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영 LG화학 사장이 한상범 LG디스플레이 부회장의 뒤를 이어 대표로 낙점됐다. /시사위크
정호영 LG화학 사장이 한상범 LG디스플레이 부회장의 뒤를 이어 대표로 낙점됐다. /시사위크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한상범 LG디스플레이 부회장이 실적 악화의 책임을 지고 전격 사의를 표명하면서 정호영 LG화학 사장이 ‘구원투수’로 낙점됐다. 한상범 부회장이 ‘골든타임’이라고 강조한 바 있는 절체절명의 시기에 수장 자리를 이어받게 된 정호영 사장은 당장 산적한 현안과 과제를 마주할 전망이다.

LG디스플레이는 지난 16일 한상범 부회장의 사의 표명 소식과 함께 후임에 정호영 LG화학 사장을 선임했다고 발표했다. LG디스플레이는 이날 긴급 이사회를 개최해 정호영 사장을 후임 대표이사로 선임하는 안건을 의결했으며, 내년 3월 정기 주주총회를 통해 정식 선임될 예정이다. 그에 앞서 당분간은 집행 임원으로 공식 업무를 수행하게 된다.

‘깜짝 구원투수’로 낙점된 정호영 사장은 1961년생이며 ‘재무통’으로 알려져 있다. 1984년에 입사해 LG그룹 주요 계열사에서 CFO(최고재무책임자)를 맡는 등 능력을 인정받아왔다. 특히 올해 초에는 LG화학 COO(최고운영책임자)로 선임돼 중책을 맡기도 했다.

하지만 당장의 상황은 녹록지 않다. 야구로 치면, 여유 있는 상황에서 마운드를 이어받은 것이 아닌 긴박한 ‘터프세이브’ 상황에 해당한다.

LG디스플레이는 지난해 1분기 6년 만에 첫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비상경영’에 돌입한 바 있다. 주력인 LCD부문이 중국발 공급과잉 등의 여파로 크게 흔들리면서 위기에 직면한 것이다. 한창 상승세가 이어지던 때와 비교하면 하락세는 더욱 뚜렷했다. 특히 올해는 1분기와 2분기 모두 적자를 면치 못하며 누적 영업손실이 5,000억원에 달한 상황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정호영 사장은 실적악화에 제동을 거는 한편, ‘체질개선’에 마침표를 찍어야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게 됐다. 한상범 부회장이 이미 기반을 닦아 놓은 LCD에서 OLED로의 전환이 그것이다. 아울러 뒤처진 LCD 생산라인의 효율성을 끌어올리고, 내부 조직분위기를 쇄신해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야 한다.

물론 모든 상황이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LG디스플레이는 이미 한상범 부회장 시절부터 OLED를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삼고 대대적인 전환 작업에 착수한 바 있다. 사실 이 과정에서 대규모 투자 등이 이뤄지면서 실적이 악화된 측면도 크다. 즉, 정호영 사장 입장에선 이미 굵직한 비용이 투입된 만큼 큰 부담 없이 체질개선을 매듭짓고, OLED부문에서의 독자적 경쟁력을 발판삼아 도약을 노려볼 수 있는 상황이다.

타이밍 또한 적절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일반적으로 수장급 인사는 연말께 단행되기 마련인데, 정호영 사장은 한상범 부회장의 결단 덕에 보다 빠르게 업무에 착수할 수 있게 됐다. 새로운 수장으로서 보다 빨리 변화에 시동을 걸 수 있게 된 것이다. 실제 LG디스플레이는 정호영 사장 선임 직후인 17일 희망퇴직 등 구조조정에 착수하며 분주한 발걸음을 이어갔다.

다만, 한상범 부회장의 큰 빈자리는 정호영 사장이 넘어야할 산이다. 한상범 부회장은 2012년 LG디스플레이 수장으로 취임해 그 해 2분기부터 2017년 4분기까지 23분기 연속 흑자를 이끈 인물이다. ‘영광의 시절’을 이끈 수장일 뿐 아니라, 공장장 출신으로서 현장을 특히 강조한 리더였다. 그의 핵심 경영철학으로 ‘현장에서 현물을 보고 현실을 파악해야 한다’는 ‘3현주의’가 꼽힐 정도다. 이를 바탕으로 한상범 부회장은 LG그룹 내에서는 물론이고 업계에서도 ‘장수 CEO’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비록 불가피한 실적악화 속에 물러나게 됐지만, 한상범 부회장은 뒷모습까지 수장으로서의 품격을 잃지 않았다. 다음 세대를 위한 기반을 닦아 놓은 상태에서 새로운 출발을 위해 자신의 위신을 내려놓는 모습을 보였다. 그 빈자리를 채워야 할 정호영 사장 입장에선 부담과 책임감이 더 클 수밖에 없다.

정호영 사장이 OLED와 함께 영광의 시절을 재현하며 한상범 부회장의 ‘용퇴’를 더욱 빛나게 만들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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