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이재용 부회장의 삼성승계를 위한 부정한 청탁과 뇌물공여가 있었다고 선고했다. /뉴시스
대법원이 이재용 부회장의 삼성승계를 위한 부정한 청탁과 뇌물공여가 있었다고 선고했다. /뉴시스

시사위크=정계성 기자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29일 특별선고기일을 잡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뇌물·횡령 혐의 등에 대해 2심 판결을 파기하고 서울 고등법원으로 환송했다. 2심 선고와 달리 이재용 부회장으로의 삼성승계 작업을 도와달라는 취지의 부정한 ‘묵시적 청탁’과 뇌물공여가 있었다는 게 대법원의 판단이다. 파기환송심 결과에 따라 이 부회장이 재수감될 가능성도 있다.

◇ 삼성승계 관련 부정한 청탁 있었다

이날 전원합의체 선고의 최대 쟁점은 이 부회장의 ‘제3자 뇌물죄’ 성립 여부였다. 형법 129조는 공무원이 직무와 관련해 금품을 수수할 경우 뇌물로 보고 ‘뇌물수수죄’로 처벌한다. 여기에 특수한 사례로 130조 ‘제 3자 뇌물죄’를 규정하고 있다. 공무원이 부정한 청탁을 받고 제3자에게 뇌물을 주게 한 때에 적용된다. 129조 뇌물수수죄와 달리 130조에서는 ‘부정한 청탁’이 있어야 성립된다는 차이가 있다.

원심은 이 부회장으로부터의 ‘부정한 청탁’이 없었다고 판단했었다. 법률상 ‘부정한 청탁’이 인정되려면 대상이 명확하게 정의돼야 하고 당사자들의 인식이 뚜렷해야 하는데, 구체적인 승계작업을 특정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원인이 되는 ‘승계작업’ 자체가 없기 때문에 부정한 청탁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고, 따라서 제3자 뇌물죄를 적용하지 않았다. 이 부회장은 당시 "외아들인 제가 왜 뇌물을 주고 청탁을 했겠느냐"며 승계작업이 없었다는 점을 강조했었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전원합의체 선고 결과를 발표하기 위해 장내에 입장하고 있다. /뉴시스
김명수 대법원장이 전원합의체 선고 결과를 발표하기 위해 장내에 입장하고 있다. /뉴시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부정한 청탁의 대상 또는 내용은 구체적일 필요가 없고 공무원의 직무와 제3자에게 제공되는 이익 사이 대가관계를 인정할 수 있을 정도로 특정되면 충분하다”며 “부정한 청탁의 내용은 죄의 성립요소인 사실이므로 그에 대한 인식은 미필적인 것으로 충분하고 확정적일 필요도 없다”고 했다. 삼성의 포괄적 승계작업이 있었으며 ‘묵시적’인 의사표시로도 가능하다는 뜻이다.

이 부회장이 공여한 뇌물의 범위에는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지급한 16억2,800만원이 적시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정부의 수반으로서 기업에 사실상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포괄적 권한이 있었고, 특수관계에 있는 최순실이 운영하는 영재센터에 이 부회장이 지원금을 지급한 것은 제3자 뇌물죄에 있어 직무와 대가관계가 있다고 봤다.

◇ 뇌물공여 범위에 말 세 마리 전부 포함

문제는 말 세 마리를 뇌물로 볼 수 있느냐 여부였다. 이는 형량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뇌물공여 액수를 산정함에 있어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 원심은 살시도, 비타나, 라우싱의 소유권이 최순실에게 완전히 넘어가지 않았다는 점을 근거로 뇌물 범위에서 제외했다. 대신 말의 무상사용에 대한 대가만을 뇌물로 인정했었다. 그러나 대법원은 실질적인 사용·처분 권한이 최순실에게 있다는 의사의 합치가 있었다고 보고 뇌물의 범위에 포함시켰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2015년 11월 15일 이후부터 최서원이 삼성전자에 말들을 반환할 필요가 없었으며 최서원이 말들을 임의로 처분하거나 그의 잘못으로 말들이 죽거나 다치더라도 그 손해를 삼성전자에 물어주어야할 필요가 없었다”며 “이런 경우 피고인 이재용 등이 최서원에게 제공한 뇌물은 말들이라고 보아야 하고, 비타나와 라우싱은 구입대금을 뇌물로 볼 수도 있다”고 했다.

◇ 횡령액 50억 넘으면 재수감 가능성

1심 재판이 진행되던 당시 재판장으로 이동 중인 박근혜 전 대통령. /뉴시스
1심 재판이 진행되던 당시 재판장으로 이동 중인 박근혜 전 대통령. /뉴시스

뇌물죄가 인정되면서 이 부회장은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경법)상 횡령 혐의도 피할 수 없게 됐다. 앞서 원심은 영재센터 지원금과 말 세 마리를 뇌물로 보지 않았기 때문에 이 부분 횡령혐의 자체를 적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대법원에서 뇌물공여가 성립함으로써 삼성전자의 자금으로 공여한 액수 만큼 횡령죄가 적용될 여지가 생겼다. 특히 횡령액이 50억 이상일 경우 ‘5년 이상의 징역’으로 처벌하도록 돼 있어 파기환송심 결과에 따라 집행유예로 풀려난 이 부회장의 재수감 가능성도 남아 있다.

법조계 관계자는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대법원에서 파기한 내용에 한해 파기환송심이 이뤄지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빠르면 2개월, 늦어도 6개월 내에 선고가 난다. 2심을 담당했던 재판부가 파기환송심까지 맡는 것이 원칙이지만 박근혜·최순실 사건과 병합될 수도 있다”며 “구체적인 형량이나 벌금액 등은 파기환송심 결과가 나와 봐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대법원 선고에 삼성은 고개를 숙였다. 삼성전자는 대법원 선고 후 입장문에서 “이번 사건으로 그 동안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려 대단히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앞으로 저희는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도록 기업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갈수록 불확실성이 커지는 경제 상황 속에서 삼성이 위기를 극복하고 국가경제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과 성원 부탁드린다”고 덧붙였다.

한편 대법원이 이 부회장에 대해 뇌물죄를 인정하면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의 뇌물 혐의 대부분이 확정되게 됐다. 다만 대법원은 박 전 대통령과 최씨 원심까지 함께 파기환송 했는데 내용은 조금 달랐다. 박 전 대통령 재판과 관련해 공직선거법상 분리선고를 해야 하는데 원심이 이를 지키지 않았다는 점이 파기의 이유였고, 최씨 사건에서는 현대차·롯데 등에 대한 강요죄 부분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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