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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친환경·국산화’ 두 마리 토끼 잡은 두산중공업, 대형 가스터빈 독자개발 성공기
2019. 09. 19 by 권정두 기자 swgwon14@sisaweek.com
두산중공업이 정부가 국책사업으로 추진해온 발전용 대형 가스터빈 독자개발에 성공했다. /두산중공업

시사위크|창원=권정두 기자  “그동안 국내에서 운용돼온 발전용 대형 가스터빈은 면도기와 같았습니다. 면도기 자체는 싸게 팔지만, 이후 교체하는 면도날은 그보다 비싸게 팔잖아요. 극히 제한적인 국가 및 기업에 맡길 수밖에 없는 발전용 대형 가스터빈도 처음 설치할 때는 서로 좋은 조건을 제시하지만, 이후 부품 교체나 유지·보수에 있어서는 우리가 완전히 ‘을’의 위치에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국형 발전용 대형 가스터빈 개발의 실무를 총괄한 두산중공업 이광열 상무의 말이다. 정부가 두산중공업 등과 함께 국책사업에 착수한 핵심 배경을 담고 있다. 설명을 하는 그의 모습에선 설렘과 벅찬 자부심이 고스란히 읽혔다.

두산중공업이 발전용 대형 가스터빈의 국내 첫 독자개발 성공을 앞두고 있다. 제작 과정이 막바지에 접어든 가운데, 지난 18일 창원공장으로 기자들을 초청해 역사적인 초도품 최종 조립 모습을 공개했다. 현재 공정률은 95%에 달하며, 조만간 최종 조립을 마친 뒤 사내 성능시험에 돌입할 예정이다. 성능시험이 별다른 문제없이 성공할 경우,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5번째로 발전용 가스터빈 기술을 보유한 국가가 된다.

◇ 세계대전 치른 4개 국가만 보유한 기술, 이제는 우리도

발전용 대형 가스터빈은 기본적으로 항공기의 제트엔진과 원리와 형상이 같다. 상온·상압의 공기를 압축시켜 고온·고압으로 변환한 뒤 여기에 연료를 연소시켜 연소가스를 생성한다. 항공기 제트엔진의 경우 이 연소가스를 추진력으로 사용하고, 발전용 대형 가스터빈은 터빈의 회전력으로 사용해 전기에너지를 만들어낸다.

항공기 독자개발 기술을 보유한 국가가 많지 않듯, 발전용 대형 가스터빈 기술도 극히 일부 국가만 확보하고 있었다. 미국과 일본, 독일과 이탈리아 등 단 4곳뿐이며, 모두 대규모 전쟁을 치른 바 있는 국가다. 전쟁을 위해 제트엔진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높은 기술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두산중공업은 과거 이 기술을 보유한 기업들과 협력관계(라이센스)를 맺고 도면을 사와 국내에 발전용 대형 가스터빈을 조립·설치해왔다 하지만 앞서 이광열 상무의 말처럼 핵심부품은 비싼 값을 주고 구입해야 했고, 설치 이후 유지·보수비용도 막대했다. 심지어 해당 기업들은 보수를 위해 핵심 설비를 해체할 때도 이를 철저히 비공개로 진행했다. 실무에 있는 두산중공업 관계자들조차 대부분 이번 발전용 대형 가스터빈 제작을 통해서야 처음으로 그 실체를 직접 보게 됐다고 할 정도다.

이렇듯 해당 국가 및 기업들은 발전용 대형 가스터빈의 핵심기술이 유출되는 것을 철저히 차단했다. 두산중공업도 애초엔 M&A를 통해 이 기술을 확보하려고 했으나, 해당 국가의 반대로 무산됐다. 결국 방법은 독자개발 뿐이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다. 기존에 기술을 보유한 국가와 기업들은 당연하게도 새로운 경쟁자가 등장하는 것을 꺼렸다. 일본의 미쓰비시의 경우, 독자개발에 나서면 협력관계를 중단할 수밖에 없고 독자개발에 나서지 않으면 더 좋은 계약조건을 제시하겠다는 압박도 해왔다고 한다.

이 같은 어려움은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두산중공업을 중심으로 21개 대학 및 4개 정부 출연 연구소, 13개 중소·중견기업이 똘똘 뭉쳐 극복할 수 있었다. 산·학·연 협력을 통한 독자기술 개발의 성공사례로 꼽히는 이유다.

두산중공업 관계자들이 한국형 발전용 대형 가스터빈의 핵심부품의 최종 조립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 /두산중공업

◇ 항공기 제트엔진보다 높은 기술력… ‘기계공학의 꽃이 피다’

발전용 대형 가스터빈이 높은 기술력을 요구하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고온 및 고압의 가혹한 운전조건을 견뎌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두산중공업 관계자는 “발전용 대형 가스터빈은 ‘기계공학의 꽃’이라 불릴 정도로 많은 분야에서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한다”고 강조했다.

대표적인 것이 핵심 중의 핵심 부품이라 할 수 있는 ‘블레이드’다. 가스터빈 내부를 빠른 속도로 돌아가는 날개로, 1기에 450개 이상의 날개가 달려있다. 겉으로 보기엔 단순한 날개일지 몰라도, 실상은 그렇지 않다. 날개 1개가 중형차 1대 가격과 맞먹는다.

이 블레이드는 우선 1,500℃ 이상의 고온과 엄청난 속도에 따른 압력을 견딜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특수한 금속 소재가 적용되고, 세라믹 코팅 등의 과정도 거친다. 또한 냉각용 공기 통로와 함께 냉각용 공기가 커튼막 효과를 낼 수 있도록 하는 작은 구멍이 적용돼있다. 이처럼 특수한 소재를 복잡한 형상으로 오차 없이 구현해내는 정밀주조 기술이 필요하다.

블레이드 등의 핵심부품을 제조하는 공장에서는 첨단설비가 즐비한 반도체공장의 화려함이나 불꽃 튀는 자동차공장의 분주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 차분한 분위기 속에 ‘장인정신’이 전해져왔다.

발전용 대형 가스터빈의 독자개발을 위해 필요한 기술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대량의 공기를 압축하는 ‘축류형 압축기 기술’과 배출가스를 최소화하는 ‘연소기 기술’, 핵심 구성품들을 원활하게 조합시키는 ‘시스템 인테그레이션 기술’ 등 각 부문의 높은 기술이 복합적으로 적용된다.

아울러 철저한 테스트도 이뤄질 예정이다. 두산중공업은 이를 위해 발전소 시설과 다름없는 시험장을 마련해둔 상태다. 향후 최종 완성될 발전용 대형 가스터빈 초도품은 이곳에서 실제 발전소처럼 전력을 생산하며 3,000개 이상의 센서를 통해 가스터빈의 진동, 응력, 압력 유체 및 금속 온도 등을 모니터링하게 된다.

핵심부품인 450여개의 블레이드는 1개의 가격이 중형차 1대와 맞먹을 정도로 높은 기술이 적용돼있다. /두산중공업

◇ 친환경 발전소를 순수 국내기술로

두산중공업의 이번 발전용 대형 가스터빈 개발은 최근 우리 산업계가 마주하고 있는 두 가지 화두의 ‘해법’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첫 번째는 ‘친환경’이다. 지난 봄 사상 최악의 미세먼지가 한반도를 덮치는 등 미세먼지 문제는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석탄발전소는 이 같은 미세먼지 문제의 ‘주범’ 중 하나로 꼽히는데, 발전용 대형 가스터빈을 활용한 발전소가 가장 적합한 대안으로 지목된다. 변화하는 수요에 대응하는 것이 수월한 발전소이기 때문이다.

두산중공업에 따르면, 가스발전은 석탄발전에 비해 초미세먼지 배출이 8분의 1, 대기오염물질 배출은 3분의 1 수준이다. 또한 자동차 등 다른 분야에 비해 대책이 미미한 발전부문의 탄소배출권 문제에 있어서도 긍정적인 작용이 기대된다. 두산중공업은 정부의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 등에 따라 가스터빈이 필요한 신규 복합발전소가 오는 2030년까지 약 18GW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두 번째는 핵심기술의 ‘국산화’다. 최근 일본과의 ‘경제갈등’이 불거지면서 국내 산업계에서는 핵심 소재 및 기술의 국산화가 당면과제로 떠올랐다. 이런 가운데, 그동안 해외에 의존해 불리한 위치에 있을 수밖에 없었던 발전용 대형 가스터빈 부문에서 국산화가 임박했다는 점은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

특히 두산중공업은 정부의 적극적인 의지에 발맞춰 발전용 대형 가스터빈의 핵심부품 제작 및 소재 등에 대한 국산화 작업도 꾸준히 이어나갈 방침이다.

이날 기자들을 맞이한 두산중공업 파워서비스 BG장 목진원 부사장은 “그동안 많은 기술들 확보해왔는데, 발전용 대형 가스터빈은 마지막으로 원했던 가장 고난도 기술이었다”며 “이미 기술을 보유한 국가 및 기업에서는 ‘2차 세계대전 때 제트엔진을 개발한 경험이 없다면 절대 불가능할 것’이라고 했지만, 우리는 성공했다”고 감격했다.

한편, 완성을 앞둔 최초의 한국형 발전용 대형 가스터빈은 사내 테스트를 마친 뒤 한국서부발전이 추진하는 김포열병합발전소에 투입돼 일정기간 시운전을 거친 뒤 오는 2023년부터 상업운전에 돌입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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