥미로운 세계로 안내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얼마전 작고한 명품 배우 전미선씨의 훌륭한 연기를 마지막으로 볼 수 있어 너무 좋았다. 누구나 선입견이나 편견 등의 고정관념을 떨치고 극장을 찾는다면, 세종대왕과 신미대사, 나아가 소현왕후를 분장한 송강호, 박해일, 전미선이 안내하는 훈민창제의 현장을 편안하게 방문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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