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18 21:38 (금)
[김재필 '에세이'] H에게- 조국 논란으로 본 대한민국의 계급화
[김재필 '에세이'] H에게- 조국 논란으로 본 대한민국의 계급화
  • 시사위크
  • 승인 2019.09.16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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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필자: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지난 한달 너무 뜨거운 시간이었네. 평균 기온은 작년보다 좀 낮았지만, 이른바 ‘조국 논란’으로 8월 초부터 한국사회가 두 진영으로 나뉘어 싸웠으니 뜨겁지 않을 수 없었지. 대한민국은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가 말한 뜨거운(hot) 사회의 전형일세. 사회적 갈등과 정치적 투쟁이 그치지 않는, 그래서 엄청나게 시끄럽고 불안해 보이기도 하지만,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내는 대한민국. 나이 들어 이런 사회에서 사는 게 마음 편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줘서 괜찮아. 새로 알게 되는 것도 많거든.

이번 ‘조국 논란’을 통해 거의 모든 국민들이, 진보든 보수든 관계없이, 우리 사회가 짐작했던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하게 계급화 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게 불행 중 다행이야. 엄마 아빠를 잘 만나면 부모의 사회적 지위와 사회 자본으로 스펙을 쌓고, 이를 이용해 명문 대학이나 대학원에 가는 ‘그들만의 리그’가 존재함을 확인했어. 이른바 ‘금수저들’이 사는 세상의 진면목이 들어났다고나 할까. 이제 병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으니 많은 치유 방법들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네.

‘박탈감의 계급화’라는 고통스러운 말도 이번에 처음 들었네. 지방에서 살거나 대학에도 가지 못한 젊은이들은 박탈감마저 자기들과는 너무 먼 나라 이야기라는 거지. 좋은 부모를 가진 서울의 청춘들, 그것도 이른바 ‘스카이(SKY)’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만의 박탈감이라는 뜻이야. 청년 노동자단체인 ‘청년전태일’이 8월 31일 ‘조국 후보 자녀와 나의 출발선은 같은가?’라는 주제로 연 공개 대담회에서 회원들이 외친 구호가 두고두고 마음 아프네. “아무리 노력해도 따라잡을 수 없는 출발선에 청년들은 분노한다.”어쩌다가 우리 사회가 이렇게 되었는지…

‘조국논란’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른바 ‘86세대’를 비판하더군. 사실 1980년대에 같은 나이 또래들 중 대학생들은 30% 정도밖에 되지 않았네. 그들 중 적극적으로 군부독재 종식과 노동자들의 권익 신장을 위해 열심히 활동했던 사람들은 극소수였어. 그들 중 극히 일부가 지금 문재인 정부에서 일하고 있고. 그러니 ‘86세대’ 전체를 겉과 속이 다른 위선자라고 매도하는 것은 옳지 않네. 대다수 ‘86세대’는 그냥 평범하게 살고 있어.

흔히‘86세대’를 강남좌파라고 비판하네. 입으로만 진보지 그들 또한 기득권세력이라는 거야. 일정 부분 맞는 비난일 수도 있지. 그들이 민주화와 산업화의 혜택을 실질적으로 누렸던 첫 세대이니까. 실제로 그들이 대학을 졸업할 때 한국 경제가 가장 고도로 성장했거든. 날마다 데모를 하면서도 취직 걱정을 크게 하지 않았던 유일한 세대였어. 하지만 그게 어디 그들이 부끄러워해야 할 잘못인가. 운도 좋았던 거지.

‘86세대’는 아니지만 지금 우리 사회를 만드는데 어느 정도 책임이 있는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 좀 뻔뻔스러운 말일 수도 있지만, 이번 ‘조국 논란’을 통해 상대적 박탈감을 경험한 모든 젊은이들에게 부탁하고 싶네. 그대들도 이제 ‘86세대’비난 그만 하고 그들이 80년대에 했던 것처럼 불가능해 보이는 사회구조와의 싸움을 시작해보라고. ‘86세대’가 피와 땀으로 이 땅에 절차적 민주주의를 확립했던 것처럼, 피해자인 청년들이 나서서 점점 굳어지고 있는 계급 구조를 깨부수라고. 그래서 우리 사회의 모든 부문이 민주화되는 실질적 민주주의를 이루어보라고. 정치적 자유를 위해 군부독재와 치열하게 싸웠던 ‘86세대’에게 사회경제적 평등과 실질적 민주주의까지 기대하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앞 세대가 해내지 못한 것들은 후속 세대가 나서서 하나하나 고쳐나가는 게 순리 아닐까? 우리가 지금 이 정도의 사회에서 살고 있는 것도 다 앞 세대들의 피와 땀에 빚지고 있는 거야.

레비-스트로스도 “차가운 사회는 역사의 소재로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그 영향을 받지 않으려고 애쓰는 반면, 뜨거운 사회는 역사성을 내면화하여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는다”고 말했지. 이번 ‘조국 논란’으로 대한민국이 계급을 넘어 신분사회로 후퇴하고 있음이 드러났어. 그러면 그렇게 굳어지는 사회구조를 누가 나서 균열을 내야할까? 앞으로 많은 시간 이 땅에서 살아갈 젊은이들이 누구보다 더 분노하고 싸워야지. 뜨거운 사회를 더 뜨겁게 만들 의무라고나 할까? 젊은 청년들이 뭣을 해야 할지 다음 편지에서도 계속 함께 고민해 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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