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평양공동선언에 서명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 /평양사진공동취재단
지난해 9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평양공동선언에 서명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 /평양사진공동취재단

시사위크=정계성 기자  김정은 위원장이 오는 11월 부산에서 개최될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에 참석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국회 정보위원회에 출석한 서훈 국정원장의 입을 통해서다. 전제는 북미 비핵화 협상의 실질적 진전이다. 국가정보원은 이르면 2~3주 내 북미 실무협상이 열릴 것으로 보고 있으며, 어느 때보다 북미 간 협상에 대한 의지가 크다고 판단하고 있다.

24일 이혜훈 국회 정보위원장과 여야 정보위 간사에 따르면, 서훈 국정원장은 ‘오는 11월 김정은 위원장이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에 참석 가능성이 있느냐’는 위원들의 질의에 “비핵화 협상 진행이 어떻게 되는지에 따라서 부산에 오지 않겠느냐”고 답했다. 현재 진행 중인 북미 비핵화 협상 결과에 따라 참석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김정은 위원장의 답방은 지난해 9월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방문 당시 확약된 사항이다. 9월 평양공동선언문을 통해 김정은 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초청에 따라 가까운 시일 내로 서울을 방문하기로 했다”고 밝힌 바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가까운 시일 내라 함은 특별한 사정이 없다는 전제 하에 연내”라고 부연했었다. 하지만 북미 실무협상이 순연되고, 올해 초 개최된 하노이 회담이 결렬되면서, 답방 논의는 급속하게 힘을 잃었다.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에 김 위원장을 초청하는 사안은 서울 답방과는 별개로 추진됐다. 지난해 11월 개최된 한-아세안 정상회의 당시 문 대통령은 한-아세안 관계 30주년을 기념해 한국에서 특별정상회의를 개최할 것을 제안했고, 당사국들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았다. 여기에 더해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한국과 북한이 함께 참석하면 특별정상회의의 의미가 더 살아날 것”이라며 김 위원장의 초청을 제안했고, 문 대통령은 크게 기꺼워하며 “적극 검토하겠다”고 했었다.

지난해 11월 개최된 아세안 정상회의에서는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개최와 김정은 위원장 초청 여부 등이 논의됐었다. /뉴시스
지난해 11월 개최된 아세안 정상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의 한국 개최를 제안하고 있다. /뉴시스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에 김 위원장이 참석한다면 여러 측면에서 의미가 클 것이라는 분석이다. 북한 최고지도자로서 최초 남한 방문을 계기로 평화 정착에 한 획을 그을 수 있다는 게 첫째다. 두 번째로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대한 아세안 국가들의 확고한 지지를 얻을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북한이 아세안 국가들과 전부 수교를 맺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의미는 더 크다. 이는 다자협의로 북한체제보장을 담보하겠다는 문 대통령의 방침과도 일치한다.

무엇보다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의 홍보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는 문 대통령 임기 중 정부에서 추진하는 최대 규모의 국제회의다. 김 위원장의 참석으로 국제적 주목도를 올리는 것은 물론이고, 신남방정책도 탄력을 받을 수 있다. 더불어 문 대통령이 각별히 챙기는 부산을 국제도시로서 대외적으로 알리는 계기도 될 전망이다.

관건은 북미 실무협상이다. 분위기는 무르익었다.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은 “9월 하순경 합의되는 시간과 장소에서 미국 측과 마주앉아 지금까지 논의해온 문제들을 포괄적으로 토의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고, 북측 실무협상 대표인 김명길 북한 외무성 순회대사는 “(실무협상) 결과에 대해 낙관하고 싶다”고 했다. 현재 유엔총회에 참석 중인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 싱가포르 정상들과 잇따른 정상회담에서 “김정은과의 좋은 관계”를 거듭 과시했다.

하지만 섣부른 낙관은 금물이다. 지난 하노이 협상 당시 양 정상의 '좋은 관계'를 믿고 탑다운 협상을 진행했다가 결렬이라는 낭패를 봤기 때문이다. 실무협상 단계에서 확실한 합의안을 만드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말’ 뿐이 아닌 대중들이 납득할 수 있는 실질적 약속과 행동이 내용에 포함돼 있어야함은 물론이다. 청와대도 북미실무협상의 진행을 최우선 과제로 보고 주의 깊게 접근하는 형국이다.

이날 취재진과 만난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최근 북한의 북미 실무 협상 재개 의지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조기에 실무 협상이 개최되어 ‘실질적인 진전’을 이루어야 한다는 점에 의견을 같이 했다”고 한미 정상회담의 결과를 설명하면서, 그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서는 “의견을 교환했지만 논의 내용을 지금 말할 수는 없다”며 다소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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