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

시사위크=정호영 기자  '정신 퇴락'인가, '그 정신 퇴락'인가.

바른미래당 윤리위원회는 지난 18일 하태경 의원에 대한 '직무정지 6개월' 징계를 의결했다. 지난 5월 하 의원의 이른바 '정신 퇴락' 발언 때문이다. 이 발언은 주로 '나이가 들면 정신이 퇴락한다'로 보도되면서 '국회의원의 노인 폄하' 논란으로 번져 사회 전반에 파문을 일으켰다.

논란의 발언은 지난 5월 22일 국회에서 열린 바른미래당 임시 최고위원회의에서 하 의원이 손 대표의 당무수행와 관련해 비판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한번 민주투사가 영원한 민주투사가 아닙니다. 한 번 민주투사가 대통령이 되면 독재를 하는 경우도 있고요. 한 번 민주투사가 당 대표가 되면 당 독재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만큼 민주주의는 지키기 어렵습니다. 가장 지키기 어려운 민주주의가 개인 내면의 민주주의입니다."

"왜냐하면 나이가 들면 그 정신이 퇴락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끊임없이 혁신, 또 혁신해야 되는 것이 정치가의 숙명이기도 합니다. 혁신하지 못해서 몰락하는 정치인들 수없이 봐왔습니다. 저도 그런 정치인이 안 되기 위해서 끊임없이 젊은이들과 소통하고 혁신하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발언은 4개월 뒤 당내 징계로 이어졌다. 하 의원에게 큰 타격이 된 것은 물론, 당내 당권파와 비당권파 대립을 가속하는 촉매제가 됐다.

당시 발언의 문맥상 손학규 대표 비하·인격모독 논란도 일었다. 하 의원은 손 대표에게 수 차례 사과하는 모습을 보였다.

실제 하 의원은 발언 다음날인 23일 페이스북을 통해 "손 대표의 당 운영 문제를 비판하는 과정에서 부적절한 발언을 한 점을 정중하게 사과드린다"며 "민주화 운동을 했던 사람도 혁신하지 않으면 민주주의로부터 탈선할 수 있다는 충언을 드리려던 것이 어제 발언의 취지였다"고 해명했다.

그 다음날인 24일에도 하 의원은 당 임시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어제 손 대표를 찾아뵙고 직접 사과드렸다"며 "당 혁신과 미래를 위해 치열하게 다투고 논쟁하더라도 손 대표님 말씀처럼 정치의 금도를 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다만 하 의원은 '노인 폄하' 논란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지난 18일 윤리위 징계 직후 하 의원의 발언을 보더라도, 그는 "노인 폄하가 아닌 구태 정치인을 비판한 내용"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또 "구태정치인 비판을 노인 폄하라고 하는 것은 왜곡"이라고도 했다.

이와 관련, 한 바른미래당 관계자는 하 의원 징계 다음날인 19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물론 하 의원의 용어 선택이 적절했다고 볼 수 없지만, '정신 퇴락'과 '그 정신 퇴락'은 차이가 있다"며 "하 의원이 그럴(노인 폄하) 의도는 없었을 텐데 결국 그 발언만 남아버렸다"고 안타까워했다.

만약 하 의원이 "나이가 들면 정신이 퇴락한다"라고 했다면 '노인 폄하'에 이견이 없겠지만, 순수 발언이 "나이가 들면 그 정신이 퇴락한다"라면 먼저 앞 문맥을 보고 '그 정신'이 무엇을 칭하는지 봐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 정신'이란 '혁신하지 않는 구태 정치인의 내면 민주주의'이며, 이를 놓고 '노인 폄하'논란에 휩싸여 당내 중징계까지 받은 것은 과도했다는 것이 그의 해석이다.

이 관계자는 "하 의원은 판단력이 매우 빠른 정치인이다. 당시 논란이 되니 '아, 내가 잘못 걸렸구나'라고 판단해 최대한 빨리 수습하려고 민첩하게 움직였다"고 회상했다. 그는 "그렇다고 노인 폄하가 완전히 아니라고 볼 수도 없으니 난처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손 대표도 그 뜻을 모르지 않았을 텐데"라며 말을 흐렸다.

'나이가 들면 정신이 퇴락한다' vs '나이가 들면 그 정신이 퇴락한다'

이 차이에 대해서는 당내에서도 의견이 엇갈리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 의원이 노인을 폄하할 의도가 없었다고 해도, 언론 보도 등으로 발언을 접한 노인들이 분노를 느끼고 사회적으로 거대한 파장을 일으켰다면 '정신 퇴락'이든 '그 정신 퇴락'이든, 별도 의도나 해석과 상관없이 그 자체로 '노인 폄하'라는 의견도 있다. 이는 윤리위 판단과도 궤를 같이 한다.

지난 21일 하 의원이 페이스북을 통해 공개한 윤리위 징계의결서의 징계 사유는 다음과 같다.

<(전략) 한 번 민주투사가 당 대표가 되면 당 독재를 하는 경우도 있다.' '가장 지키기 어려운 민주주의가 개인 내면의 민주주의다.' '왜냐하면 '나이가 들면 정신이 퇴락하기 때문이다' 라고 노인 폄하 발언>

공교롭게도 징계의결서에는 하 의원의 본래 발언 '그 정신 퇴락'이 아니라 '정신 퇴락'으로 표기돼 있으나, 안병원 윤리위원장은 23일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정관사와 관계 없이) 노인 폄하 발언이 틀림 없다"고 못박았다.

안 윤리위원장은 "징계를 하지 않고 요식행위에 넘어갔다가는 향후 당의 진로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판단했다"며 "당내라면 몰라도 당외까지 영향을 많이 끼친 발언이기 때문에 당에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국민 감정을 추스리기 어렵다고 봤다"고 징계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사심을 갖고 징계한 것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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