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겸 칼럼니스트
하도겸 칼럼니스트

모든 걸 남탓으로 치부하고 싶은 성자가 있다. 한가지 일 특히 문제가 생기면, 자기 잘못은 갑자기 사라진다. 부인하고 싶은 것이다. 그렇게 자신의 잘못은 없고 남탓 만을 하게 된다. 보다 리얼하게 만들기 위해 오랫동안 당했다 또는 속았다는 식으로 생각하고 떠든다. 누구나 감정의 기복이 있고 때로는 시기, 질투, 오해 등으로 상대를 한량없이 원망하고 싶을 때가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시간이 다가오면 왜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지 스스로의 마음을 바라봐야 한다.

남탓하기 전에 스스로를 돌아보는 것 그게 말은 쉽다. 잘 안된다. 남탓만 하는 것은 적절하지도 않지만, 정말로 해서는 안될 일이기에 하면 안된다. 그런데 사람들이 좀 더 교묘해지면 말로는 자기 잘못을 말해도 그것은 조금일 따름이다. 실제로는 이미 상대의 잘못이 더 크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대부분을 남탓이라고 떠든다. 스스로부터 먼저 돌아보면 되는데, 그게 없거나 형식적일 따름이다. 거꾸로 남탓은 말이 많지만 구체적이지 않고 스스로의 오해한 대로, 아니 생각하고 싶은 대로 스스로에게 유리한 이야기만 나열한다. “난 잘못이 없다”라는 사고방식은 언젠가부터 “난 아무것도 모른다” 또는 “나한테만 왜 그래요?”라는 구호로 바뀐다.

머릿속에서 남들을 모두 악마나 마녀로 만들고 스스로만 성녀나 성자가 된다. 이 세상이 고통의 바다가 아닌 곳이 없는데 혼자 천국이나 파라다이스에 사는 성자나 성녀라는 것이 맞을까? 지금 내가 만나는 사람은 나의 자화상이다. 초면에 아니다 싶으면 얼른 끊으면 되고 이미 만나고 친해졌다면 서로 받아들이고 고쳐나가야 할 따름이다. 그게 안될 경우는 어쩔 수 없지만 상대가 고칠수 없음을 확인하지 않고 스스로가 끊어서는 안된다. 서로 불완전하기에 기대고 있는 게 사람이며 기댈수록 어쩌면 인간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한자로 사람 인(人)를 보면 알 것 같다. 큰 사람을 받쳐주는 게 오히려 작은 사람이 아닌가? 세상에 못쓸 사람은 없다. 있다면 그 사람을 만나고 좋아했던 스스로를 부정하면서 못쓸 사람이 되어버릴 따름이다.

사진은 양수리 두물머리 / 경기도 양평군 관광청 홈페이지
사진은 양수리 두물머리 / 경기도 양평군 관광청 홈페이지

오늘 살자고 과거 미래까지 소환해서 폭파시키는 성녀가 있다. 한가지 일은 그 일로 끝내야 한다. 이 일 하나 이기자고 줄줄이 사탕처럼 이전 일들을 끄집어 내면 안된다. 모든 일이 연관되어 있다고 하지만, 그런 봉인해 둔 과거의 소환은 극단적인 악순환을 부를 뿐이다. 지금 이 일을 제대로 해결하지 않은 채 이전의 과거 일로 이미 해결된 일이거나 봉합되거나 끝난 지나간 모든 일 가운데 자신에게 유리하다고 생각한 이야기들을 다 끄집어 내놓으면 안 된다.

그렇게 상대를 질리게 해서는 안 된다. 또한 과거의 소환에 멈추지 않고 오지도 않은 내일 걱정까지 하는 것은 여기서 수류탄 아니 핵폭탄을 터뜨리자는 것일 따름이다. 그런 일은 하면 안되기에 해서는 안 된다. 애정을 가지고 철저히 논의하고 너무 고통스러울 때는 물러서서 쉬고 해도 된다. 어떤 대화를 하든 애정과 상대에 대한 배려 등의 마음이 있어야 한다. 문제는 싸우는 데 있지 않고 싸움만 있고 마음이 없는 데 있다.

까닭에 이 일로 미래나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도 악영향을 끼치는 일은 해서는 안 된다. 한 사람과의 관계로 끝내면 될 듯하지만, 한 두 사람 건너면 다 아는 사람으로, 정말 복잡한 인드라망이라는 인연계는 끊자고 끊어지는 게 아니다. 그러니 아닌 것 같으면 애초에 더 친해지기전에 안 맺는 게 제일 좋다. 하지만 이미 서로 친밀한 관계가 되었다면 이야기는 전혀 다르다. 까닭에 결국 싸움을 덜할 생각을 하지 말고 부단히 스스로 고치려고 노력하는 측면에서 싸울 때라도 애정 등의 마음을 버리지 않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안분지족. 일상속에서 소소하게 나마 행복을 찾으면서 만족해서 살고 싶다. 그러기 위해, 남탓하지 않고 스스로부터 바라보는 반성이 우선되어야 한다. 늘 상대에게 고마워하는 감사의 마음을 잃지 않고 절대 오늘 한번 이기려고 봉인된 과거나 미래의 걱정까지 소환하지 않는다. 그리고 부단히 스스로 고치려고 노력하는 인내 가운데, 설사 싸우더라도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을 저버려서는 안된다. 이 글 역시 다른 모든 글과 마찬가지로 스스로에 대한 경계를 위한 잠언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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