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타짜: 원 아이드 잭’(감독 권오광)으로 돌아온 박정민.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타짜: 원 아이드 잭’(감독 권오광)으로 돌아온 박정민. /롯데엔터테인먼트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잘해야 본전이었고, 못하면 뭇매 맞기 십상이었다. 극장가 대목인 추석 연휴 개봉인데다, 엔딩 크레디트에 가장 먼저 이름을 올린 것도 어깨를 무겁게 만들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말렸다. ‘험난한 길에 굳이 제 발로 들어갈 이유가 무엇이냐’고….

하지만 피할 수 없었다. 시나리오가 재밌었고, 감독님이 너무 좋았다. 원작의 오랜 팬이기도 했다. 사실은… 그냥 하고 싶었다. 처음 시나리오를 받고, 책을 연 순간부터 가슴이 뛰었고 무조건 하고 싶었다. 그렇게 박정민은 인기 시리즈 ‘타짜’ 세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이 됐다.

허영만 화백의 동명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타짜’ 시리즈는 도박판에서 펼쳐지는 타짜들의 배신과 암투,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흥미진진하게 그려내 흥행 돌풍을 일으켰다. 2006년 추석을 앞두고 개봉한 ‘타짜’(감독 최동훈)는 568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 에이스의 탄생을 알렸다. 8년 뒤 다시 돌아온 ‘타짜-신의 손’(감독 강형철)도 401만 관객을 불러 모으며 믿고 보는 시리즈로 자리매김했다.

‘타짜: 원 아이드 잭’에서 일출로 분한 박정민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타짜: 원 아이드 잭’에서 일출로 분한 박정민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오늘(11일) 세 번째 이야기로 돌아온 ‘타짜’는 더 크고 새로워진 판으로 관객 취향 저격에 나선다. ‘타짜: 원 아이드 잭’(감독 권오광)은 인생을 바꿀 기회의 카드 ‘원 아이드 잭’을 받고 모인 타짜들이 목숨을 건 한판에 올인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화투에서 포커로 종목을 바꾼 ‘타짜: 원 아이드 잭’은 52장의 카드로 승부를 가르는 포커의 세계를 흥미진진하게 담아내 전작과는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박정민은 조승우(‘타짜’)·최승현(‘타짜-신의 손’)에 이어 세 번째 ‘타짜’ 주인공을 맡았다. 극 중 칠판보다 포커판이 더 친숙한 공시생이자 전설의 타짜 짝귀(주진모 분)의 아들 도일출로 분했다.

단편영화부터 상업영화까지 자신만의 색깔로 꾸준히 필모그래피를 쌓아오고 있는 박정민은 ‘타짜: 원 아이드 잭’에서도 새로운 얼굴을 보여준다. 주변에 있을 법한 평범한 소년의 모습부터 성인 남자로 성장하는 일출로 완전히 분해 다시 한 번 폭넓은 스펙트럼을 입증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그 어느 때보다 잘생긴 얼굴로 섹시한 매력까지 뿜어낸 박정민이다.

박정민이 ‘타짜: 원 아이드 잭’을 향한 남다른 애정을 드러냈다. /롯데엔터테인먼트
박정민이 ‘타짜: 원 아이드 잭’을 향한 남다른 애정을 드러냈다. /롯데엔터테인먼트

개봉에 앞서 <시사위크>와 만난 박정민은 ‘타짜: 원 아이드 잭’을 향한 남다른 애정을 드러냈다.

-‘타짜: 원 아이드 잭’ 출연을 반대하는 지인들을 설득하고 다녔다고. 어떤 말로 설득을 했나요. 박정민이 ‘타짜’를 꼭 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었나요.  
“‘시나리오가 재밌는데요. 감독님이 굉장히 괜찮으신 분인데요. 만화를 보니까 3편이 제일 재밌더라고요’ 말도 안 되는 감언이설로 설득을 했어요. 하라는 얘기를 듣고 싶었던 거예요. 그분들도 결국에는 ‘그럴 거면 왜 물어봐, 하고 싶으면 해야지’라고 하시더라고요. 가장 결정적이었던 것은 (김)의성 선배님의 말이었어요. 전화를 해서 조언을 구했더니, 잠깐 끊으라고 하시더니 10분 있다가 다시 전화가 왔어요. ‘나는 네가 했으면 좋겠어’라고 하시더라고요.

왜냐고 물었더니 ‘최동훈 감독이 네가 하는 거 보고 싶대’라고 하시는 거예요. ‘타짜’라는 영화를 이 세상에 나오게 한 감독님이 본인이 만드는 영화는 아니지만, 아우 격인 이 영화(‘타짜: 원 아이드잭’)의 주인공으로 박정민이 연기하는 걸 보고 싶다는 말씀이 큰 응원이 됐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렸던 이유는 ‘모 아니면 도’였기 때문이었겠죠.
“그렇죠. 심지어 ‘타짜’니까요. ‘굳이 네가 그 판으로 들어갈 이유가 뭐가 있니, 다른 것도 좋은 게 많을 텐데.’ 사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굳이 험난한 길로 제 발로 들어갈 이유가 있나. 그런데 처음 시나리오를 받고, 처음 읽어봤을 때부터 그냥 하고 싶었던 거예요. 그냥 하고 싶었던 거더라고요.”

-기존 시리즈물과 다른 ‘타짜: 원 아이드 잭’만의 차별점을 꼽자면요.
“조금 더 현실적인 인물로 시작하는 영화이고, 던지는 메시지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흙수저든 금수저든 카드 7장 들고 치는 건 똑같은 거 아니냐’는 대사처럼 일출은 열등감으로 살아가는 인간인데, 카드판에서 자기의 존재를 계속 입증해요. 빛을 발하기도 하고요. 그렇다 보니까 그 판으로 빠져 들어가는데, 거기서 수모를 겪고 또 열등감이 발생되죠. 어떤 누군가를 만나고 또 어떤 드라마를 겪으면서 결국은 카드 7장을 들고 치는 게 똑같은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죠. 그러면서 일출이 또 한 번 성장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했어요.

주제의식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신선했어요. 그런데 고민의 여지는 있었어요. ‘타짜’라는 영화에서 과연 이런 메시지가 먹힐까? 제가 너무 보수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닌가 싶더라고요. 2019년에 나오는 영화인데, 2006년에 나온 ‘타짜’와는 다른 면이 있어야 하는 거잖아요. 또 그 영화를 보면서 꿈을 키웠던 영화인들이, 젊은 사람들이 2019년에 보여주는 ‘타짜’라는 영화에 우리만의 색깔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죠. 저희 나름대로 꿋꿋하게 지켜나가면서 찍었어요. 관객들이 어떻게 봐주실지 모르겠지만요.”

추석 극장가 대전에 출사표를 던진 박정민. /롯데엔터테인먼트
추석 극장가 대전에 출사표를 던진 박정민. /롯데엔터테인먼트

-‘타짜’인데 착한 영화라는 느낌이 들기도 하더라고요.
“사실 더 나쁘게도 해보고, 더 나쁜 아이디어도 내봤어요. 그래도 ‘타짜’인데 뭔가 더 과격해야 하는 거 아닌가, 더 세야 하는 거 아닌가 생각도 했어요. 그런데 그건 우리 욕심이더라고요. 보는 사람들은 불특정 다수의 우리나라 성인들인데, 사람마다 다르잖아요. 시사회 끝나고 누구는 수위가 약하다고 했는데, 제 동생은 두 번은 못 볼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참 신기했어요. 더 셌으면 제 동생 같은 관객은 못 보는 거죠. 저희는 영화를 자주 보고 내성이 생긴 사람들이지만, 문화생활을 즐기고 데이트를 하러 극장을 찾는 일반 관객들에게는 너무 세게 다가올 수 있는 거더라고요.”

-동생이 일출을 보고 잘생겼다고 하던가요.
“아니요. ‘집에 갈게’라고 하더라고요.”

-권오광 감독이 점점 멋있어지는 일출의 모습을 요구했다고 했는데, 성공한 것 같아요. 체중도 20kg나 감량했다고요.   
“초반 분량이 거의 78kg 나갔을 때예요. 후덕했죠. 그런데 제가 워낙 왜소해서 그렇게 티가 나진 않더라고요. 시간이 지나면서 라인이 나오기 시작하고, 얼굴에 점점 음영이 생겼어요.”

-화려한 스타일링은 하지 않았어요.
“그건 아마 박정민이라는 사람 때문인 것도 있었을 거예요. 저조차 화려한 옷을 입으면 불편하거든요. 색이 들어가고, 무늬가 있으면 불편하고 어울리지도 않고요. 그것도 익숙한 사람이 그렇게 입어야 보는 사람들도 어색하지 않잖아요. 그래서 아마 의상팀도 박정민이라는 배우한테 어울리게 해놓고, 화려한 부분은 (이)광수 형이나 (임)지연, 유화 누나를 통해 균형을 맞춘 것 같아요.”

역대급 잘생김을 뽐낸 박정민. /롯데엔터테인먼트
역대급 잘생김을 뽐낸 박정민. /롯데엔터테인먼트

-인터뷰 때도 항상 어두운 옷을 입고 오는 것 같아요. (이날 박정민은 짙은 남색 맨투맨 티셔츠를 입고 왔다.)
“검은색 옷을 좋아해요. 그런데 그런(화려한) 옷을 안 입어봤던 건 아니에요. 한때 미쳐서 노란색 옷 입고 다니고 했던 적도 있었어요. 그런데 그게 참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스타일리스트가 참 힘들어하죠. 옷을 갖고 와도 계속 검은색 옷을 입겠다고 하니까. 그런 옷을 입을 때 제일 자신감이 생겨요. 제 시야에 색깔이 걸리면 겸손해지고, 죄송할 것도 아닌데 괜히 죄송해지더라고요.”

-그런 점에서 일출은 굉장히 도전적인 캐릭터였겠어요.
“그런 데서 해소를 하는 것 같아요. 해보고 싶은 것들을 연기하면서… 저는 박정민이라는 인간 자체에 대한 자신감이 없어요. 박정민을 보여줘야 하는 어떤 것들에 대해 자신감이 굉장히 없죠. 저를 감추면 자신감이 생겨요.”

-베드신도 나와요. 박정민도 베드신을 할 수 있구나 싶더라고요. 
“저는 이 영화에서 관객들이 박정민에게 기대하지 않았던 모습을 보시지 않을까 싶더라고요. 박정민에 대해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을 연기하는데 특화돼있는 배우라고 생각했던 분들이, ‘영화에서 보고 싶은 인물을 연기하네’라는 마음이 들게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렸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어요. 이 영화에 한해서는. 그래서 기존에 했던 연기와는 다르게 변화를 줘야 했고, 외적인 변화도 있었죠. 그런 고민들을 했던 것 같아요.”

‘타짜: 원 아이드 잭’에서 환상의 호흡을 자랑한 류승범(왼쪽)과 박정민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타짜: 원 아이드 잭’에서 환상의 호흡을 자랑한 류승범(왼쪽)과 박정민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처음 제안을 받고 개봉 앞둔 지금 이 시기까지, ‘타짜: 원 아이드 잭’과 함께 한 시간을 되돌아봤을 때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요.
“(류)승범 형 처음 만난 날인 것 같아요. 제가 2월에 캐스팅돼서 3개월을 혼자 있었거든요. 배우로 캐스팅 보드에 혼자 붙어있었어요. 이 영화가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는 거예요. 저는 이 영화를 너무 사랑하게 됐고, 감독님을 너무 좋아하게 됐고, 정말 잘 만들고 싶은 의지가 올라와 있는데 캐스팅 보드에 저 말고 없어요. 불안하잖아요. 엎어질 수도 있는 거잖아요. 저 하나만으로 만들어질 수 없으니까. 그래서 이런저런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가 승범이 형이 해주신단 말을 듣고 너무 좋았어요. 한국에 오신단 얘기를 듣고 바로 달려갔죠. 그때 그 순간을 잊을 수 없어요. ‘네가 정민이구나.’ 승범이 형의 첫 대사였어요.  너무 고마웠어요. 승범이 형이 캐스팅되면서 착착 진행됐거든요. 그 순간이 정말 기뻤고 좋았어요.”

-박정민 배우에 대한 기대치도 높잖아요. 앞으로 작품을 할 때마다 그런 부담감이 더 커질 것 같은데.
“그렇겠죠. 배우 지망생일 때, 데뷔하고 나서 큰 성과가 없을 때 ‘선배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난 이렇게 힘들어 죽겠는데’ 고민을 했어요. 그런데 한 단계 성장해서 스텝을 밟고 올라온 지금 이 상황에 하는 고민이 그때 했던 고민 이상이면 이상이지 더 적은 것 같지는 않더라고요.

그렇게 봤을 때 ‘선배들은 얼마나 고민이 더 많을까, 보여주는 게 훨씬 많고, 증명할게 훨씬 많은데, 그다음 작품은 얼마나 부담이 될까’ 싶었어요. 그걸 버텨내고 20년을 해오는 선배들이 너무 존경스러운 거예요. 개봉 때마다 그 감정이 커지고, 앞으로 역할 하나하나 맡아나가면서 영화 하나하나 만들어가면서 제가 느껴야 할 부담감들이 더 커질 것 같아요. 제가 무리 없이 운 좋게 계속해서 영화를 찍어나갈 수 있다면 그 이후는 지금보다 더 힘들겠죠?”

매 작품 성장해서 돌아오는 박정민. /롯데엔터테인먼트
매 작품 성장해서 돌아오는 박정민. /롯데엔터테인먼트

-부담감이 심적인 압박감에 가깝나요, 좋아하는 연기를 하면서 느끼는 기분 좋은 부담감에 가깝나요.
“복합적인 감정이에요. ‘나’라는 배우의 가치가 이 영화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부터 시작해서 내가 이 역할을 연기하는 데 있어서 어디까지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관객들한테 어떻게 다가가야 설득이 될까 여러 가지 고민들을 하죠. 저는 기본적으로 스트레스가 많은 사람이에요.

권해효 선배가 술자리에서 해주신 말씀이 가슴에 굉장히 깊게 박혔어요. 절 되게 좋아해 주시는데, 제가 안쓰러우셨나 봐요. 그러면서 해주신 말씀이 ‘정민아, 감독이나 제작자가 너를 어떤 역할로 놓을 때는 네가 지금까지 보여준 어떤 것 때문에 놓은 거야. 이미 그 기대치는 과거에 있어. 네가 그 역할 때문에 스스로를 갉아먹으면서 증명하기 위해 뭔가를 낭비하지 마’였어요. 저는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거든요. 저는 ‘저 감독님이 왜 나를 캐스팅하지?’ 계속 의문이었거든요. 권해효 선배가 ‘너대로만 해도 그 사람들이 너한테 원하는 몫을 충분히 해내는 것이다’라고 얘기하시는데, 되게 깊숙이 들어왔어요.

셰익스피어 말처럼 성격이 운명이라서, 전 계속 그런 삶을 살 거예요. 누굴 탓할 것도 없어요. 어렸을 때부터 이랬어요. 그런데 권해효 선배의 말씀대로 생각을 바꿔보려고 노력은 해보려요. 쉽지는 않겠죠. 시간도 좀 걸리겠죠. 지금까지 해왔던 노력을 게을리하라는 말은 아니지만, 그 안에서 자꾸 증명하려고 애쓰지 말라는 말에 울컥했어요.”

-마지막으로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타짜: 원 아이드 잭’은 전작을 이기려고 만든 영화는 아니에요. ‘타짜’ 첫 번째 시리즈에 헌정하는 영화라고 생각해요. 그 영화를 만든 선배들에게 다음 세대 영화인들이 부끄럽지 않게 잘 보여드리기 위해 열심히 만든 작품이에요. 어쩔 수 없이 비교는 되겠지만, 넘으려고 만든 영화도 아니고 싸우려고 만든 영화도 아니에요. 2019년 젊은 영화인들이 만든 ‘타짜’는 어떨까 하는 마음으로 관객들이 봐주시면 더 재밌게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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