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9-20 18:45 (금)
[김재필 '에세이'] H에게- 시로 마음을 달래야 하는 이유
[김재필 '에세이'] H에게- 시로 마음을 달래야 하는 이유
  • 시사위크
  • 승인 2019.08.16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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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필자: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몇 번 고백했듯이 난 세상이 하수상하고 마음이 심란할 때는 시집을 찾네. 젊었을 때부터 익힌 나만의 마음 달래기 방법이지.“한국의 지도자가 무지해서 한일관계의 모든 것을 파괴한 것에 대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일본 총리에게 진심으로 사죄한다”는 ‘엄마부대’ 대표의 말이 방송에 나오고, 일제의 강제징용 만행을 “식민지배 기간에 많은 젊은이들이 돈을 좇아 조선보다 앞선 일본에 대한 ‘로망’을 자발적으로 실행했을 뿐”이라고 주장하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세상에서 우리는 어쩌다가 살게 되었는지… 아무리 화가 나도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니 좋아하는 시나 읽으면서 마음을 달랠 수밖에. 먼저 오세영 시인의 <원시(遠視)> 을 읽어보세.

멀리 있는 것은 아름답다./ 무지개나 별이나 벼랑에 피는 꽃이나/ 멀리 있는 것은/ 손에 닿을 수 없는 까닭에/ 아름답다./ 사랑하는 사람아,/ 이별을 서러워하지 마라,/ 내 나이의 이별이란 헤어지는 일이 아니라 단지/ 멀어지는 일일 뿐이다./ 네가 보낸 마지막 편지를 읽기 위해선 이제/ 돋보기가 필요한 나이,/ 늙는다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멀리 보낸다는/ 것이다./ 머얼리서 바라볼 줄을/ 안다는 것이다.

원시(遠視)는 망막 뒤쪽에 물체의 상이 맺혀서 먼 곳은 잘 보이나 가까운 곳은 잘 보이지 않는 눈이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이 들면 겪는 자연스런 현상이지. 시인은 멀리 있는 것은 아름답고, 늙는다는 것은 멀리서 바라볼 줄을 아는 것이라고 말하네. 사람이든 사랑이든, 젊었을 때처럼 너무 가까이서 보면 대상에 함몰되어 제대로 볼 수 없지. 노인의 덕목으로 흔히 이야기하는 지혜도 멀리서 차분하게 볼 수 있을 때 나오는 능력이야.

그러면 어떻게 노인들이 멀리서 바라보면서도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는 감성을 계속 유지하거나 새로 계발할 수 있을까? 불행하게도 지속적인 관심과 공부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네. 흔히 노인이 되면 어린애가 된다고 말하지. 난 그 말을 핀잔이 아니라 칭찬으로 받아들이네. 영국 낭만주의 시인 윌리엄 워즈워드가 <무지개>에서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고 한 말을 옳다고 생각하거든. “하늘의 무지개를 볼 때마다/ 내 가슴은 뛰노니,/ 나 어린 시절에 그러했고/ 다 자란 오늘에도 매한가지,/ 늙어서도 가슴이 설레지 않는다면/ 차라리 죽음이 나으리라.”얼마나 멋진 시구인가? 아름다운 것을 보고 가슴이 설레지 않으면 이미 죽은 거나 마찬가지야.

나이 들면, 우리 몸 기관 하나 둘 고장 나는 게 당연하네. 체력, 시력, 청력, 식욕, 정력, 인내력 모두 약해지지. 마음은 청춘이지만 몸이 제대로 따라주지 않아서 못하는 일도 많고. 지금 내가 깊이 빠져 있어서 하는 짧은 생각인지 모르지만, 노인들이 아름다움에 대한 감성을 잃지 않고 유지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되는 취미가 사진 찍기인 것 같네. 가볍고 가격도 저렴한 미러리스 카메라 하나 들고 밖에 나가면 온통 아름다운 것들뿐이거든. 언제든 아름다운 것들을 찾아 전국 방방곡곡 돌아다닐 수도 있고. 그러니 몸은 늙어도 마음은 언제나 청춘일 수밖에.

젊어선 가루歌樓에서 빗소리를 들었지/ 붉은 등불 비단 휘장 어스름했네./ 장년엔 나그네 배 위에서 빗소리를 들었네./ 강은 넓고 구름 낮은데/ 갈바람에 기러기는 우짖어대고./ 지금은 절집에서 빗소리를 듣노니/ 터럭은 어느새 성성해졌네./ 슬픔 기쁨과 만나고 헤어짐에 아무런 느낌 없고/ 그저 섬돌 앞 물시계 소리 새벽 되길 기다릴 뿐.

13세기에 중국 송나라가 망하자 죽산에 들어가 은거했던 죽산선생(竹山先生) 장첩(蔣捷)의 <우미인(虞美人)>이라는 시일세. 죽산선생처럼 새벽 일찍 일어나 책을 보거나 글을 쓰는 나이가 되니 소리의 색깔도 변한다는 걸 알게 되네. 뒤돌아보니 학창 시절 선술집에서 듣던 취중 빗소리는 낭만의 소리였고, 중장년에 전국을 떠돌면서 여곽에서 듣던 빗소리는 가슴 속 저 깊은 곳에서 꿈틀거리던 고통의 신음소리였네. 하지만 이제 빗소리마저도 무심하게, 그냥 마음 없이 듣는 나이가 되었네. 어렸을 적 시골집 마루에 누워서 듣던 낙숫물 소리를 기억하는가? 초가집 처마에서 떨어지던 낙숫물 소리를 듣던 그때 그 느낌으로 다시 빗소리를 듣고 있는 지금의 내가 좋네. 언젠가는 죽산선생처럼 슬픔과 기쁨, 만나고 헤어짐을 아무런 느낌 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날도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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