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겸 칼럼니스트
하도겸 칼럼니스트

보이차를 많이 마시다보면 다 고마운 차이지만 작가와 비유해서 뭐가 다른 차이가 있는지 살피게 된다. 진기(陳期), 즉 빈티지라고 하는 경력은 얼마나 되는지? 또는 연식(年式)이라고 하는 연세는 어떻게 되었는지? 땅 즉 떼루아(terroir)라고 하는 산지(産地)는 어디인지? 차창(茶倉)이라고 하는 출신 학부나 아카데미는 어디인지? 등등. 결국 마시다보면 아주 미세한 작은 차이가 커다란 경계로 다가오는 것을 느끼곤 한다.

전문 사진 작가분들과 일을 하다보면 다 훌륭하지만 그분들은 물론이고 그분들의 작품 가운데도 뭔가 차이가 있는지 궁금하다. 매우 무엄한 호기심인지 모르지만 늘 이 분은 어떤 느낌으로 우리를 자기만의 작품 세계로 이끌어 줄지라는 기대에 늘 설레인다. 주도적이지 못한 사랑을 할 때도 그런 마음이 우리 관람객에게는 있을까? 여하튼 사진 예술의 세계는 늘 그렇게 설레임과 함께 희미한 그리움으로 퇴색되어가는 마음의 캔버스 같은 것이 아닐까 싶다.

벌써 몇 년동안 장명확 작가를 만나고 함께 작업을 해왔지만 캔버스에 장 작가를 담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틀에 얽매이지 않는 장 작가는 위엄있으면서 순진무구하지만, 우리 불교 전통 사찰에 들어가는 순간 전혀 다른 ‘성(聖)’스러운 예술가로 변한다. 늘 배려하고 챙겨주며 설명을 곁들여주는 장 작가는 부처님의 경계에 들어가는 순간 마치 돌부처처럼 묵언수행을 하듯이 긴시간동안 카메라 앵글에 담은 피사체의 빛의 집합과 분산에 몰두한다. 그래서 그런지 필자가 기획한 몇몇 보고서와 도록 그리고 전시회에 소개한 그의 작품들에는 늘 확고한 부동(不動)의 불심(佛心)이 엿보인다. 보이차 가운데 철병(鐵餠)처럼 단단하게 긴압한 생차가 있다면 그는 돌부처와 같은 사진작가라고 할 수 있다.

돌부처와 같은 장명확 작가는 유유상종인지 돌에 새겨진 부처 즉 마애불에 관심을 갖게 됐고 찍다보니 벌써 10년이 되었다. 장 작가가 마애불에 관심이 가게 된 것은, 돌에 그린 단순한 그림이라지만 천년 이상이나 오랜 엄청난 시간을 견뎌오고 선조들의 간절한 염원들이 투사된 마애불이라는 생각 때문이라고 한다. 딱 그만큼의 염원과 오랜 시간을 카메라로 담아내려고 했을테지만 유한한 우리가 무한한듯한 돌에 새겨진 부처들을 담는 것은 이미 한계가 있다. 그런 한계를 넘고자 장 작가는 마애불을 찾아갔다가 비를 만나고 산길과 바위에 미끄러지면서 철수와 방문을 거듭한 것인가 보다. 까닭에 그의 사진 작업은 어쩌면 돌에 새겨진 부처에 묶여 있는 시간과 공간 그리고 이 마애불들을 찾은 사람들의 기억과 염원을 깨워서 풀어주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장명확 작가가 이번 전시회에 내놓은 속리산 상고암의 마애불군 사진 / 하도겸 제공
장명확 작가가 이번 전시회에 내놓은 속리산 상고암의 마애불군 사진 / 하도겸 제공

마애불에는 오랜 세월 간절한 염원과 천년의 시간이 그 안에 고스란히 들어 있다. 까닭에 그 앞에 서면 옷깃이 여며지고 경건해 지는 법이다. 단순히 숙연해지는 것만 아니라 선조들의 삶과 만났다는 감흥도 함께 했을 것이다. 천년의 세월에 닳아 없어진 마애불군들의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나게 찍는 것은 바위에 돌부처를 새기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 아닐까 싶다. 부처들을 만나고 싶은 민초들의 염원을 담는 것과 같은 혼이 담긴 예술세계이다. 바위에 새겨진 돌부처와 같은 장 작가가 마애불상군을 찍는 것 자체가 그런 염원을 발원한 원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오는 18일부터 24일까지 서울 인사동 나우갤러리에서 장작가의 '돌-부처를 만나다' 사진전이 서울 인사동 나우갤러리에서 펼쳐진다. 누가 돌이고 누가 부처인지 가서 꼭 확인해 봐야겠다.

 

* 장명확 작가는 홍익대학교 산업미술대학원(사진전공) 졸업. 1988년 《주간스포츠》 사진부에서 사진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보도, 출판, 방송 등 여러 분야에서 불교 관련 사진을 찍어왔으며 G20 정상 증정을 위해 문화부에서 간행한 화보집에서 불교 분야의 사진을 담당했다. 홍익대 산업미술대학원을 마치고 원광대학교, 동방불교대학교, 중국 연변대학교 등에서 사진학을 강의했다. 《붓다의 제자 비구니》, 《깨달음이 있는 산사》, 《길 위에서 삶을 묻다》 등 40여 권의 도서에서 사진 작업에 참여했다. 특히 월간 《불교와 문화》, 진각종, 백양사, 향림불교 등과 함께 불교 관련 촬영에 힘쓰고 있다. 지난 2017년 <달빛아리랑> 첫 사진전을 열었고 지금까지 15년 넘게 사찰을 찍고 있다. 올해로 제4회를 맞이하는 나마스떼코리아 히말라야 사진전의 심사위원으로도 자원봉사 활동도 열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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