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종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장.

남북관계가 가파른 대치국면으로 치달으면서 가슴앓이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북녘에 가족을 두고 온 실향민들이다. 지난해 3차례의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남북 대화와 교류의 물꼬가 트이자 재북 가족을 만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에 부풀었던 이들이다.

하지만 북한 김정은의 미사일 도발과 대남비방이 이어지면서 실망감이 커지고 있는 형국이다. 지난 2월 설 명절과 8.15 광복절에 이어 올 추석도 그냥 넘길 공산이 커졌다. 이산상봉이 성사되려면 후보자 선발과 생사확인, 명단교환 등 최소한 1개월에서 2개월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에서다.

이산가족들을 더욱 힘겹게 하는 건 정부 당국이나 대한적십자사 등 유관부처나 기관에서 조차 실향민이 북한의 가족과 만나는 문제에 대해 손을 놓은 듯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대목이다. 역대 정부 모두 틈만 나면 ‘이산가족 문제는 대북정책의 최우선 과제’란 입장을 강조했지만 이젠 옛말이 됐다. 후순위로 밀려나다 못해 아예 관심권 밖으로 밀려나자 이산가족들은 속을 태우고 있다. 이런 식으로 10년 정도 지나게 된다면 사실상 이산가족 1세대가 남아있기 어렵고, 남북 간 이산상봉 상봉 문제도 결국 ‘자연사’ 하게 될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

지난해 4월과 5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정상회담이 잇달아 열릴 때만해도 우리 국민 모두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감에 설레는 모습을 보였다. 북한의 가족과 만나길 학수고대 해온 고령 이산가족의 경우는 말할 나위가 없었다. 특히 4월 첫 판문점 정상회담에서 나온 4.27 선언은 이산가족 문제의 해결을 두 정상이 약속함으로써 돌파구 마련을 위한 첫 발을 땠다는 평가가 나왔다.
 
지난해 8.15 광복절을 게기로 남북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금강산에서 열리자 ‘나도 이제 북한의 가족을 만날 수 있을 것’이란 마음에 실향민들을 밤잠을 설쳐야 했다. 상봉행사에 걸림돌이 될 것으로 점쳐졌던 중국 닝보우 북한식당에서 일하다 탈북·망명(2016년 7월)한 12명의 여종업원 문제도 북한이 그냥 넘겼다. 8월 20일부터 금강산에서 이산상봉이 이뤄졌고 이는 2015년 10월 제20차 상봉행사 이후 2년 10개월 만의 일로 기록됐다.

하지만 이후 모든 기대는 물거품이 됐다. 지난해 8.15 상봉 한 달 뒤 평양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3차 정상회담을 하고 군사합의와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재개 같은 굵직한 합의를 이뤘지만 이산상봉 문제는 진전을 보지 못했다. 올 들어 남북 당국관계가 삐걱거리면서 미사일 도발이 재개됐고 이산상봉 문제는 실종국면에 접어들었다. 아무도 이산가족 상봉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해 추진할 태도를 보이거나 상봉 불발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북한 측에 이를 촉구하는 입장표명이나 메시지도 없었다.

이 같은 상황은 문재인 대통령이 공언하고 통일부를 비롯한 정부 담당부처가 이행을 약속했던 것과는 온도차가 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8월 금강산 상봉이 성사되자 “정기적 상봉행사는 물론 전면적인 생사확인과 화상상봉·상시상봉·서신교환·고향방문 등 상봉 확대방안을 실행 하겠다”고 공언했다.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의 상시 운영 필요성도 언급해 보다 근본적인 해법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통일부도 대통령의 언급이 있은 이튿날 국회 상임위 보고에서 “적십자 회담 등을 통해 전면적 생사확인과 고향방문, 상봉 정례화 등을 북측과 본격 협의 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뿐이었다. 북한의 도발에 대해 잇달아 대수롭지 않은 사안으로 넘기려 애쓰면서도 정작 이산상봉 같은 문제는 관심을 두지 않는 듯한 입장을 보였다. 대북 쌀지원을 추진하면서도 북한에 이산상봉 문제를 꺼내지 않은 게 대표적이다. 정부는 국제기구를 통해 5만 톤의 쌀을 북한에 보낸다는 방침을 세우고 정부 의결과 함께 구체적인 채비를 했다. 하지만 북한이 거부의사를 표명하자 어정쩡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대북지원과 이산상봉은 둘 다 인도주의적 사안으로 간주돼 남북대화 과정에서 둘을 맞바꾸는 협의가 이뤄졌다. 북한에 쌀을 주겠다면서도 이산상봉 문제를 아예 입밖에 꺼내지 않은 걸 두고 직무유기에 가깝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통일부와 적십자에 이산상봉 신청서를 낸 실향민은 제도 시행에 들어간 1988년 이후 13만3,305명에 이른다. 지난 6월까지의 통계를 보면 이 가운데 59%인 7만8,671명이 이산의 한을 풀지 못하고 숨을 거두었다. 생존자 5만4,634명이 일 년에 한 차례 꼴로 찔끔찔끔 이뤄지는 상봉행사(회당 100명 선발)를 한다면 543년이 필요할 것이란 계산이다. 이런 식으로 상봉하다간 모두가 만나려면 500년 넘게 걸릴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 직후 열린 8.15 상봉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모두 21차례 상봉에 그쳐 1년에 한 차례 상봉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건 90세 이상 1만2,998명을 포함해 80세 이상 고령 이산가족이 64%를 넘는다는 점이다. 지난 한 해 사망한 상봉 신청자는 4,914명으로 해마다 그 숫자가 늘고 있는 추세다. 북한 입장에서 정치적으로 부담이 없는 초고령 이산가족부터 상봉을 허용하는 쪽으로 남북 합의를 추진해야 한다는 지적이 힘을 얻고 있는 이유다. 북한의 도발 행보와 이산가족 문제에 대한 거부감에도 불구하고 실향민의 한을 풀어줄 수 있는 노력과 관심이 우리 정부 당국에 필요한 상황이다.

세계인권선언은 “가족은 사회의 자연적이며 기초적인 구성단위이며 사회와 국가의 보호를 받을 권리를 가진다(16조 3항)”라고 밝히고 있다. 동서독 분단 시기 동독의 경우 1952년 탈출자에 대한 사살 명령을 내렸고, 9년 뒤엔 베를린 장벽을 쌓는 정책을 취했다. 그렇지만 연금수령인(정년퇴직·산재·장애)에 한해 연간 4주간 서독의 가족·친지를 방문할 수 있게 허용하는 등 전향적 노선을 택했다. 1964년 제도 시행부터 1971년까지 매년 100만 명 이상이 방문했고, 1972년 동서독 관계 정상화 이후에는 결혼·출산·조문 등을 위한 서독 방문이 허용돼 1980년에는 연간 150만 명이 서독을 다녀간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서독 정부는 모든 방문객에 환영금과 여비·의료지원을 제공했다. 그 결과 1989년 장벽 붕괴 시까지 동독인의 3분의 1이 서독을 방문하게 됐고, 통일독일을 이후는 밑거름이 됐다는 평가다.
 
올 추석 상봉도 성사되지 못한 채 이대로 넘기면 연내 북한 가족과의 만남을 추진할 계기도 사실상 사라진다. 고령 이산가족과 실향민 사회는 지난 3.1절 경축사에서 “이산가족과 실향민이 단순한 상봉을 넘어, 고향을 방문하고 가족·친지를 만날 수 있도록 추진하겠다”고 한 문재인 대통령의 말을 기억하고 있다. 6.25 피난선을 타고 내려온 실향민의 후손인 대통령이기에 더욱 기대가 클 수밖에 없다. 비핵화와 평화경제 같은 과제가 산적해 있는 게 사실이지만 실향민들이 이산의 한을 풀고 눈을 감을 수 있도록 대통령과 정부, 대한적십자사 등이 전력투구하는 자세를 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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