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갈등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가운데, 한국조선해양의 대우조선해양 인수·합병 기업결함 심사에서 일본이 주요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뉴시스
한일갈등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가운데, 한국조선해양의 대우조선해양 인수·합병 기업결함 심사에서 일본이 주요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한국과 일본의 ‘경제전쟁’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수출규제에 이어 백색국가 제외 조치를 내리는 등 일본의 공세가 이어진 가운데, 한국 정부 역시 강경대응을 천명한 상태다. 강대강 대치와 대응이 대응을 낳는 상황이 이어지면서 양국 관계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이 같은 한일관계 악화는 국내 산업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수출규제의 타깃이 된 반도체산업을 비롯해 다양한 산업군이 백색국가 제외 여파를 피할 수 없게 됐다. 정부와 산업계 차원에서 주요 소재 및 기술에 대한 국산화 움직임이 분주하지만, 일정 부분 타격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렇듯 한일관계 악화가 국내 산업계의 최대 변수로 떠오른 가운데, 또 다른 지점에서도 묘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바로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인수·합병이다.

국내 조선업계의 대대적 변화로 여겨지는 한국조선해양(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해양 인수는 이미 국내에서 적잖은 진통을 치른 바 있다. 인수·합병 및 지배구조 개편에 대해 노동계와 지역사회, 정치권 등이 강하게 반발했고, 특히 노조와의 갈등은 주주총회 무효소송과 대규모 징계 및 수십억대 손해배상 청구로 이어지기도 했다.

이처럼 극심한 진통을 거친 한국조선해양의 대우조선해양 인수는 일단 중요한 절차를 일부 처리한 뒤 잠시 숨고르기에 들어간 상태다. 노조와 지역사회의 원천봉쇄 속에 현장실사는 실시하지 못했지만, 주총 장소를 변경하는 등의 소동 끝에 물적분할 안건을 처리해 한국조선해양을 공식 출범시키는 등 지배구조 개편의 기반은 마련해놓았다.

이후 한국조선해양은 인수·합병의 핵심 절차 중 하나인 기업결합 심사로 발걸음을 돌렸다. 원유운반선 및 LPG운반선 시장에서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합산 점유율은 절반을 훌쩍 넘는다. 때문에 각국에서 기업결합 심사를 통과해야 인수·합병에 최종 마침표를 찍을 수 있다.

이에 한국조선해양은 7월 초 우리나라를 비롯해 유럽연합과 일본, 중국, 카자흐스탄을 1차 심사 대상국으로 확정한 뒤 공정거래위원회와 중국 당국에 기업결합 신고서를 제출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한일관계가 급속도로 악화되자 일본에서의 기업결합 심사가 난항을 겪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일본은 당초 기업결합 심사의 큰 변수로 여겨지지 않았으나, 한일갈등과 함께 가장 큰 변수로 떠오르게 됐다.

물론 현재로선 일본 측이 기업결합 심사에 제동을 걸 가능성이 낮다는 전망에 힘이 실린다. 기업결합 심사가 한일갈등의 연장선상으로 여겨질 소지가 낮고, 현재 시장상황을 고려했을 때 일본의 자충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일본 당국이 기업결합 심사를 승인하지 않아 일본 선박 수주가 불가능해지더라도 한국조선해양엔 큰 타격이 없다. 오히려 LNG운반선 발주 물량 중 일부를 한국에 의존하고 있던 일본의 입장이 난처해지는 측면이 더 크다.

이와 관련해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30일 관련부처와의 협의 내용이 담긴 참고자료를 통해 “기업결합 심사에 대해서는 일본 경쟁당국이 법령과 절차에 따라 공정하게 심사할 것으로 예상한다”며 낙관적인 시각을 보인 바 있다.

하지만 마냥 안심할 수 없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우선 현재 한일관계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만큼, 어떤 변수도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일본이 우리 대법원의 판결에 맞서 ‘경제보복’에 나선 것처럼,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부문으로도 얼마든지 불똥이 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는 일본의 비토가 자칫 다른 국가에서의 기업결함 심사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로도 이어진다.

기업결합 심사에 제동을 걸지 않더라도 최소한 시간을 끄는 등의 비협조적 태도가 충분히 가능하다는 지적은 현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상당해 보인다.

특히 과거 일본 정부의 행보 및 업계 주요 인물의 발언은 이 같은 우려를 키우는 요인이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대우조선해양에 대해 공적자금 투입이 이뤄지자 WTO 제소 방침을 밝힌 바 있다. 또한 사이토 다모쓰 일본조선공업회 회장은 지난 6월 취임 기자회견에서 “압도적 조선그룹이 탄생하는 것은 매우 위협적이며 각국 당국이 합병을 그냥 지켜보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한편, 기업결합 심사엔 통상 4개월 정도가 소요되며, 길게는 6개월 이상 걸릴 수도 있다. 한국조선해양 측은 각국 일정에 맞춰 심사에 임하겠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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